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화로 기억되는 도시가 있다. 그곳에는 밤마다 당신을 괴롭힐 악몽, 밤마다 당신을 설레게 할 사랑이 있다. 바로 경기도 부천시. 나에게는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의 도시이다. 21세기 초의 부천영화제는 판타스틱한 영화로 가득 차있었지만, 외양은 겸손하기 그지없었다. 상영관이 아파트단지 속 문화센터, 시청, 구청 같은 곳이어서 그냥 동네 행사 같기도 했다. 평일 오전 고요한 부천의 아파트 사이를 어슬렁어슬렁 영화보기 위해 돌아다니거나, 공무원들 일하고 있는 대낮에 시청 강당에서 피와 비명으로 가득 찬 영화를 보는 것이 내가 경험했고, 또 사랑했던 부천영화제의 모습이었다. 일상에 스며든 비 일상의 이질적인 모습. 영화의 본질적인 모습 같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기괴하고 다양한 상영작들. 부천영화제는 다양성에 진심이었다. 사람·좀비·괴물을 죽이는 신박한 방법,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기묘한 이야기, 아름답고 기괴한 사랑 이야기 등 내가 속한 세계가 끝도 없이 넓어졌다.
언제나 문제는 보고 싶은 영화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매년 부천영화제 갈 준비를 할 때마다 티켓 카달로그를 아무리 연구해 봐도 영화를 고를 수가 없으니, 매일 출근밖에 방법이 없었다. 마침 시간부자 대학생인지라 영화제 9일 동안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에 돌입했다. 집에서 1시간 거리인 부천에 가기위해 아침 8~9시쯤 나와 하루 종일 영화를 4~5편 가량 보고 밤 9~10시쯤 지하철 타고 돌아왔다. 좋아하는 걸 질릴 때까지 할 수 있는 열정의 자양강장제가 온 몸을 흘러 다니던 시절이었다.
주된 상영관이었던 복사골 문화센터는 1호선 송내역에서 내려 아파트 단지를 쭉 걸어가면 나오는데,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길이 눈에 선하다. 조용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불쑥 나타난 복사골 문화센터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 같아서 괜스레 심장이 콩닥거렸고, 흥분과 스릴은 영화에도 쭉 이어졌다.
미이케 다카시라는 일본 감독도 부천영화제에서 알게 되었다. ‘이치 더 킬러’, ‘극도공포대극장 우두’ 같은 영화를 부천영화제에서 봤는데, 미이케 다카시 감독님은 뭐랄까,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누구에게 말할 수는 없는 영화를 만들어서, 극장에서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부천영화제는 그런 영화를 보며 함께 소리 지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같이 환호하며 봤다. ‘이치 더 킬러’의 이치는 화가 나면 신발에 달린 칼날로 사람을 반으로 갈라 버리는데, 발차기 하듯 발을 쳐들어 머리부터 세로로 갈라버리면 조악하기 짝이 없는 CG로 만든 빨간색 2D들이 몸 안에서 쏟아져 내렸다. 빨간색 2D는 피와 기타 등등을 CG로 만든 것인데 어딜 봐도 가짜라, 징그럽기보다는 웃겼다. 물론 부천영화제에 저런 죽이고 가르는 영화만 있었던 것은 아닌데 내가 본 영화는 다 저랬다.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해진 ‘피터잭슨’ 감독의 초기작들도 부천에서 다 봤다. 다양하게 갈아버리는 일명 스플래터 무비(Splatter film,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로 피와 살점들로 가득 찬 영화, 피와 살점 묘사를 열심히 함)로, ‘고무인간의 최후(외계인을 웃기게 죽여 버린다.)’, ‘피블스를 만나요(인형극의 인형들이 웃기면서 죽여 버린다.)’, ‘데드 얼라이브(모두 좀비가 되어가는 와중에 신박하고 다양하게 죽여 버린다.)’같은 초기 걸작들 모두 거기에서 봤다.
부천영화제 하면 심야상영도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는데, 외박의 짜릿함과 밤새 모여서 공포영화를 함께 보는 낭만에 인기가 많아서 예매전쟁도 치열했다. 보통 3~4편 가량 상영하는데 두 눈 부릅뜨고 다 본다면 너무 좋겠지만, 하루 종일 영화 보고 저녁에는 치맥 하고 심야상영까지 보는 것은 불가능한 여정인지라 한두 편은 깊이 잤다. 집에서 자면 편하기라도 하지, 그 좁은 의자는 정말 힘들었다. 두 번째 영화까지 보고 나면 택시타고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드는데 다행히 택시비는 불가능한 금액이라 꾹 참고 끝까지 봤다. 집에 가는 길은 온 몸이 몽둥이로 맞은 것처럼 아프고 피곤했지만 이상한 성취감도 느껴졌다. 심야상영도 복사골 문화센터에서 했는데, 영화보기 전 세수, 양치하고 바닥에 앉아서 12시를 기다릴 때는 피곤하면서도 많이 설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심야상영은 악마의 등뼈 등 3편을 본 날이었다. 제일 처음 상영한 ‘악마의 등뼈’는 스페인 내전 배경의 공포영화였는데 많이 인상 깊어서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의 이름을 머리에 강하게 새기게 되었다. 그때 감자탕이 엄청난 인기여서 제목이 더 기억에 잘 남은 것도 같다. 어쨌든 심야상영 중 한편이라도 건지면 성공이었기 때문에, ‘악마의 등뼈’가 아주 성공이라며 그 다음 영화는 시작부터 아주 푹 잤다. 잘 자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서 깨어나 보니 그건 비명이 아니라, 아직도 생생한 영화 ‘헤드윅’이 끝난 뒤의 환호성이었다. 일어서서 박수치고 울고 웃고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닌 모습을 보며 멍해진 나에게 맹이 너무나 안타까운 얼굴로, 잤냐고 영화 못 봤냐고 물어봤었다. 공기 중에서도 흥분과 감동이 느껴질 정도인, 그해 부천영화제의 하이라이트를 그렇게 놓쳐버렸다.(지금까지도 뮤지컬로 수차례 공연되고 있는 헤드윅은 이때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화가 나서 다음 영화는 두 눈 부릅뜨고 봤다. 영화 중간에 주인공 눈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내 눈에서도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너무 재미가 없어서 피눈물이 나올 지경으로 화가 났다. 그 뒤 헤드윅은 극장개봉을 했고 정식으로 다시 봤다. 좋은 영화여서 입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