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음악 하고 싶어" K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넌 음악에 재능 없어 넌 공부해 네가 잘하는 건 공부야"
마치 신이라도 된 듯. K의 인생을 내가 정해 버렸다.
6년 뒤 자기와 맞지 않는 학업을 마치느라
힘들어하는 K를 마주했다.
그리고 지난날의 내 행동을 후회했다.
"엄마, 나 학교 공부하기 싫어" Y가 말했다.
"그럼 무슨 공부하고 싶은데? 하고 싶은 거 네가 정해서 학교 선생님들께 말씀드려"
이번엔 방관자가 되었다.
20살 빛나는 나이에 고시원에 틀어박혀 공부하는 Y가 안쓰러웠다.
그리고, 믿음이라는 탈을 쓴 무관심이었을지도 모를 내 행동을 또 후회했다.
난 'oo'총량의 법칙을 믿는다.
oo 안에는 어떤 낱말이 들어가도 어울린다.
예를 들어 공부, 인생, 행복, 심지어 지랄까지도.
또한,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들이
자라주지 않는다는 것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간혹, 부모의 희망대로 아이가 자라주었다면 그건
아이의 선택또한 부모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게 아니라면 언젠가 그 결정을
후회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지도 모른다.
성인이 된 K와 Y를 보고 있자면
난, 그들을 키우며 했던 나의 행동들을
돌아보게 된다.
혹자는 '당신도 엄마가 처음이었잖아요' 하며
'미안해하지 마세요'라고 말 하지만,
잘못된 나의 등대 역할이 아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K는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본인의 의견보다 내 의견을 좀 더 많이 수용했다.
나는 말로는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라고 말하면서도 K가 마음을 바꿀 때까지
조언을 빙자한 강요를 멈추지 않았다.
음악을 하고 싶다는 K를 설득해 특목고에
보내놓고선 그것이 K를 위한 길이라 확신했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지난날 내 도움(?)이 K가 원하는 길을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써 버리게 했을지도 모른다.
반면. 내 틀 안으로 절대 들어오지 않는 Y는
자유 그 자체였다.
K를 키울 때보다 내 양육방식이
좀 느슨해진 탓도 있을 테지만
Y는 고장 난 핸들을 돌리는 것과 같았다.
내 맘대로 조정할 수 없었다.
언제나 자신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밀어붙이던 Y.
운동을 시작할 때도, 그 운동을 그만둘 때도,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그것을 그만둘 때도
부모와의 대화와 타협은 없었다.
그저 통보만 있었을 뿐이다.
고3이 막 시작 되었을 때.
학교에서 학교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Y.
목표를 이루기 위한 Y의 결단력엔 거침이 없었다.
'시도'와 '포기' 사이에 Y가 서 있었을 때
K를 대할 때와는 다르게
너무나 방관자 역할이었던 나.
이 또한 아쉬움이 남는다.
난, 쿨한 요즘 엄마인 척
"네 인생은 너의 것이야"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 말이 좀 더 어린 두 아이에게
각자의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닿았더라면
아이들의 현재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