집에 있는 자전거를 직접 가져가서 탈 것이냐? 아니면 현지에서 성업 중인 자전거 대여점에서 빌려 주는 자전거를 탈 것이냐? 많은 사람들이 빌려 타는 쪽을 추천한다. Logistics와 비용면에서 유리하고 또 운송 도중 자전거가 파손될까 혹은 분실될까 신경 쓸 일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자기 자전거를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수도 못지않다. 이용할 항공편이나 스페인 혹은 프랑스 내에서 이동할 때 드는 교통비를 상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대여하는 것보다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파손에 대한 걱정에 대해서도 포장만 잘하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난 직접 가져가는 쪽을 택했다. 비용이나 파손의 위험 등등의 이성적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판단은 아니다. 뭐랄까? 비록 기계이지만 왠지 함께하고 싶었고 자전거에 이름까지 붙일 정도로 나는 나의 자전거와 감정적인 커넥션이 이루어져 있는 상태다. 더군다나, 이 탐험을 위해 수개월간 훈련과 몇 가지 실험 즉, 자전거는 어떤 종류를 택할 것인가? 짐은 어떻게 꾸릴까? 앞바퀴와 뒷바퀴 간의 하중 분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도로 상태에 따라 평균 속도는 어떻게 다를까? 등등을 해 오며 동고동락해오지 않았나? 웬만한 사이클리스트라면 이런 준비과정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고도 남을 것이지만 이로 인해 한편 자기가 타는 자전거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커지게 되는 지도 알 것이다…..
그리고…. 내가 타고 여행을 떠나게 될 자전거에 이름을 붙였다. 로시난테.... 그렇다. 바로 동 키호테가 스페인 라만차 지역을 헤집고 다닐 때 타고 다녔다는 늙고 힘없고 비루먹은 바로 그 말의 이름을 따 온 것이다. 얼마나 스페니쉬 한가? 그래도 혹시나 하고 검색을 해 보았다. 아뿔싸, 벌써 제 자전거를 로시난테라 부르는 현대의 돈키호테들이 넘쳐난다. 심지어 삼천리 자전거의 한 모델이 바로 로시난테다. 하이브리드 자전거인데 Frame에 커다랗게 "ROCINANTE"라고 쓰여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산 자전거 Fuji에도 같은 이름의 모델이 있고 같은 이름을 상호명으로 차용한 자전거 가게도 넘쳐난다. 그러니 로시난테란 내 생각과는 달리 특별한 이름이 아닌 세계 각처에 흩어진 수백, 수천의 로시난테 중 하나일 뿐인 범부(凡夫), 아니 범거(凡車)의 이름일 뿐이다. 그래, 튀는 것보단 오히려 평범한 편이 낫다.
그러나 나는 16년을 같이 살았던 우리 푸들 강아지의 이름 “푸디”를 자전거에도 붙여 주는 것으로 결정지었다. 푸디가 생전에 목에 걸고 다니던 냄새나는 목걸이도 자전거 핸들바에 묶었다. 그래 나는 푸디와 함께 간다. 돌이켜 보면 푸디와 함께한 여행에 대만족이다. 다소의 우여곡절 있었지만 또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역시 푸디와 함께할 생각이다.
<푸디가 매고 다니던 파란색 목걸이를 내 하드테일에 달고 푸디라고 이름 지었다>
두 번째 결정 사항 – 자전거 종류
어떤 종류의 자전거를 가져갈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답은 없다.
인터넷에 공개된 여러 Forum에 들어가 보면 반드시 특정 종류의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하고 다른 종류는 모두 실없는 짓이라고 강한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많은데 – 나는 여기서 사이클리스트들은 대체로 고집이 세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마치 돈 키호테처럼 말이다
막상 순례를 성공적으로 끝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미니벨로나 브롬프톤 같은 초경량 접는 자전거를 타고 간 경우, 타이어가 가는 (25mm) 경기용 자전거를 타고 간 경우, Gravel Bike나 Cyclocross, 하이브리드, 마운틴 바이크(하드테일도 있도 Full Suspension도 있고), 혹은 탱크 같고 무거운 Fat Tire(폭이 10cm ~ 15cm) Bike를 타고 간 경우, 각양각색이다. 심지어 누워서 타는 세발자전거, 혹은 카고 자전거(사진 참조)를 타고 가는 사람도 있다.
<카고, Cargo, 자전거>
떠나는 이유가 사람마다 다르고 그만큼 다양한 것처럼 타고 가는 자전거의 종류도 다양한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자전거의 특성에 따라 선택해야 할 루트나 걸리는 시간이 다양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서쪽 끝 마을 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Santiago에 이르는 이른바 French Way라는 순례길도 사실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지역마다 동네마다 여러 가지 다른 루트가 존재함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는 순례자의 길이란 것이 어떤 고정된 주체에 의해 무슨 공식적인 절차로 일사불란하게 건설된 것이 아니고 수많은 순례자들에 의해 천년이 넘는 오랜 세월에 걸쳐, 때로는 정치적 지형의 변화에 따라 때로는 자연환경 예를 들면 홍수나 가뭄, 때로는 흑사병이나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역병등 의 영향으로 변경되어 왔고 근대에 들어선 스페인의 도로 건설 계획에 따라 이리 생기고 저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출발지와 최종 목적지만 정해져 있을 뿐 택해서 따라갈 수 있는 옵션(루트)은 실로 다양하다. 결국은 모로 가도 서울, 아니 산티아고만 가면 되는 셈이다.
따라서 타고 갈 자전거의 종류에 따라 택해야 할 루트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고 이에 따라 순례여행의 캐릭터가 약간은 달라질 수도 있다.
자전거 특성에 대한 이해
내가 가지고 있는 네 종류의 자전거 즉, Cyclocross, Full Suspension MTB, Hard Tail MTB 그리고 Fat Bike를 놓고 어떤 것을 가지고 갈까 시간을 두고 충분히 비교 검토를 했다. 물론 여행 전문용 Touring Bike가 최상의 기종이라는 것엔 이의가 없지만 아쉽게도 나에겐 Touring Bike가 없다.
Cyclocross Bike는 Road Bike와 매우 유사한데의 최대 장점은 기동력이다. 가볍고 빠르고 부피가 작다. 때문에 수송 비용도 다른 두 종류의 자전거에 비해 적게 들 수도 있다. 다만 항공사나 육상교통 수송비는 화물의 무게에 비례하기보단 일정 범위 내에선 동일 비용을 적용하므로 반드시 비용면에서 유리하다고 할 순 없다.
다만, 여행과 시차에 지친 상태에서 자전거의 무게가 주는 임팩트는 경우에 따라 아주 클 수도 있다. 가령 아직도 시차가 적응되지 않은 순례여행 초기에 피레네 산맥을 넘고 그 후로도 스페인의 여러 고개를 넘어 매일 70~80km 거리를 거의 2주간 달려야 할 경우 가볍고 빠른 속도는 실로 커다란 이점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라! 해발 300미터에서 1500미터까지 넓은 범위의 고도의 지형을 넘어야 하니 시간이 한정된 사람들에겐 최상의 선택일 수도 있다.
또 다른 장점은 상체를 여러 포지션으로 바꿀 수 있어 장거리 주행에서 오는, 특히 손과 손목에, 피곤함을 다소 줄일 수 있다.(사이클리스트들은 무삼 말씀인지 이해가 되시리라 믿는다! �)
다만 상체를 숙여야 하기 때문에 꼿꼿한 자세로 타는 마운틴 바이크나 하이브리드에 비해서 팔과 어깨에 부담이 크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리고 MTB보다 기어비가 속도 위주로 설정되어 있어 심한 경사, 8% 에서 10% 이상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기엔 부적합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카세트(뒷바퀴 기어 뭉치)나 체인링(체인을 거는 앞바퀴 기어 뭉치)을 MTB용으로 바꾸면 되는데 그러자면 뒷바퀴 디레일러와 코그 그리고 체인도 함께 바꾸어야 하므로 비용이 너무 들어 차라리 자전거 한대를 사는 게 나을 지경이다.
또 다른 걱정거리는 주행 안정성이다. 자전거와 내 몸무게 더하기 10Kg이 넘는 짐(나중엔 5Kg으로 줄었지만)을 매달고 미끄러운 모래나 주먹만 한 자갈, 혹은 나무뿌리로 덮여 있는 오프로드를 달리기엔 28mm 타이어는 너무 폭이 좁아 자꾸 미끄러진다. 그래서 타이어를 42mm 광폭 타이어로 바꾸곤 근처의 산길에서 그것도 비가 온 직후 나가서 직접 타봤다. 생각보다 훨씬 많이 좋아진다. 주행 안정성은 거의 만족 수준이다. 타이어 압력도 60 psi에서 절반으로 낮출 수 있어 노상의 충격도 완화되고 접지력도 좋아진다.
그러나 끝내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급격한 다운힐 Hair Pin 오프로드에서 Brake안정성(브레이크 성능이 아니다)과 Steering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유는 Cyclocross의 지오메트리의 특성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1) 좁은 핸들바 – 고속주행에 알맞게 설계되어 있는 반면, 같은 노력에 비해 섬세한 Steering이 어렵다. 작은 노상충격에도 핸들이 쉽게 비틀어질 수 있다.
2) 짧은 축간(앞바퀴와 뒷바퀴까지의 거리) – 직진성이 떨어져 다운힐 주행을 불안케 한다.
3) 주행 시 두 손으로 핸들바 상단을 붙잡고 타는 것이 나는 편하다. 특히 장거리 주행 시 더 그렇다. 그런데 제동시에는 손을 핸들바 상단에서 브레이크 레버가 위치한 핸들바 하단 굽어진 부분으로 옮겨야 한다 – 손이 아주 큰 분들에겐 해당 사항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 따라서 브레이크 반응 시간이 느려지고, 도로 표면에 자갈이나 나무뿌리등의 흩어져 있는 경우 심리적으로 핸들바를 옮겨 잡기가 무척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4) 손을 핸들바 하단으로 옮길 때 몸의 무게 중심은 더욱 앞으로 쏠려 다운힐이 더욱 불안해진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자전거 순례자들은 보통 표면상태가 양호한 자동차 도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것 또한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곁을 쌩쌩 달리는 자동차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고래로부터 존재해 왔던 그런 전통적인(?) 길을 따르며 될 수 있으면 도상에서 다양한 여행자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나의 순례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 목적엔 부합하지 않는다는 나의 판단이다.
말하자면 자전거를 밀거나 끌고 오는 것도 “순례’의 일부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될 수 있으면 많이 “타고” 싶었다.
Full Suspension Mountain Bikes
내 Full Suspension MTB는 유압식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고(실린더가 4개짜리로 한 손가락 레버를 잡아당겨도 엄청난 브레이크 파워가 느껴진다) 핸들바 길이가 길며, 앞바퀴축과 뒷바퀴 축사이의 축간거리가 길어 브레이크 파워, 스티어링 안정성 그리고 직진성이 매우 좋다. 지오메트리도 다운힐 전문만큼은 아니지만 MTB 중에서도 다운힐 능력이 괜찮은 편에 속하게끔 되어 있는 구조다. 앞(트래블 160mm) 뒤(트래블 100mm)의 서스펜션 덕분에 웬만한 장애물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넘어간다. 손과 엉덩이에 닿는 충격도 최소한이다. 세 개의 자전거 중 내가 따라가고자 하는 루트의 도로사정에 가장 알맞지만 솔직히 Single Track에 맞게 설계된 자전거 성능이 순례길에는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점은
1) Cyclocross에 비해 무겁고 부피가 크며 분해 조립이 번거롭다.
2) 수송중 유압 브레이크에 기포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만일 수송중 자전거를 거꾸로 세우거나 하면 브레이크액 리저버에 있던 기포가 브레이크액 라인으로 들어가 이른바 스펀지 현상을 유발해 브레이크 성능을 현저하게 떨어뜨릴 수도 있다 – 이는 자동차 브레이크액에 기포가 생겨 브레이크 성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3) 서스펜션은 노상의 충격을 특히 다운힐 충격을 완화시키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같은 이유로 언덕을 오를 때는 페달링 에너지를 흡수해 버리기 때문에 전반적인 효율이 떨어진다.
4) 짐 싣는 공간이 또 다른 자전거 Fat Bike보다 부족하였다. 특히, 물통을 (뒤쪽 서스펜션 때문에) 하나 밖에 장착할 수 없는 것도 큰 불만 거리였다. 그리고 내 의도는 무게를 줄이려 패니어 대신 Seat bag을 달고 가려는 데 뒤쪽 서스펜션 트래블을 고려해 Seat bag과 뒷바퀴 간의 거리를 충분히 유지해야 간섭을 피할 수 있는데 이게 좀 문제스럽다.
Fat tire bike
눈이 많고 겨울이 긴 고장에서 사는 나는 Fat tire Bike(혹은 Fat bike)를 제법 많이 탄다. 서스펜션도 없고 애초부터 투어링을 염두에 두고 자전거 지오메트리(Geometry)를 골랐기 때문에 짐을 장착할 공간도 가장 넉넉하고 무엇보다 물통을 세 개나 장착할 수 있어 좋다. 폭이 4인치에 이르는 타이어는 웬만한 크기의 자갈길이나 모래길 그리고 심지어 진흙탕도 상대적으로 쉽게 밟고 지나갈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며 펑크가 날 확률이 그 어떤 자전거보다 낮다.
이 자전거도 MTB와 같이 스티어링 안정성, 직진성이 좋으나 기계식 디스크 브레이크여서 브레이크 성능은 MTB에 비해 조금 열세다. 단, 커다란 바퀴 덕분에 무게 중심이 낮아 주행 시 안정성은 참 좋다.
단점도 만만치 않다.
1) 무게 - Full Suspension MTB보다 조금 무겁지만 굳이 저울로 재 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정도는 아니다.
2) 구름 저항 – 가장 큰 단점. 눈 위에서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타이어 트레드가 높게 돌출되어 있어 구름 저항이 매우 크고 주행 중 타이어 소음이 몹시 크다. 시험 주행 결과를 보면 동일한 도로 조건에서 Cyclocross보다 약 10% 이상 속도 차가 난다.
3) 피로도 – 속도가 느리다는 뜻은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며, 게다가 MTB에 비해서 노면의 진동이 많이 전달 돼 피로도가 증가한다.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많은 경험자가 조언하듯 순례에 가장 적합한 자전거로 Hard Tail MTB, 29er를 택하게 되었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험난한 지형에도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아주 미더운 존재가 되었고 그 것음 마치 환생한 푸디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