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위기의 중년 남성들

by 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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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장은 주로 40~50대 이상의 남성들이 공통의 취미를 즐기기 위해 모이는 공간이다. 가끔 10대나 20대의 젊은 남성들도 찾아오긴 하지만, 꾸준히 자주 오는 경우는 드물다.


처음 이곳을 열었을 때는 동네 토박이 어르신들이 주로 방문하셨다. 대부분 은퇴하신 60대 후반에서 70대 중반의 어르신들이다. 신기하게도, 70대가 넘은 분들도 당구 큐를 잡고 서 계시면 어느새 소년처럼 눈빛이 반짝인다. 어울리며 웃고, 더 잘 치고 싶어 애쓰고, 한 게임에 이기고 지는 데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다.


어떤 분은 주말에 친구들과 당구를 칠 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평일에 혼자 찾아와 진지하게 연습을 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문득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삶과 놀이의 본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명확한 답은 내릴 수 없었지만, 그들이 열심히 연습하고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괜히 뿌듯해진다.


그렇게 1년이 흘렀고, 이제는 나와 비슷한 또래인 50대 손님들이 주된 이용층이 되었다.

처음에는 블로그와 동호회 앱을 활용해 당구 동호회 회원들을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사람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홍보하지 않아도 기존 회원들이 스스로 친구들을 데려오고, 함께 어울릴 사람들을 찾아 당구장으로 자꾸 부른다. 그렇게 당구장이 점점 50대 나의 또래들로 채워지고 있다.


50대는 마음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커지는 시기다.

가족을 위해서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룬 게 없는 것 같고 허무함과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하는 나이다. 건강과 체력은 하루가 다르게 안 좋아지며 앞으로 무언가를 해야 할지도 막막하고 젊은 시절의 호기는 아직 남아 있어 무언가를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은 여전하지만, 막상 몸은 예전 같지 않고 마음도 자주 흔들린다.


무언가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하루를 또 흘려보낸다. 예전 같으면 덥석 달려들었을 일도 이제는 여러 번 재고, 스스로를 설득하다 포기해 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집에서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잘난 맛에 살아가던 당당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늙은 자신감 없는 모습의 본인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하는 때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친구들도 비슷하다. 예전엔 다들 잘 나가던 사람들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나나 너나 딱히 잘난 구석이 없어 보인다. 한때는 세상 중심에 있었던 것 같던 우리가 이제는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모르겠는 그런 나이.

그런 사람들이 마음속 공허함을 어떻게든 채워보고 싶어 이곳, 당구장으로 모여든다. 내가 좋아하는 당구 파트너가 출동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괜히 엉덩이가 들썩이고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생각해 보면, 50대는 마치 또 한 번의 사춘기를 겪는 시기 같다. 아직은 젊고 건강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무기력함과 어정쩡한 자존감 사이를 오가며 풀이 죽어 있다. 하지만 당구장에만 오면 그런 얼굴들도 금세 10대 소년처럼 해맑아지고, 게임 하나에도 웃고 진지해진다.


오히려 가만히 보면 70대 어르신들이 더 단단하고 안정되어 보일 때가 있다. 인생의 굴곡을 지나 어느 정도 삶을 내려놓을 줄 아는 여유와 노련함이 느껴진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들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하루하루를 있는 그대로 즐기려 한다. 그 모습을 보면, 세월을 견디고 얻을 수 있는 지혜인가 하고 나도 모르게 수많은 시간을 지내온 그들에게 존경심이 생긴다.


가끔은 당구장을 병원에 비유해 본다. 병원엔 아파서 찡그린 얼굴들이 모여들지만, 당구장엔 웃고 들뜬 얼굴들이 찾아온다. 기분은 전염된다고 하지 않던가. 밝은 얼굴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함께 기분이 좋아진다. 생각해 보면, 의사들은 하루 종일 고통스러운 환자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나는 하루 종일 신나고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어쩌면 내가 의사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가진 건 아닐까?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수입은 의사에 비할 바가 안 되니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적은 돈을 벌면서도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웃으며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건 분명 나만의 특권이다. 아내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말이다. 결국 사람은 모든 걸 가질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중년의 남편을 둔 아내들이여, 남편의 취미생활을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시라.

특히 당신의 남편이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당구장’을 찾는다면, 그건 단순한 오락이나 도피가 아니다. 마음속 허전함을 채워보려는, 어떻게든 다시 살아보려는 애틋한 몸부림일 수 있다. 가끔은 그런 남편에 대해 안쓰럽고도 짠하게 느끼면 더욱 좋겠다.


물론 당구장에 대한 인식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떤 당구장은 사장이 술을 좋아해 종종 술판이 벌어지고, 그런 모습이 전체 이미지를 흐리는 경우도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당구장만큼은, 그런 곳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건전하게 당구를 즐기며, 삶의 활력을 되찾는 공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당구든 인생이든 마음이든 함께 채워지고 성장하는 공간. 때로는 중년의 일상이 삐걱거릴 때,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고, 다시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되찾는 그런 따뜻한 쉼터가 되길 바란다.


나는 오늘도 그 모습을 조용히 응원하며 이 자리를 지키며 나의 마음도 같이 채워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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