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K
별로 맛있지도 않은 음식이 가끔 한 번씩 너무 먹고 싶어서 당길 때가 있다. 매일 먹고 싶은 맛은 아니지만, 가끔 너무 먹고 싶어서 참을 수 없는, 그런 음식. 나에게는 '조원선'과 '롤러코스터'의 음악이 그렇다.
학창 시절에는 롤러코스터라는 밴드를 몰랐다. 보통은 조원선을 알기 전에 롤러코스터부터 시작하지만, 나는 거꾸로 조원선의 솔로 앨범을 통해 롤러코스터 (특히「어느 하루」는 지금 들어도 명곡이다)를 알게 됐다. 수능이 끝나고 이제 막 학교를 졸업했을 봄, 다들 새로운 대학교에 들어갈 생각에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나날들. 학교를 막 졸업한 나는 그런 아쉬움과 부러움을 뒤로하고 재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에는 하루하루를 어두컴컴한 독서실에서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뜻한 봄날이 계속돼서였을까, 항상 원하는 만큼 이뤄내지 못했었다. 혼자서 공부하고 계획 짜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런 봄날에는 느지막이 아침에 일어나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날이 있다. 전날 동기부여를 하고 잔뜩 계획하고 오늘 할 일은 태산같이 쌓여있지만,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그런 나른한 아침.
그런 날에는 계획을 이루지 못한 나를 자책했다. 그럴수록 스트레스는 쌓여갔다. 나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는 밤에 음악을 듣는 일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조원선의 음악을 접하게 됐다.
아침부터 비는 부슬부슬 창문을 열어보니
쌀쌀해진 바람 재채기를 벌써 몇 번이나 했는지
이런 날은 그냥 빈둥빈둥 콧노래나 부르다
오늘 커피는 다른 날보다 조금 진하게 마셔볼까.
조원선 「베란다에서」
조원선의 베란다에서는 그런 나의 마음을 콕 집어 저격했다. 빈둥빈둥 커피나 마시며, 하루를 뒹굴뒹굴거리다 끝내고 싶은 마음들. 남들은 봄날에 그렇게 행복한 캠퍼스 라이프를 보내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같은 생각들.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조원선의 노래를 틀어놓고 위로받았다.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위로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노래에 담겨있는 평온한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하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이 노래는 초반에 조원선이 ‘아이고 틀렸다’하면서 ‘다시요?’하며 노래를 다시 시작하는 부분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왜 조원선이 실수한 부분을 그대로 넣었을까? 실수한 부분을 빼면 더 깔끔한 음악이 됐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길고 지난했던 시간은 지나갔고, 한동안 조원선의 노래를 듣지 않게 됐다. 성인이 되면 조금 더 잘 해낼 거라 믿었던 나는 여전히 실수투성이었고, 어느 하나 나아진 점이 없어 답답했다. 되는 일 하나 없다고 생각한 어느 일요일 비 오는 나른한 오후, 평온함을 찾고자 조원선의 베란다에서를 다시 찾아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왜 실수한 부분을 넣었는지 깨달았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매일 실수하고 후회하고 또다시 다짐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게 우리들의 일상이다. 실수한 부분을 그대로 넣은 이 노래는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 같다.
'괜찮아, 실수하면 좀 어때? 그게 우리 일상인걸'
조원선의 「베란다에서」는 완벽하지 않은 우리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렇기에 평범하지만 평온함을 안겨 준다. 일상의 평온함을 되찾고 싶어 하는 이에게, 또 매일 자신을 자책하는 이에게 이 노래로 위로를 보내고 싶다. 완벽하지 않으면 좀 어떤가. 언젠가 실수하지 않고 해낼 수 있는 날은 반드시 찾아올 테니.
참고영상 :
조원선 - 베란다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14qJF_2A8PM
롤러코스터 - 어느 하루
https://www.youtube.com/watch?v=Bh_NLR14VJs
이제 막 서른이 된 친구들이 모여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서른의 시선을 담은 글을 매주 [월/수/금]에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