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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호 Feb 13. 2023

자전거로 떠난 산티아고 13

Day 10(11/3), 시외버스에 자전거 싣기


11월 3일 목요일, 자전거 여행 열흘째.

Leon의 아침 거리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도시의 출근길은 어김없이 번잡스럽다. Leon 대성당 근처의 호텔에서 여행 가방 두 개가 달린 자전거를 비에 젖은 거리로 끌고 나선다.

다운타운을 가로질러 빗방울이 떨어져 파문을 일으키는 작은 강을 지나니 곧바로 시외버스 터미널이 나온다.

오늘은 Astorga까지 버스로 이동한 후 이번 여정중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카타브리안(Cantabrian) 산맥의 Foncebadon 고개(해발 1532미터)를 공략할 계획이다.


자전거를 가지고 스페인의 대중교통, 특히 버스나 기차, 을 이용하는 것은 대체로 편리한 일이지만 몇 가지 유념할 사항이 있다.

우선 장거리 고속 열차나 버스에 자전거를 싣기 위해선 포장을 해야 한다.

흔히들 이용하듯 골판지 상자나 자전거 운반용 가방에 자전거를 분해한 후 화물로서 운송을 해야 한다. 골판지 상자는 대부분의 자전거 매장에서 무료로 내어 주지만 근처에 자전거 매장이 없거나 있어도 상자가 꼭 있다는 보장도 없으므로 추천할 방법이 아니고, 자전거 가방은 일단 여행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어딘가에 보관할 곳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여행 내내 지니고 다녀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그런데 이틀 전 헤어진 브라질 친구 Cesar는 나름 독창적인 방법으로,  비닐 포장재로 분해한 자전거를 둘둘 말아서 기차에 실었다고 아래와 같은 사진을 보내왔다.

<비닐 포장재로 분해된 자전거(A platsic wrapped bike) 운송 방법>

비닐 포장재는 영어로 Plastic Wrap이라고 하며 웬만한 마을의 Hardware가게(철물점?)에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다만 사용한 비닐이 곧장 쓰레기로 변한다 것이 다소 불편한 사실이지만 말이다.

단거리 이동시에는 그러나 스페인의 기차나 버스에 적재 공간이 허용하는 한 자전거를 분해할 필요 없이 그대로 실을 수 있다.


Leon 버스터미널에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Astorga는 버스로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곳이라 자전거를 그대로 짐칸에 싣고 탈 수가 있고 또 이 사실을 버스표를 사면서, 자전거를 보여주면서 거듭 확인했다. 그런데 막상 버스 정류장 앞으로 가니 넥타이까지 맨 나이가 지긋한 버스차장(?)님이 눈을 부라리며 자전거를 가리킨다. 말은 안 통하지만 그의 표정으로 보아 자전거를 그 상태로는 실을 수 없다는 것 같다. 순간 난감했다. 비는 더욱 굵어져 장대비로 변했는데....


다행히, 매표소에 있던 젊은 아가씨와 예의 넥타이를 맨 차장님을 대질(?)시킬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랬더니 그 아가씨가 예의 넥타이에게 뭐라고 소리를 높이고 넥타이는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저만치 떨어져 나갔다.

역시 동서를 막론하고 돈 만지는 쪽에 파워가 있다. 다만 적재 공간이 협소해 앞바퀴를 떼어내야 했다.


이 버스 안의 승객 3분의 2 이상이 한국 순례자들이다. 오!!

Astorga에는 유명한 건축물이 있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했다는 성당이 바로 그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삐딱해 보이는 건물(사진 참조)로 주교의 거처라고 이름 되어 있어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만민이 모여 예배하는 장소가 아닌 주교의 집이라....??   

Astorga는 또 쵸콜레이트가 최초로  탄생한 곳으로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밸런타인데이 때 한 번 와 보면 어떨까 궁금하다

그림 - 다운타운에 있는 건물 한벽 전체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한때 프랑스군이 이곳을 점령하려 할 때 일어난 전투를 묘사한 벽화.

 

Astorga에서 철의 십자가가 있는 카타브리안 산맥 꼭대기 마을 Foncebadon까지는 대략 26Km, 고도 증가는 대략 660미터... 마지막 3-4km에서 급경사를 이룬다.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고지를 향해 자동차길을 따라 오른다. 길은 미끄럽고 온도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낮아진다. 자전거도 무겁고 짐도 무겁고 마음도 무겁다. 이런 업힐은 결국 나와의 싸움이다. 꼬불꼬불한 고개의 끝이 어딘지, 저쪽 모퉁이만 지나 어디 한 숨 돌리고 갈만한 데가 있으려는지. 스스로에게 계속 묻지만 또 다른  나는 들은 체 만 체 꿀 먹은 벙어리이다.

 

다행인 것은 지나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고(오르는 도중 단 한대! 만 만났다) 어디에선가 부터 나를 따라잡은 이태리 청년과 나란히 산을 오르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친구는 코비드가 강타한 이태리 북부를 출발해 알프스를 넘고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을 관통 중이란다. 산티아고에 들른 후 포르투갈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간 후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아프리카 북부까지 간대나.... 와! 대딴!!


그렇게 긴 여행을 하기 때문에 그는 흔해빠진 싸구려 알베르게나 캠핑장까지 마다하고 노상 캠핑, 이른바 Stealth Camping, 즉 지나는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은밀한 곳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는, 을 해야 한단다. 그래 그렇지 않으면 허구한 날 숙박비는 어떻게 감당하랴? 그래서 그런지 그는 지니고 다니는 짐이 나보다 훨씬 많다. 호연지기! 기백이 참 놀랍다. 청춘! 듣기만 해도 설레는 이름이여! 나도 마음은 청춘이다!!

     

<세상의 꼭대기 카타브리안 산맥 Foncebadon재 근처에서 지나온 메세타 평원을 내려다보며 잠시 숨을 고른다.>

Hardtail 자전거를 가지고 오길 잘했다. 이렇게 경사가 심한 오르막과 내리막, 또는 싱글 트랙을 방불케 할 정도의 험한 노면 주행에 알맞게 설계된 타이어(2.25 x 29인치)와 넓은 기어비(11-50T, 1x12), 강력한 유압 브레이크(최강은 아니지만 실린더가 두 개짜리여서 두 손가락으로 레버를 당기도록 추천된...) 그리고 넓은 핸들바(72cm), 지오메트리와 충격 흡수기(Front 100mm Travel)... 등등...


여행을 계획할 때 Fat Bike나 Cyclo Cross도 고려 대상이었지만 Fat Bike는 너무 무겁고 부피를 많이 차지해 비행기에 싣거나 대중교통 운반 시 불편한 단점이 있고, Clyco Cross는 가볍고 부피가 작지만 가방을 달 수 있는 공간이 다소 제한적이며 험로 주행 시 안정감이 떨어지는 이유로 예선 탈락. 그래서 크로스 칸츄리용 Hardatil MTB로 정했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된 결정인 것 같다.


정신없이 고개 정상에 올랐다. 그곳엔 가는 십자가가 쇠로 만든 높다란 기둥 위에 서 있고 기둥 밑에는 수많은 돌멩이들이 쌓여 있는데 돌멩이 위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로 무언가 적혀 있다. 아마도 나름대로의 기도와 소망과 사연이 적혀 있으리라..... 간혹 사진도 있고, 무슨 천 조가리 같은 것도 돌이나 기둥에 묶여 있는데 마치 그 모습은 어릴 적 동네 어귀에 있었던 서낭당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 마음에는 참 바람도 많고 한도 많다, 아니면 그렇게 한 많은 사람들이라 이 고생길을 택했을까?


정상에 오르니 언제 그랬나 싶게 비도 그치고 밝은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쬔다. 바람도 잦아들었으니 고생 끝에 낙이 온 셈이다.


십자가가 있는 곳은 해발 1532미터, 프랑스 순례길에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이다. 차가 다니는 도로는 1504미터. 내가 자전거를 타고 다닌 길중에 가장 높은 곳이다. 신기록!

<신기록! 자전거를 타고 올랐던 가장 높은 지점>

Foncebadon고개에서 Molinaseca라는 곳까지 27.1km는 줄곧 내리막 길! 첫날 피레네를 넘어 프랑스 마을 생장 피드포까지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평생 잊기 어려운 신나는 다운힐을 만끽했다. 역시 업힐 다음에는 다운힐이라는 보상이 주어진다.


첫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거리가 다소 짧고 코너가 적었으며 다운힐에 다소 자신이 생겼는 지 마음이 한결 여유로웠다. 아마도 이번 여행의 백미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고개를 내려오다 잠시 들린 El Acebo 마을의 알베르게에서 간식을 들었다. 분위가 좋아 하룻밤 머물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계속 다운힐을 즐기기 위해 그냥 지나쳤다>


내려오던 중 간식을 위해 들렸던 작은 마을 El Acebo라는 마을의 알베르게에는 가을 석양의 햇살이 깊숙하게 깃들고 음악은 잔잔히 흐른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너무 좋다. 옆좌석엔 목소리를 잃어버린(속된 말로 벙어리) 점잖은 일본 사람이 홀로 와인을 마시고, 호감이 가는 그 사람과 스마트폰 번역기를 이용해 잠시나마 대화를 나눴다. 순간, 하룻밤 묵고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대로 다운힐을 즐기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런데 그게 실수였다. 왜냐하면 다음에 묵은 숙소주인은 내가 이번 여행 중에 만났던 최악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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