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K
어렸을 적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기억하는가? 노스트라다무스는 1999년에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였다. 비단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뿐만 아니라 인간은 이전부터 신이나 점, 천문학 등을 통해 언제나 미래를 예측하고자 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바로 인간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사주나 별자리, 타로 등이 아직도 성행하는 것을 보면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성향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해진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일까? 영화 <컨택트>의 원작이자, ‘테드 창’의 단편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원제: The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는 흥미로운 공상 과학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특히, 수록된 단편 중 ‘네 인생의 이야기’는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물리학적, 언어학적인 이야기를 섞어 보여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깊이 있는 물리학적, 언어학적 지식이나 이해가 필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네 인생의 이야기’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날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한다. 주인공은 이들의 언어를 배우면서 미래를 알게 된다. 외계인들은 인과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떤 사건을 보게 됐을 때, 원인과 결과(인과관계), 즉 시간 순으로 사건을 이해하려고 한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있었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에 대해서 원인과 결과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재구성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외계인들은 이런 인과론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들은 목적론적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빛의 이동 경로를 인과론적으로 계산한다면, 시간에 따른 빛의 진행 방향을 현재 상태를 통해서 그다음 상태를 차근차근 계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만약 빛의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고 그 방향이 언제나 시간을 최소화하도록 움직이게 설계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빛의 이동 경로는 언제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단 하나의 경로를 택할 것이다.
책에서 설명하는 이론은 물리학에서 실제로 적용되는 방식이라고 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빛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입자에 적용되며, 양자역학 등의 기초가 되는 이론이라고 한다. (이는 물리학 대학원생의 자문을 받아 알게 된 사실이다. 하지만 더 이상 설명을 듣자니 머리가 아프므로 굳이 더 깊게 파고들지 않겠다)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앞서 설명한 물리학 이론처럼 외계인의 목적론적인 언어를 습득하면서 주인공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한다. 그리고 후에 겪게 될 자신의 비극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눈앞에 있는 남자와 아이를 갖기로 한다.
만약 나의 선택으로 인한 비극적 결말을 미리 알게 된다면 과연 똑같은 상황에서 같은 결정을 내릴까? 아마 대부분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정해진 미래가 비극이라고 한다면 소설처럼 미래를 안다는 것은 마냥 행복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때로 이미 결과가 예견되어 있더라도 현재의 감정에 충실한 선택을 한다. 누군가는 뻔히 이별을 직감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만남을 지속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비극적 결말을 봤음에도 그 남자와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 이유를 ‘사랑을 나누고 너(딸)를 가지기 위해’라고 말한다.
사실 모든 일은 결과만 놓고 본다면 비극이지만, 그 과정은 비극이 아닐 수도 있다. 주인공이 비극적인 결과를 겪었다고 해서 그를 사랑하고 딸을 갖게 되는 것조차 비극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는 다분히 결과론적인 해석이다. 이런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누군가는 어리석은 선택이었노라고 비웃을 수 있다.
물론 결과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주인공처럼 결과로 인해 후회가 남더라도 정말 사랑할 수 있는 ‘너’를 만나는 일, 현재를 살아가는 일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너’로 인한 비극보다, ‘너’를 만나는 행복이 더 소중한 일이기에 인간은 항상 어리석어 보이는 선택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인간의 어리석음이 아니라 아름다움일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