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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연 Aug 05. 2024

ep3. 착한 "미친놈"

김군아, 김군아!

아빠가 일하는 이발소는 산동네 정상에 위치해 있다. 

산을 깎아 낮은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곳이다.

언덕을 올라가기 전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너무 높다.'


이발소 사장님은 앞머리가 없어 옆머리를 있는 대로 끌어올려 가르마가 왼쪽 귀옆에 있다.

지영이는 볼 때마다 그 머리 모양새가 신기하다.

아빠의  숯 많고, 심한 곱슬머리가 눈에 익은 지영이는 사장님의 머리카락을 보며

'사장님은 많이 아픈가 봐'

생각한다.


이발소에는 아빠 말고 직원이 한 명 더 있었는데

아빠는 '김군'이라 부른다.

김군은 손님 머리를 직접 이발하지는 않고,

머리를 감겨 주거나 면도를 해 주거나

잔 심부름을 도 맡아한다,

조금 통통한 체격에 걸을 때 약간 뒤뚱거리고

말도 어눌해서 동네 못된 오빠들이 함부로 할 때가 있다.

지영이는 그를 '김군 오빠'라고 부른다.

이름이  '김군'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아빠는 알았을까. 그의 이름을.


김군은 동네 가장 어두운, 지하 같은 1층 구석방에 산다.


김군은 쉬는 날이면 꽈배기 또는 핫도그를 사서 3층 지영이네 집으로 온다.

김군이 오면 엄마는 상을 차리며 지영이를 부른다.

"지영아, 김군 오빠가 꽈배기 사 왔다"

오빠가 사 오는 꽈배기는 좋은데 오빠가 오는 건 싫다.

네 식구가 둘러앉아 밥 먹기도 좁은 방 한 칸짜리 집에 오빠가 오면 지영이는 으레

상에서 물러난다.

"오빠. 또 왔어?"

퉁명스럽게 뱉어내는 말과는 반대로 손과 눈은 들고 있는 까만 봉지로 향한다.

봉지를 받아 들고 꽈배기를 하나 꺼내 오빠에게 건넨다.

"오빠도 하나 먹어"

"나.. 난, 지.. 질렸어. 꽈배기"

더듬거리며 대답하는 오빠를 아빠가 부른다.

"김군아, 들어와 밥 먹어."

김군의 목적은 지영이네 밥이다.

출근하는 날은 이발소에서 점심 저녁을 같이 먹지만,

쉬는 날이면 혼자 사는 김군을 아빠가 집으로 불러 점심을 같이 먹는 것이다.

그냥 오기 멋쩍어 사 오는 것이 꽈배기 또는 핫도그다. 아빠는 그런 김군을 나무란다.

"야, 그런 거 자꾸 사 오지 마.  언제 돈 모을 거야?"

"이.. 이. 건. 아. 아. 안 비싸요."

더듬거리며 말하고, 손바닥을 쫙 펴 목 뒷덜미를 훑어댄다.


콩나물, 김치, 김칫국 늘 같은 반찬이지만 김 군은 맛있게 잘도 먹는다.

그런 김군이 지영이는 얄밉다.

'돼지'

눈은 흘기면서 사 온 꽈배기는 여전히 맛있게 먹는다.




일주일에 한 번은 오던 김군 오빠가

더 이상 꽈배기를 사들고 지영이네 집에 오지 않는다.

이발소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렇게 잊혀가던 어느 날.

착하던 김군이 '미친놈'되어 돌아왔다.

어른들 사이에서 김군이 간질 환자라는 말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지영이는 간질이 뭔지 모른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알았다.

'저런 게 간질이라고? 무서운 거잖아.'


그날,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일하러 나갔고. 학교에서 돌아온 지영이는 집에 혼자 있었다,


1층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김군아, 김군아, 야!  이 식아."

하는 상가 아저씨들의 고함 소리도 들린다.

'우당탕. 꽝꽝. 아악!'

궁금해서 문을 열고 3층 난간에서 내려다보니  

어떤 남자가 2층에서 마구 소리를 지르며 제 눈에 보이는 집에 들어가 난장판을 만들고 나와

다른 집 문을 열려고 애쓰고 있다.

문이 열리지 않으면 문을 뜯을 듯이 흔들어 대고, 소리 지르고, 발로 차기를 반복한다


쌀쌀한 날씨인데도 윗도리는 벗고 팬티만 입은 채 미친 사람처럼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건

'김군' 오빠다

2층 선미 이모가 지영이를 보더니 말한다.

"지영아. 들어가서 문 잠그고 있어"

이모가 시키는 대로 집에 들어가 문을 잠갔지만,

훔쳐갈 물건 없는 가난한 집이 문단속에 무슨 신경을 썼겠는가

길고 좁은 나무판으로 엉성하게 엮어 놓은 문에 열쇠라고는

문과 문틀에 있는 고리를 서로 연결하는 게 끝이었다.

김군 오빠가 와서 있는 힘껏 흔들어대면 충분히 빠질 것 같은

약해 보이는 것이 지영이는 미덥지 않아 불안했다.


'제발, 우리 집엔 오지 마  김군 오빠야.'

신은 지영이가 바라는 것은 하나도 들어줄 생각이 없나 보다.


김군이 왔다.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는 소리를 계속하며 문을 흔들어대고 소리치고 발로 차고 있다.

지영이는 창고로 쓰라고 만들어진 허리도 펼 수 없는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그곳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을 찾아 잔뜩 웅크리고  있다.

거미와 벌레 많은 다락방도 무섭지만, 지금은 밖의 상황이 더 무섭다.

겁에 질려 울면서 제발 빨리 멈춰 주기를 바란다.


얼마동안이나 그랬을까.

전화가 없으니 누구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다.

소란이 끝난 한참 뒤에도 지영이는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엄마가 동생과 돌아왔을 때 비로소 잠금고리를 풀어 문을 열었다.

지영이는 두근거리는 100미터 달리기를 방금 끝낸 것처럼 기운이 쫙 빠진다.

흥분하며 낮에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얘기한다

"엄마, 있잖아. 김군 오빠가 문을 막 흔들고, 소리 지르고 그랬어."

"또 그랬네 이그! 그 미친놈"

'또?"

지영이는 오늘 처음 본 일인데 엄마는 알고 있었나 보다.


며칠뒤 김군은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찾아와 허리 숙여 죄송하다며 집집마다 사과를 하고 다녔다.

그 뒤로는 오빠를 다시 볼 수 없었다.


아빠, 엄마는 김군이 불쌍하다고 말한다.

너무 착하기만 한 사람한테 나쁜 병이 생겼다고.

그럼, 김군 오빠는 '착한 미친놈' 인가?


 오빠는 어떤 병에 병에 걸렸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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