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호 Feb 05. 2023

자전거로 떠난 산티아고 12

Day9(11/2), Rest day at Leon

어젠 정말 통나무처럼 잘 잤다. 할머니급 아줌마들 사이에서...

6명이 정원인 방에 스위스,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온 중년 이후의 아줌마들 다섯이 투숙을 하게 되었고 거기에 내가 끼어 버렸다. 더군다나 화장실, 샤워도 하나뿐이라 이만저만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식사 후 일찍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그들은 코비드 백신주사를 맞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 목소리 높여 논쟁을 하고 있었다. 저 아줌마들 혹시 밤늦게까지 떠들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다행히 9시 전후 모두 자리에 들고 소등을 했다. 

.....그리곤 곧 아침이 밝았다. 


쌀쌀한 아침, 아침 햇살이 동쪽 등뒤에서 비추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아침-

                                        정현종

아침에는 운명 같은 것은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을 다가올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것은 없다


시인의 아침은 어쩌면 이렇게 나의 마음을 파고들까? 그가 노래한 아침이야 말로 오늘 내가 즐기고 있는 바로 이 아침인걸 깨닫게 되어 한결 기분이 좋아지고 온몸에 에너지가 넘친다.


노래도 흥얼거렸다.

Sweet Calorine "Good time never seems so good" 

그래 지금이 즐겁지 아니하뇨?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좋은 시간인지 막상 모르는 때가 많은 것 같다. 오히려 불평을 먼저 하기 일쑤다. 나는 이 순간을 감사하며 즐긴다. 스페인 북부 어느 산골, 사위는 고요한데 자전거 타이어가 지면에 부딪히며 내는 Humming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Leon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터미널에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늦은 아침을 들기 위해 터미널 건물 안을 둘러보았지만 식당은 없고 조그만 매점만 있어 간단한 음료와 빵을 사 먹었다. 그러는 사이, 버스가 터미널을 떠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뛰어 나가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이미 늦었다. 버스는 지나갔다!

에이 칠칠이... 

에라 그냥 타고 가자! 50km 정도야 누워서도 간다. 자전거 타는 게 여전히 즐거웠다. 탁 트인 평야, 한적한 도로, 바람도 없고 더군다나 아침 해는 뒤에서 비치고, 정현종이 갈파했듯 역시 나의 아침은 풋기운이 솟는다.

Leon에 있는 커다란 성당. 성당의 이름을 몰라도 성모 마리아 성당이라고 둘러대면 대부분 정답이다. 성당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 한다. 

Leon의 명물 Santa Maria성당 근처의 호텔에 도착하니 2시. 예약한 호텔에 여장을 풀고 오랜만에 뜨끈하게 목욕도 하고 빨래도 했다. 

<18세기에 지어졌다는 건물이 이제는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옆방 소음이 그대로 들렸지만 고풍스러운 건물에서 하룻밤 지낼 수 있다는 기쁨을 해치진 않았다.>  

Leon 한 복판에도 예외 없이 커다란 성당이 있고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선 입장료를 내야 한다. 성당은 더 이상 모든 사람의 집이 아닌 셈이고 성당을 유지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 되어 버렸다. 하기야 언제 돈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있었을까? 예전에 더 많은 돈이 어떤 방식으로든 교회로 흘러들어갔을 테지만.....  스페인에 있는 커다란 성당의 이름은 대부분 성모 마리아 성당이다. 그러니 굳이 이름을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스페인의 평범한 인사말 Hola("올라"라고 발음하는 영어의 Hello에 해당하는 말)처럼 강력한 말을 이전에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아는 사람을 만나던 낯선 사람을 마주치던, 식당에서 만나든 길거리에서 지나치다 만나든 "올라"하고 인사를 하는데 그 인사말을 안 들은 척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설령 떮더름한 표정으로 그 말을 건네도 항상 대답이 돌아온다. 그들이 어떤 상황에 있든, 바삐 걷고 있는 중이나, 남들과 열심히 대화를 하는 중이나 잠시 시간을 내어 같이 "올라"하고 대꾸를 한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헬로나 올라나 발음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스페인을 좀 더 경험한 분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이번 여행에서 겪은 바로는 그렇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강력한 말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말을 하면 그 어느 누구도 무시당하지 않고, 따돌림받지 않게 말이다. 오 주여! 오 마리아여! 

 

이넘들 점심시간이 4시까지라 모처럼 그럴듯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지만 역시 실망스러운 선택! 그냥 단백질 주사 맞는 셈 치자. 다행히 옆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던 두 분의 스페인 아줌마들이 자기네가 먹고 있던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덜어 줘 맛을 보게 되었다. 그 들도 자전거 여행자인데 산티아고를 향해 가는 것은 아니었다. 부러운 스페인 자전거 여행자들이여....


식사를 마치고 시내 구경을 조금 했다. 순간, 피로가 몰려온다. 내일은 다음 목적지까지 진짜 버스 타고 간다. -끝-

작가의 이전글 자전거로 떠난 산티아고 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