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호 Jul 07. 2023

자전거로 떠난 산티아고 18(마지막 편)

Day14(11/7) Santiago 도착

프랑스의 서쪽 끝단에 있는 피레네 산 아래동네 St Jean Pie De Port를 떠난 지 14일 만에 드디어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마드리드 공항에 내려 팜플로나를 거쳐 예의 프랑스 마을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이틀을 더하면 모두 16일.

자전거에 달린 Odometer에 기록된 그 간의 주행거리는 811km!

반면 산티아고 성당옆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0km라고 표시되어 있다.


811km의 거리엔 1441미터, 1504미터 그리고 1334미터의 고지를 비롯한 그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오르기 힘들었던 많은 언덕과 산들이 포함되어 있다. 돌밭길과 비바람은 양념...



성당 근처 순례자의 사무실에 들러 완주 증명서를 기념으로 받았다. 내 이름과 산티아고에 도착한 날자가 적혀 있다.

서류에 적힌 글을 해독할 수 없지만 Sancti Jacob이란 영어의 St James 즉, 성 야고보 Apostoli는 영어의 Apostle 즉, 예수의 제자란 말인 것 같다.


따라서 인간 이기호는 모월 모시 Santiago de Compostella에 있는 예수의 제자 성 야고보의 무덤에 참배하러 온 순례자임을 증명한다 뭐 어쩌고 하는 내용이리라.


나에게는 그러나 증명서보다 더 중요한 인증 사진이 필요했다.

마침 곁에 있던 사람에게 부탁해 자전거를 두 손으로 쳐들고 성당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박았다. ㅎㅎ(여기서 "ㅎ"는 흐뭇할 "ㅎ"이다. ㅋㅋ)


광장을 둘러싼 회랑의 한 기둥에 기대앉아 목이 아플 정도로 올려다봐야 하는 성당을 바라보며 사과를 입에 물고 씹기 시작했다. 이제 끝났다! 왠지 자리를 뜨기 싫어서 한참 동안 멍하니 성당의 첨탐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첨탑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흰구름이 만든 착시현상 때문에 옆으로 쓰러지려는 듯 위태롭게 서 있는 것 같았다.

나 같이 하염없이 성당을 쳐다 보며 감상에 젖은 순례자들도 있었지만 관광객들도 꽤 많이 있었다.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나를 보고 자신을 스페인 사람이라고 소개한 어떤 분이 도로 상태는 어땠는지 날씨는 어땠는지, 자신도 자전거 타고 순례를 계획 중이라 궁금한 게 많다고 했다.    

<볼륨 크게 틀고 함 보시라. 파이프 오르간과 테너의 화음이 고딕 성당 내부에 아름답고 장엄하게 울려 퍼진다>

순례자를 위한 12시 미사에 참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구경삼아 미사에 참여한 것이었다.

그런데 대단한 퍼포먼스를 목격했다. 가톨릭 미사중에 연기가 나는 향로를 이리저리 흔드는 의식이 있다는 것쯤이야 TV 등의 매체를 통해 익히 알고 있긴 한데 이 건 뭐랄까 엄청나게 특별나다. 매일 피래미만 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고래를 본 것처럼 놀랍다.


김장 항아리만큼 커다란 향로를 장정 대여섯 명이 밧줄로 힘껏 잡아당겨 성당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엄청난 속도로 진자 운동을 시키는데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혹시 날아오는 향로에 부딪히면 어떡하나 은근 겁이 들 정도였다. 더군다나 향로에서 피어 오른 짙은 연기 때문에 반대편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다. 미사가 아니라면 휘파람이라도 불고 박수라도 쳐 주고 싶었다.


이렇게 큰 향로를 흔들어 대는 것은 땀에 젖은 수많은 순례자에서 나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라는 썰도 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썰도 만만치 않다.

 

향로의 진자 운동과 함께 파이프 오르간과 테너의 화음이 고딕 성당 내부에 아름답고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건 순례자를 위한 일종의 사죄의 퍼포먼스, 위안의 퍼포먼스 그리고 축복의 퍼포먼스라는 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시내 한 복판에서 바라본 성당의 원경>
<성당 지하실에 있는 야고보의 관. 은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대리석이었던 같은데....>
<칼을 빼 든 야고보. 말발굽 아래의 무어인을 치려고 하는 모습이다.>
<비가 내리는 산티아고의 구시가. 몇 명의 인부가 크리스마스 장식을 달고 있었다>


사족 하나 - 돌이켜 보면 나의 여행은 너무 여유가 없었다. 하루하루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기에 바빴고 하루하루가 살아남기 위한 수고였다. 다시 여행을 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유명한 여배우 셜리 맥클레인도 비슷한 경험을 토로했지만 그러나 그녀는 여행이 끝난 후 비로소 순례가 시작 됐다는 의미 심장한 말을 했는데 과연 나도 그럴까? 잘 모르겠다. 자전거 타고 약간의 모험성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는 다른 곳도 많이 있으리라.... -끝-  

작가의 이전글 자전거로 떠난 산티아고 1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