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허락해 주세요

by 류연

'드르륵, 드르륵'


책상을 단타로 두드리며 공기 중에 퍼지는 진동소리.

조용한 분위기를 깨는 그 소리에

주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동시에 휴대전화로 쏠렸다.


상대방은 집에 Y와 함께 있을 K였다.

늦은 시간. 아이들만 집에 있으니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말이 끝나기도 전에 K가 끼어들었다.

"엄마, 나 Y 한 대만 때리게 허락해 줘"

K의 목소리는 흥분해 있었다. 아니 억울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목소리라고 해야 더 맞았다.

전화기 속에선 멀리서 제 오빠에게 무어라 계속 쏘아대고 있는 Y의 목소리도 들렸다.


K와 Y의 지금 상황은 안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전쟁 중이구나! 오늘 Y는 어떤 무기를 가지고 덩치가 훨씬 큰 K에게 대항하고 있을까?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은 '퇴근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이고 싶다'이다.

오늘도 K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을 게 뻔했다.

일 하는 중이라 전후 사정을 모두 들어줄 시간이 없었다.

"안 돼. Y 때리지 마! 엄마가 가서 이야기 들어보고 혼낼게"

"한 대만, 한 대만 때릴게"

이런 질문을 받아 본 부모가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뭐라 대답해 주어야 하냐고?


세 살 터울 K와 Y는 한 번 싸움이 붙으면 쉽게 끝나지 않았다.

지지 않고 달려드는 Y의 용맹함에 비해 K는 싸움뒤에 몰려올 후폭풍을 더 싫어했다.

엄마, 아빠에게 혼나는 것을 말이다.


참다 참다 오늘처럼 한 번씩 참을 수 없는 상황이 오면

허락받을 수 없을 걸 알면서도 전화를 걸어 물어본다.


가끔 나는 생각했다.

'그냥 한 대 쥐어박아 주면 될걸.'

어렸을 적 내가 어린 동생을 쥐어박아 준 것처럼 말이다


K와 Y를 키우면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다정하고 서로 위해주는 남매가 되길 원했다.

이해심 많고 여동생을 아끼며 보살피는 오빠.

오빠를 믿고 의지하며 잘 따르는 여동생.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너무나 크다는 걸 매일매일 몸으로 느끼면서 꿈은 와르르 부서지기 일쑤였다.


사정은 이랬다.

엄마, 아빠가 늦으니 저녁을 차려 먹어야 하는 일은 언제나 K의 몫이었다.

K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직접 조리를 하기도 했다.

이 날 저녁 상차림이 싸움의 시작이 되었다.


저녁시간이 되어 Y에게 밥 먹을 거냐 물었던 K

Y는 배가 고프지 않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한 시간쯤 뒤, 저녁을 달라는 Y.

입에서 나오는 무기(욕)로 Y를 때리며 저녁을 차려준 K.

다 먹은 후 제 몸만 빠져나온 Y. 식탁 위 먹은 흔적은 그대로 둔 채.

네가 먹은 건 네가 치우라며 다시 입에서 나오는 무기로 Y를 때리는 K

왜 욕하냐며 덤비는 Y

이때, Y의 손에는 지난 글에도 밝혔던 엉덩이 전용 매가 들려 있었다고 한다.


힘으로 하자면 Y가 K를 이길 수 없었을 테지만,

매를 들고 칼싸움하듯 덤비는 Y가 K는 버거웠을 테다.

둘은 한참을 넓지 않은 거실 양쪽에 서서 대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집에 왔을 때, 둘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나란히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아니 나란히는 아니었다.

둘은 소파 양쪽 끝에 바짝 붙어 있었다. 가운데 자리는 넓게 비워둔 채로.


보고자 했던 TV프로그램을 결정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나 보다.

그것마저 달랐다면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을 테니까.


나는 아이들의 싸움을 제대로 목격한 적이 별로 없다.

대부분은 나중에 들은 것이다.

K와 Y의 기분이 어느 정도 풀려 있을 때 듣는 싸움의 이야기는 웃음을 자아낸다.

그 당시 서로에겐 심각했을 싸움은 나중에 들으면 코미디 같기 때문이다.

말하는 당사자들도 어떤 때는 웃으며, 또 어떤 때는 어이없어하며 말한다.


Y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K는 내가 허락하지 않았어도 Y를 때린 적이 있다는 걸.

Y의 말에 의하면

"나 오빠한테 세 대 정도 맞아 본 것 같은데.. 기억도 잘 안 난다."


그랬다.

K가 참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Y가 항상 싸움에서 우위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릴 때, 그렇게나 싸우던 둘은

십 대가 되면서 서로를 남처럼 대했고.

이십 대가 되면서는 진로에 관해 의논하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은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아는 체 하지 않는 사이.

카톡에서 대화를 즐기는 사이.

서로에게 치킨 쿠폰을 날리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 집 남매의 현실은 이렇다.

다른 집은 어떤가?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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