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거북 Aug 23. 2023

대전에 갔다왔슈(2)

일상

다시 차에 올라타곤, 성심당으로 갔다. 가는 길은 역시 새 차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 차에는 엉덩이와 등에 통풍 시트가 있고,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안마 기능도 있다고 한다. 안마라니. 안마의자를 몹시 사랑하는, 찜질방이든 명동 CGV든 안마의자를 발견하면 꼭 체험해보는 사람에게 안마 기능은 의무 아닌가. 해서 다음번에는 내가 조수석에 앉겠다며, 요즘 차는 별 기능이 다 있다며, 그러다가 테슬라가 얼마나 이상한지, 얼마나 갖고 싶은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성심당에 도착했다.


대전에 몇 개의 성심당 중 롯데백화점에 있는 성심당에 갔는데, 웬걸, 사람이 너무 많다. 빵도 너무 많다. 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편인데, 특히 이렇게 빵 종류가 많으면 더 어렵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쟁반에 산더미처럼 빵을 골라 담고 있어, 나도 미니 튀김소보루를 황급히 담았다. 부추빵 한 박스를 사는 아저씨 뒤를 기웃거리다, 부추빵은 입에 안 맞았던 기억을 어렵게 떠올리며 다음 빵으로 넘어갔다. 나는 빵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마구 땡기는 빵은 없는데, 남들이 고르는 걸 보면 고르고 싶어지니, 빵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유명세에 약한 것 같다. 그래서 고른 것은 미니 튀소 2개에 버터빵, 교황님의 스콘, 산딸기 스콘. 길게 늘어선 계산줄에서 남들은 뭘 샀나 열심히 염탐했는데, 보통 튀김소보루, 부추빵, 명란마케트, 각종 샌드위치(특히 브리치즈와 햄이 들어간 것) 등이다. 친구도 쟁반을 꽉 채워 왔는데 공주밤 맘모스, 보문산 메아리 등 한가득이다. 계산하고 빵 봉지를 들고 대전 사람이 맡아둔 카페 자리로 가니, 성심당에 온 본 목적인 전설의 팥빙수가 벌써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구성은 단순하다. 물 얼음(연유 얼음 아님), 딸기가 아주 생생하고 크게 들어간 잼, 팥, 떡, 생크림. 한입씩 떠먹어보니, 이 빙수는 더러운 모습이 되더라도 섞어 먹어야 할 것 같아, 자비 없이 섞어 먹었다. 맛있다. 옛날 빙수 스타일. 빙수를 먹으며 부산에서 먹었던 2천원짜리 옛날 빙수(젤 리가 들어가있다.) 묘사, 내 스타일은 밀탑 빙수 등 시시껄렁한 빙수 얘기를 했다.


다시 빠르게 주차장으로 이동, 신세계백화점으로 갔다. 지하 주차장은 모두 만차, 땡볕 주차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전 사람은 모두 신세계백화점에 온 것 같다는 대전 사람의 말을 들으며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흡사 강남 신세계 또는 센텀시티 같은 모습에 놀랍도록 기시감이 들었다. 뭐, 어색하지 않아서 좋은건가. 빠르게 6층으로 이동, 오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돌비시네마로 향했다. 영화는 인디애나 존스. 한 명이 인디애나 존스 팬이었고, 시간상 다른 영화는 불가능했다. 다 보고 난 지금 드는 생각은 스파이더맨을 봤으면 더 좋았겠다. 그렇지만, 의리상 인디애나 존스를 본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해리슨 포드는 정말 많이 늙었지만, 인디애나 존스는 역시 해리슨 포드였고, 적당히 옛날 팬들을 위한 장면, 추억을 소환하는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돌비 시네마가 정말 좋았다. 압도적인 박진감, 사운드, 색감, 솔직히 영화의 재미를 1.3배 정도는 올려준 것 같다. 아이맥스보다 돌비가 위라는 결론, 돌비시네마를 방문하기 위해서 대전에 한 번 더 와도 되겠다며 즐겁게 극장을 나와 오노마 호텔 39층 폴 바셋으로 향했다.


오노마 호텔 38층은 스타벅스, 39층은 폴바셋이 있는데, 대전의 전망을 감상하도록 유일한(확실하진 않다) 고층 빌딩인 것 같았다. 38층에서 사람들이 대부분 내리고 39층에 도착하니, 자리가 없어서 못 앉는다는 인터넷 평과는 달리 자리가 꽤 남아있다. 앉으려고 보니 아. 땡볕석이었다. 그래서 그냥 전망만 구경하다가, 갑자기 대전 사람이 저기가 수목원이라며, 수목원도 좋은데 가겠냐고 제안한다. 그래. 대전에 와서 점심 먹고, 빵 먹고, 영화 보고, 저녁 먹고 가는 건 좀 그러니까 수목원에 가는 게 좋겠다고 정하고 화장실로 가 선크림을 저승사자처럼 허옇게 바르고 나왔다. 그런데 대전 사람이 갑자기 이런 날씨에 수목원은 좀 그런가 하는 의문을 던졌다. 그래. 가지 말자. 가지 않기로 하고 다시 땡볕 주차장으로 갔다.


차 안이 생각보다 시원했다. 새 차는 더위도 안 타냐며 낄낄거리는데 돌아온 답변은 미리 시동을 걸어놔서 시원하다는 것이었다. 아. 요즘 차는 별 기능이 다 있구나. 나 없이도 돌아다니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또 한 번 새 차를 사고 싶은 충동을 1초 정도 느꼈다. 결국은 저녁을 먹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유성온천호텔로 향하는 내내 새 차를 사는 전략을 짜봤다. 캐스퍼를 사고 싶었던 나였지만 모두가 내려준 결론은 아우디였고, 오늘도 좋은 의견에 감사를 표하며, 차에서 내려 호텔 2층에 있는 중국집 구룡으로 올라갔다.

100년 된 호텔답게 연식이 느껴지는 바닥 카펫을 밟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3명이 타니 꽉 찬다. 오래되긴 오래됐다며 2층에 내렸는데, 금잔디룸이니 하는 룸들이 모조리 닫혀있고, 구룡도 입구에 크게 정기휴일이라고 적혀있다. 악! 우리가 하는 일은 다 왜 이러냐며 가까이 갔더니 일요일이 정기휴일이라고 큼지막하게 써놓은 것이었다. 당황하며 문 앞을 두리번거리니 시커먼 문이 갑자기 열리며 환한 중국집 내부가 보였다. 3명이라고 자리를 안내받고 앉아서 엽차를 벌컥벌컥 마시며 메뉴판 공부를 시작했다. 과연, 코스를 먹는 것이 이득인가, 단품 요리를 먹는 것이 이득인가. 물론 자장면 하나씩 먹고 나오는 것이 가장 이득이긴 한데, 탕수육과 일품 냉채 등 요리 두어개 시키고 식사 두어개 시키면 코스가 더 이득이라는 수학적으로 완벽한 논리 앞에서 코스를 시켰다.


맛있었다. 결국, 구룡이 맛있었던 탓에, 11월쯤 다시 대전에 와서 그때는 온천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2024년 3월 폐업 예정이라니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 다시 차를 타고, 이번에는 목적지도 모르는 채 실려서 갔다. 어딘가 골목을 돌고 돌아 한옥 앞에 도착했는데 대전 사람의 낮은 탄식. 마지막 코스인 한옥 카페가 오늘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서울행 버스는 8시 30분 차, 지금은 7시 47분. 무언가 애매한 시간, 친구가 과감히 그냥 서울에 일찍 가겠다고 정했고, 3분 뒤 유성터미널에 도착했다. 멋졌던 하얀 SUV에서 내려서 대전 사람에게 안녕을 말하고, 터미널에서 8시 버스표를 끊었다. 프리미엄 버스였다. 친구는 처음 타봐서 한껏 신나 보였고, 아침에 못 봤던 악귀를 함께 보며 서울로 왔다. 무서웠지만, 재밌었다. 악귀를 다 보고 인터넷 아주 조금 하니 벌써 센트럴시티. 내려서 자판기에서 생수를 한 통 뽑아 마시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가니 10시 20분이다. 큰 목적 없이 간 대전 여행이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피와 살점으로 가득찬 영화의 도시(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