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제51회 백호기
백호기 응원전이 4년 만에 부활했다. 당시 중2였던 나는 아버지와 함께 백호기 경기를 보기 위해 종합경기장으로 향했다. 당시 오현고와 중앙고의 경기를 봤던 기억이 난다. 바디섹션 응원의 명맥이 끊겼다는 뉴스를 본 것 같은데 오현고는 간단한 동작 위주이지만 바디섹션 응원을 하고 있었고, 중앙고는 준비시간이 부족했는지 자율응원을 하고 있었다.
오현고의 페널티킥 성공으로 오현고가 경기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중앙고 학생회장은 ‘괜찮아!‘ 라며 중앙고의 선수들을 격려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오현고의 결승 진출 성공.
다음날 결승전, 집에서 tv로 결승전을 봤다. 결승에 올라온 제일고 역시 바디섹션 도안을 파서 응원전을 진행하는 모습이 tv에 담겼다. 역시 전통 있는 학교들은 달랐다.
2024년 제52회 백호기
시험공부하러 카페에 가기 전, 잠시 종합운동장에 들려서 백호기 응원전을 관람했다. 결승전에서 만난 건 역시 오현고와 제일고. 그런데 두 학교의 응원단 수가 작년보다 훨씬 늘었다. 바디섹션 응원도 유튜브에서 봤던 코로나 이전 응원과 거의 똑같았다. 명맥이 끊긴 줄 알았던 응원전을 기어코 부활시킨 것이다. 나는 두 학교의 응원전을 관람한 뒤, 경기장을 나왔다.
2025년
나도 이제 고등학생이다. 나는 형이 있는 학교이자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오현고로 진학했다. 4월 초에 백호기 응원을 직접 할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53회 백호기 D-4
이때부터 응원전 연습을 시작했다. 첫날은 3학년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는 관계로 화려한 바디섹션인 ‘모나리자‘와 ’카운트다운‘은 하지 않고 간단한 동작 위주인 교가, 응원가, 뱃노래, 챔피언, 아파트를 연습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뱃노래를 처음 할 때였다. 학생회의 뱃노래 시범을 보고 학생들이 처음 직접 해볼 차례인데, 뱃노래 간주가 나가던 중 방송부의 실수로 음악이 꺼졌다. 하지만 수백 명의 학생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노래가 끊겨도 뱃노래를 계속했다. 응원을 이끄는 학생회장도 오현고의 단합심을 보여줬다며 뿌듯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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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나리자 차례이다. 다행히 내가 해야 할 바디섹션은 그렇게 난도가 높지 않았다. 호랑이 도안을 만들 때도 내가 만들어야 할 부분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부분은 아니었다. 대신 다른 학생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어서 여러 번 NG를 냈다. 하지만 우리는 성공적으로 모나리자를 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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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일 어려운 카운트다운 차례이다. 이번에는 내가 해야 할 것이 꽤 있었다. 카운트다운에서 숫자 부분을 맡은 학생들이 아마 제일 고생했을 것이다. 중간에 웃음이 나는 포인트도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재밌었다. 학생들은 역시 카운트다운도 성공적으로 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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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정식 날이다. 카운트다운부터 시작해서 모나리자 까지 쭉 한 바퀴를 끝내고 백호기에 출전하는 축구선수들을 위한 출정식을 진행했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 학생회장을 필두로 한 선수들에 대한 경례, 응원가 등을 마치고 출정식이 끝났다.
4월 5일 vs 제일고
오현고의 경기는 대기고와 중앙고의 준결승전이 끝난 뒤 바로 이어지는 제일고와의 준결승 경기였다.
경기 일정이 타이트하기 때문에 오현고 학생들은 준결승 1경기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에 다 같이 관중석에 모여서 대기했다. 반대편의 제일고도 마찬가지로 관중석에서 대기했다.
준결승 1경기는 대기고가 일방적으로 중앙고를 압도하고 있었다. 후반전 즈음에 관중석에 들어왔는데, 대기고는 이미 4골 차로 앞서가는 중이었다.
중앙고 응원단과 가까운 관중석에 오현고 학생들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중앙고의 바디섹션을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었다. 중앙고는 학생수가 대기고보다 훨씬 적었고, 뭔가 응원하는데 합이 잘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응원을 주도하는 학생회장은 여학생이었는데, 지쳤는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준결승 1경기는 대기고가 5:0으로 승리했다.
이제 오현고 차례다. 학생회장의 긴장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응원을 시작했다.
응원을 하면서 경기를 보는 건 쉽지 않았다. 바디섹션 중에는 뒤돌아서 있거나 땅을 보고 숙이는 동작도 있었기 때문이다. 힐끔 봤을 때는 치열한 공방전 중이었다.
한편 제일고의 진영에서 제일고의 응원가인 차돌가가 울려 퍼졌다. 제일중 시절에 부르던 차돌가를 오현고 학생이 되어서 들으니 묘한 감정이었다.
하프타임에 오현고 선배인 뭐랭하맨이 찾아왔다. 응원단상에 서서 학생들을 격려해 줬고, 은근 자기 자랑도 하며 덕담을 많이 해주시고 가셨다. 하고 싶은 거 많이 하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후반전까지 양 팀은 득점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바로 승부차기로 들어갔다. 오현고의 첫 번째 키커가 슛을 성공시켰고, 다음 차례인 제일고의 첫 번째 키커가 슛을 찼다. 그런데 오현고의 골키퍼가 이를 막아냈고, 우리는 크게 환호했다. 이후 양 팀의 2~4번째 키커는 모두 슛을 성공했고, 이 과정에서 두 학교의 진영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이제 오현고의 5번째 키커가 슛울 성공시키면 경기는 그대로 오현고의 승리로 끝이 나는 상황. 그리고 오현고의 키커는 멋지게 슛을 성공했고, 오현고의 학생회 임원들, 벤치에서 지켜보던 오현고의 축구 선수들이 운동장으로 뛰어나와서 서로 얼싸안았다. 오현고의 환호는 멈출 줄 몰랐다. 너무 흥분해서 학생들은 물을 뿌리면서 승리를 만끽했다. 그 뒤의 일은 잘 기억도 안 난다.
4월 6일 vs 대기고
이제 결승전이다. 오현고는 지난 2년 동안 준우승에 머물렀던 한을 풀고자, 그리고 상대편 대기고는 백호기 출전 팀 중 가장 긴 무관을 끝내고자 결의를 다졌다. 어제 하던 것처럼 응원을 시작하는데, 뭔가 앰프 소리가 어제 경기 때보다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들은 박자를 잘 맞추지 못하기도 했다. 학생회장은 잘 들리지 않더라도 빨라지지 말고 침착하게 하라고 독려했다.
전반전, 대기고가 두 골을 넣으며 앞서나갔다. 학생회장과 부회장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며 더 힘차게 응원하자고 했다. 전반전이 끝난 뒤, 대기고 진영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후반전이 시작하자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한창 응원하던 도중, 학생부회장이 ‘이제 흐름은 오현고에게 왔다.‘, ’ 2:0이 제일 뒤집기 쉬운 스코어다.’ 라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아까운 찬스를 놓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기고 선수들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오현고가 추격골을 만들어냈다. 다시 우리는 힘을 내기 시작했고, 응원도 활기를 찾았다.
그렇게 경기가 알 수 없게 흘러가던 도중, 대기고 에이스의 침투와 컷백을 막지 못하고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당시 오현고는 뱃노래를 하고 있었는데 골을 먹자마자 응원소리가 작아지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학생회장도 반쯤 포기했는지 우리는 즐기러 왔다며 이 순간을 즐기라고 했다.
그러다가 오현고의 선수가 스루패스를 잘 받은 뒤, 찬스를 놓치지 않고 골을 넣으면서 다시 희망이 생겼다.
후반전 추가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오현고는 모나리자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관중들의 환호 소리가 들렸고, 당시 뒤돌아서 있던 나는 살짝 경기장을 바라보니 대기고의 학생회가 경기장으로 뛰어나가서 대기고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때 ‘아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침울하게 오현고의 응원단으로 다가오는 축구선수들을 향해 엄지 척을 보내주었다.
학생회장도 모두 고개 들라며 마무리 말을 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대기고 학생들과 경례를 나누고 응원가를 부른 뒤, 백호기 응원을 마쳤다.
지금 생각하면 많이 아쉬움이 남는다. 전반전만 무실점으로 잘 막았으면 이길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 통산 10번째 우승이 1년 뒤로 또 밀렸다는 아쉬움 등이 남았다. 하지만 경기를 이겼을 때 그 짜릿함, 골을 넣었을 때 모두가 함께 나누던 기쁨 등은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나는 2학년 때도, 그리고 3학년때도 백호기 응원전에 참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