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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민 Oct 05. 2022

그래도, 그래서 '책방'

-코로나 시기에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얼마나 걸었을까? 발길 내키는 대로 큰 도로와 골목길을 하며 오가며 걸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 오늘은 지난 며칠 동안 걷던 곳이 아니었다. 적막감이 세상을 뒤덮고 있었지만, 낯선 길이 주는 긴장감이 ‘두려움’을 누그러뜨렸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낯선 건물이 빼곡하게 둘러서 있다. 그제야 멈추고 숨을 내쉬었다. 수증기 가득한 목욕탕처럼 마스크 안은 답답했다. 오가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마스크를 벗었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른 봄 차갑지만 따스한 공기가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두 눈을 감았다. 봄은 오고 있었다.    



  

 코로나로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강사였던 나도 직격탄을 맞았다. 사람들이 모일 수 없으니 지난 2월부터 두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사람이 몇 달 일을 못 한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을 겪으며 체득한 본능이라고 할까?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스멀스멀 불안한 기운이 삶을 덮었다. 불길한 예상은 언제나 적중되는 법. 코로나는 끝을 알 수 없는 공포로 데려가고 있었다.      

 내가 쓴 책을 펼쳤다. 작년 몇 달 동안 희망을 안고 새벽을 깨우며 일어나 쓴 글을 읽어보았다. 아직도 잉크 냄새가 가득했다. 출간으로 바빠질 일상을 기대하며 힘들어도 힘들지 않게 글을 썼다. 그러나 출간한 지 두어 달 만에 코로나를 맞았다. 온몸에 맥이 풀린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지지리도 되는 일이 없었다. 일부러 어려운 길만 찾아가는 것 같은 내 꼴이 지긋지긋했다. 사람이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낀다는 것! 나는 그렇게 나를 철저하게 미워했다. 그러면서도 책장을 넘기며 살아내려고 몸부림치는 누군가를 보았다.      


 “너, 힘들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너무 힘들어하는 나를 더 몰아세우고 싶지 않았다. 책을 덮고 주저앉아서 힘들다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소리쳤다. 악에 받쳐서일까? 이번에는 차 안이 마스크 안처럼 축축했다. 가만히 앉아있는데 왠지 홀가분했다. 물먹은 커다란 솜뭉치 한 덩어리가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더 어려운 때도 있었다. 잘 해내었건 어쨌든 지나왔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싶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코로나에서 살아남기’를 생각했다. 그저 살아내고 싶었다. 가르치는 일 외에는 해본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는데, 지금 어떻게 하지? 막상 마음을 다잡기는 했지만, ‘불안, 초조, 두려움’이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다. 먼지처럼 가벼운 통장을 몇 번이나 뒤적였다. 그런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그 순간 마지막 힘을 냈다. 꿈을 현실로 데려왔다. 오랜 벗들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만날 때면 얘기했기 때문이다. 대형 커피점과 문구사에 가면 고객을 부르는 닉네임과 등록명은 ‘리본 책방’ 고객님이었다. 언젠가 시작할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 때로는 각오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하던 일도 멈추는 상황에 새 일을 한다는 것은, 그것도 책방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모했다. 지금 그 일을 나는 덥석 하겠다고 덤빈 것이다.


 심장은 더욱 쿵쾅거리고 머릿속은 하얗게 되었다. 더는 숨쉬기 어려웠던 그때 말도 되지 않은 ‘꿈’이 생각났다. 솔직히 말하면 리본 책방은 힘든 내 삶에 막연히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위안’이었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다른 길이 없었다. 기다릴 수만 있다면, 그럴 여건만 되었다면 나도 몇 달이든 기다리고 싶었다. 힘든 상황에 내가 기댈 수 있었던 꿈을 근사하게 시작하고 싶은 허영이 내게 있었다. 

  

"꼭 그 일을 해야겠니?"

"왜 하필이면 돈도 안 되는 책방이야?"

"지금은 아무 일도 안 하는 게 최선이야. 꼭 하고 싶으면 경기가 좋아지면 해!"     


 주변에 얘기하니 열 명 중 아홉은 관두라며 말했다. 찬성해 준 한 명도 좋아서 표를 던져준 건 아니었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인지 알기에 마지못해 끄덕이는 분위기였다. 어느 쪽이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삶은 가끔은 아닌 것을 알면서도 나아가야 할 때가 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순간도 있는 법이다. 내가 가진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나는 살기 위해서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중간에서 무언가 시작해야 한다는 것! 지금 되돌아보아도 ‘절박함’으로 밖에 설명할 말이 없다.  

   


 

주변에 헌책방을 할 것이라고 소문을 냈다. 아끼던 책을 한 아름 가져다준 사람들, 이른 아침 책방 문 앞에 몇 묶음이나 놓고 가신 분들, 아는 분 소개로 갖고 왔다며 응원하며 기부해주신 분들. 지금 생각하니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지금 책방은 없었다. 지금도 이어지는 헌책 기부. 그분들이 있기에 책방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제 2년 차, 아직도 책방 하루를 여닫기가 어렵지만, 가끔, 자주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꿈은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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