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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후 Apr 02. 2021

사라지지 않는 것

순환선

- 김뜻돌의 ‘사라져’에 관한 단상


 온스테이지 채널을 혹시 알고 계실지 모르겠다. 온스테이지는 실력이 뛰어난 인디 밴드를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들의 공연 영상을 소개하는 채널이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 채널의 영상을 통해 주목을 받곤 했다. 레트로 퀸 ‘박문치’나 ‘이날치’가 대표적이다. 


 온스테이지 채널 속 많은 아티스트 중에서 소개해 드리고 싶은 가수는 ‘김뜻돌’이다. 그중에서 오늘은 ‘사라져’라는 노래에 관해 얘기해보려 한다. ‘사라져’라는 노래를 통해 김뜻돌이라는 뮤지션을 재발견했다고 느꼈던 순간의 기억 때문이다.


*


 어느 한가한 일요일 오후, 나는 더러워진 자전거를 청소하러 내려갔다. 노래 들으면서 해야겠다 싶어 플레이리스트를 찾던 중, 유튜브에서 김뜻돌의 ‘꿈에서 걸려온 전화’ 뮤직비디오를 보게 됐다. 청소 작업을 위해 자동 재생을 체크하고 들었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바탕으로 한 노래였기에 사운드를 즐기며 청소했다. 그런데 노래가 끝나고 갑자기 쓸쓸한 목소리의 낭독이 흘러나왔다. 한참 낭독을 듣다가 다시 노래가 시작됐다. 난 바로 핸드폰을 들어 어떤 영상인지 확인해봤다.


 ‘사라져-김뜻돌 (living room ver)’ 


 집에서 바라본 풍경들과 거실에서 ‘사라져’라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함께 편집한 영상이었다. 영상 앞부분, 풍경 영상에는 시 같은 김뜻돌의 낭독이 시작된다. 순간적으로 그 낭독에 빠져들었다.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란 말로 시작하는 낭독의 도입부에서 떠오른 수많은 기억 때문일까. 부끄러운 기억은 사라져 버렸으면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부끄럽기에 더욱 기억에 선명하게 남기 마련이다. 음유시인의 담담한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게 다 틀렸다고 해도 이것만은 맞을 테지.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영영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런 낭독이 끝나고 비로소 ‘사라져’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김뜻돌은 자신이 쌓아온 노력이 헛된 것처럼 느껴진다고 탄식한다. ‘누군가는 눈을 가리고 앞을 가는 게 편하다고 말해도’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한다. 세상 모든 게 똑같고 자신이 만든 것 역시 누군가의 흉내라는 냉소적인 고백을 이어간다. 난 김뜻돌의 고백에 공감했다.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가 언젠가 겪는 고통에 대해 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고통은 바로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난 쓸쓸한 고백이 담긴 노래에서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음악가 역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는 걸 느꼈다.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고민 탓에 자신이 쌓아온 노력을 망치고 싶고 살아갈 시간을 죽이고도 싶겠지. 자신의 평범함을 알아버린 예술가의 다음은 어디일까. 노래는 그다음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그렇기에 이 노래를 듣고 한참을 멍하니 고민했다.


 그런데 김뜻돌의 낭독하는 시와 ‘사라져’라는 노래가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두 가지 형태로 표현된 이 ‘사라져’라는 연작은 노래가 먼저고 시가 그다음인 건 아닐까. 


 노래의 뮤지션인 김뜻돌은 특별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콤플렉스를 털어놓는다. 시의 낭독자인 김뜻돌은 그런 콤플렉스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인정한다. 어쩌면 결국 시와 노래가 결합한 이 영상은 부끄러움을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털어놓은 뒤 느끼는 건 부끄러움이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인정하게 되면 그다음엔 새로워질 수 있다.


 분명 어떤 고민은 영영 사라지지 않는다. 고민하던 시간 역시 죽이려 해 봐도 그저 기억으로 남는다. 분명한 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뿐이다.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고민이 있고, 그건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또 새로 생겨날 뿐이다. 지긋지긋하더라도 우리 삶엔 사라지는 건 없다. 그저 그 존재를 잠시 숨길뿐 언젠가는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심지어 사라졌으면 하는 그 마음조차도. 


 그렇기에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 걸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내 삶의 부끄러웠던 기억을 인정하고, 나를 구성하는 부분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새로운 시작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다시 ‘사라져’를 들으며 나에게서 사라지길 원하는 걸 생각해봤다. 어느새 노래는 끝이 났지만, 내가 사라지길 원하는 건 여전히 내 곁에 있었다.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영영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 참고 영상

[온스테이지2.0] 김뜻돌 - 사라져

https://youtu.be/rhrFqwPYwig


사라져 -김뜻돌 (living room ver.)

https://youtu.be/KbLT08Zdmag


글쓴이: 순환선

소개: 스쳐가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매거진 '추후'

이제 막 서른이 된 친구들이 모여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서른의 시선을 담은 글을 매주 [월/수/금]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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