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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호 Jan 29. 2023

자전거로 떠난 산티아고 11

Day 8(11/1)


<Fromist에서 Bercianos del real Camino, 70km>


지난밤 한 방에 세명의 한국인이 묵었다. 두 명 모두 젊은이 30대 전후반이나 됐을까? 이렇듯 한국인과 같은 숙소 같은 방에서 지낸 지가 세 번째. 길에서도 많이 만났다. 다 젊은 사람들. 초등학교 6학년 짜리도 있었다.


아침은 지난밤 같은 벙커침대를 공유한 젊은이(내가 2층)와 함께 근처 식당에서 스페인식으로 가볍게 들었다. 외국에서 한국 사람은 외모와 행동거지로 대략 알아차릴 수 있다. 특히, 그 젊은이가 짐을 싸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옛날 군에서 군장을 꾸릴 때 배웠던 동일한 방식대로 딱 부러지게 자신의 배낭을 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눈에 한국 사람 그것도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인 것을 직감하고는 같이 아침 먹으러 가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그는 제대 후 향후 진로를 고민하러 이 길을 걷는 중이라 했다. 같은 숙소에서 어젯밤 만나 얘기를 나누었던 독일 소녀도 역시 고등학교 졸업 후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러 이 길은 걷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집에 있으면 부모님이 귀찮게 굴어 이렇게 걷고 있으니 자 사색하기에 참 좋다는 말도 붙였다.

젊은 날의 고민! 베르테르의 편지여!! 

  

그 들은 말하자면 검(Sword-파울로 코넬료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카미노에서 찾고자 했던 상징적 물건, 또는 의미)을 찾고자 이곳에 몰려드는 것이다.  


근데 왜 유독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걸까? 뭐가 아쉬운가? 아님 기쁜가? 나도 그중에 한 명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아무래도 쉽사리 이해가 되질 않는다. 


솔직히 말해 나는 파울로 코엘료를 읽고 좀 실망했다. 그리 감동적이지도 못하고 인간 내면의 성찰도 깊이가 그저 그런 "공상구도" 또는 "공상득도"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여러 가지 훈련, 씨앗 훈련, 춤의 훈련 그리고 개를 만나 싸우고 쫓기고 하는 내용들은 도대체 쉽게 공감이 되질 않는 공상 수준의 이야기 아닌가? 물론 그는 산티아고에 진리가 있다고 특정 지우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의 독자들은 마치 그가 찾던 검이 산티아고길에 있다고 오해하는 것은 아닌가? 


더군다나 한국의 유명 인사들 중에 산티아고를 걷고 나서 무슨 호들갑 스런 강연을 하기도 했고 TV에선 리얼리티 쇼까지 해댔으니 아무래도 그 영향이 큰 탓이리라. 오늘부터 주변 풍경에 눈을 돌리려 했지만 내면에서는 볼멘소리가 들려온다.


"순례길은 과대포장되어 있다. 이렇게 걷고 고생한다고 무슨 의미를 찾겠는가? 두 번 다시 안 한다. 군대에서 경험했던 육체적 고생과 다를 바 없다. 고생해 보지 못한 사람들 괜히 폼 잡고 얘기하는 거나 술자리에서 후배 여학생들 모아 놓고 군대 얘기하던 것과 그게 그거다..."


이런 호들갑에 밥숟가락 하나 더 얹고 있는 나 자신도 한심스럽긴 매 한 가지다.... 어쨌든, 한국 살람들 많아해!!


폭풍우가 지나간 아침에 햇볕이 간간이 들고 바람은 잔잔하다. 11월이지만 기후는 비교적 온화하다. 워밍업이 끝나면 긴팔 옷을 두어 겹에 겹쳐 입고 반바지에 스타킹을 입으면 쾌적하게 느껴지는 날씨다. 다만 바람의 속도에 따라 다소 추위를 느낄 수도 있을 정도이다. 


Meseta평지라는 지역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래도 해발은 1000미터 육박. 모처럼 자전거 속도가 붙는다. 오전에 순식간(?) 40킬로. 그러나 엉덩이가 아파 짧은 오후 라이딩을 끝내고 일찍 숙소를 찾았다.


내일은 가까운 곳까지 타고 간 후 버스를 타고 17km 떨어진 큰 도시 Leon에 가서 호텔 잡고 쉬어야겠다. 빨래도 하고...


어쨌든, 목표까지 이제 400km 미만. 


오늘 숙소에 프랑스 할머니급 아줌마(사돈 남 말하는 식이지만...)가 엄청 수다를 떨어 다소 힘들겠다.


체인이 비를 맞아 뻑뻑해졌다. Lip Balm성분을 보니 미네랄 오일이 포함되어있다. 빙고! 입술은 튼튼하니 체인에나 바르자. 

이렇게 칼로리 소모가 많으니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라면 수프도 몽땅, 달고 단 케이크도 단숨에 꿀꺽, 맥주도 한 잔... 다만, 그럴싸한 식당 만나는 것은 하늘에 맡길 정도다.


저녁은 파블로란 스페인 친구일행이 들고 온 바께트, 초리코(?)란 스페인식 소시지 그리고 햄으로 때웠다. 와인까지 얻어 마시고... 우린 핼러윈 때 법석이지만 실제 가톨릭 국가에선 그다음 날 즉 오늘 11월 1일, All saints day, 가 큰 명절이라 한다. 즉 핼러윈은 All Saints Day의 전초전 심하게 말하면 일종의 장식인 셈인데 정작 그런 날에 이태원에서는 참사가 일어났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파블로 덕분에 가게가 문을 닫아 굶어 죽을 판에 다행히 공짜로 저녁을 얻어먹는 즐거움을 누렸으니 불역낙호아! 

파블로란 친구가 한국에 대해서 많이 아는 척을 한다. 좋은 점도 알고 있고 나쁜 점은 비판도 하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자신의 여자친구가 한국인이라고 해서 자세히 캐어 물으니 말끝이 왔다 갔다 한다. 

그리고 스페인식 카드 게임. 카드가 많이 다르다...

오늘도 이렇게 지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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