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랜덤 박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후 Apr 26. 2021

제사도 망자의 축제가 될 수 있다면

유령 K

   최근 ‘뜨랑낄로(스페인 어로 ‘천천히 해’ 같은 뜻이라고 한다)’라는 여행 유튜버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 여행이라니 어쩐지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도 있지만, 1년 동안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면서 쌓인 답답함을 대신 해소해줘서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다.


   그는 지금은 미국에서 여행을 시작했지만 이전까지는 남미에서 여행했다.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봤던 영상은 멕시코를 여행할 때였다. 타코의 나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는 나라. 인신공양 풍습이 존재했던 아즈텍 문명과 마야 문명이 자리 잡은 나라. 코카콜라 1위 소비국. 그 정도가 내가 가진 멕시코 지식의 전부였지만 흥미를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의외로 내가 가장 재미있게 봤던 문화는 멕시코에서 1년에 한 번 열린다는 ‘망자의 날’이었다. 그는 멕시코에 1년에 한 번 있는 망자의 날에 추모 행사를 보게 되는데, 나는 그 순간 문득 우리나라의 ’ 제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멕시코 '망자의 날' 축제


   1년에 한 번, 죽은 자를 기리는 날, 완전히 우리나라 제사랑 똑같았다. 제사랑 똑같다면 침울하고 우울한 분위기겠거니 하고 지레짐작했지만 사람들은 거리에서 춤을 추고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더 놀라웠던 건 무덤 앞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웃고 떠들며 즐기는 분위기였다. 우리나라의 엄숙하고 진지한 제사를 생각한다면 놀랄만한 일이었다.


  우리 집은 여전히 본가에서 제사를 지낸다. 본가는 명절을 포함해서 1년에 5~6번 정도 제사를 지내곤 한다. 요즘은 제사가 많이 사라졌지만, 할아버지는 신실한 기독교 신자이면서 제사를 지내며 절도한다. 할아버지는 주변의 시선을 우려했는지 ‘제사는 우리나라의 문화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며 종종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


어렸을 적 아무 생각 없이 제사에 참석했던 나는 성인이 된 후에는 조금 달라졌다. 이런저런 바쁘다는 핑계를 들어 제사에 참석하지 않기 시작했고, 지금은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아니고서야 참석하지 않는다. 물론 다행히 강압적인 분위기는 아니므로 한소리 듣는 일은 없다.


제사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는 으레 듣곤 하는 형식적인 안부를 묻는 질문들이 귀찮은 것도 있지만, 점점 식구는 늘어나는데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몇 번 말을 섞어보지도 않았던 사람들과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의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서다. 제사를 지내며, 모두가 웃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던 기억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제사는 나에게 항상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만 자아냈다.


‘왜 누군가는 피도 섞이지 않은 쌩판 남을 위한 제사에 참석하고 있는 걸까’


사실 이런 제사 문화는 이전부터 많은 논란을 만들었다. 시댁 제사나 명절 때문에 ‘명절증후군’이라는 용어도 생겼으며 명절이나 제사 때문에 이혼 소송을 담당하는 변호사들이 웃고 있다는 건 이제 흔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쯤 되면 이런 제사 문화가 정말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모두가 즐길 수 없는 엄숙한 분위기의 제사가 문화가 될 수 있을까? 그냥 제사 없이 모여서 향이나 피우고 대충 밥이나 (사) 먹으면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들이 피어오른다.


제사가 정말 좋은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지금의 제사가 망자가 진정 원하는 상황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 누군가는 불편하고 즐길 수 없는 문화가 진짜 좋은 문화가 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생판 남인 사람들이 강제로 모여 형식적인 제사를 같이 한다고 해서 ‘가족’이라는 동질감이 생기는 건 아니다. 또 최근 ‘가족’으로부터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피가 섞였다고 해서 반드시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지도 않는다.


어쩌면 제사는 그저 나를 잊지 말아 다오 하는 형식적인 행사이며, 멕시코처럼 가족이 모여 동질감을 얻을 기회를 마련하는 장이 되는 게 진정 죽은 이를 위하는 일이 아닐까? 언젠가는 제사도 정말 모두가 웃고 즐기며 떠들 수 있는 또 하나의 ‘축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글쓴이: 유령 K

소개: 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사라졌다.


매거진 '추후'

이제 막 서른이 된 친구들이 모여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서른의 시선을 담은 글을 매주 [월/수/금]에 발행합니다.


['추후'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maily.so/later/about


매거진의 이전글 파주 생활자의 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