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헐떡이며 Y가 뛰어 들어온다. 신발도 벗기 전에 가방은 문 옆에 던지듯 내려놓고 콧바람을 일으키며 말했다. Y는 흥분해 있었다.
"엄마, 00 언니가 오빠옷 막 잡아당기고 밀고 그랬어. 그래서 내가 신발주머니 던져서 언니가 맞았어."
"응? 네가 언니를 때렸어?"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한 나는 "언니가 맞았어" 에만 집중되었다. Y에게 다시 물었다.
"아니, 오빠 괴롭히지 말라고 소리치면서 신발주머니를 던졌는데 그게 언니를 맞혔어."
"언니 안 다쳤어?"
"언니가 욕하면서 갔어."라고 말하며 머리부터 휙 돌려 내게서 돌아셨다. 그만 물어보라는 표현이었다. 계속 물어본들 대답은 들을 수 없을 게 뻔했다.
"아...." 할 말을 찾지 못해 나오는 소리는 그저 이게 전부였다.
신발주머니에 맞아 욕을 뱉어낸 그 아이는 세 살이나 위인 아이였다. 자초지종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혼을 낼 수도 없었다. 잘했다 칭찬을 할 수는 더욱 없는 일이었다. K가 집에 돌아와서야 내막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바로 앞에는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공원이 있다.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 학원 또는 집으로 가기 위해 나온 아이들은 바로 헤어지지 않는다. 공원에 잠시 머물러 그곳에서 서로 장난을 치며 놀이의 아쉬움을 풀어 내었다. Y가 학교에서 나오다 이런 모습을 본 것이다. 사정을 알지 못했던 Y는 00 언니가 제 오빠 후드티 모자를 잡고 흔드는 모습에 오빠가 괴롭힘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K는 당시만 해도 덩치가 크지 않았다. 키도 훨씬 크고 몸집도 큰 여자아이가 그러고 있었으니 멀리서 보았을 땐 놀이가 아닌 괴롭힘이라고 볼 수 있었을 터였다. 앞뒤 사정을 생각하고 행동할 만큼의 침착함은 Y에게 없었다. 반면, 정의감은 넘쳐흐르던 Y는 자기가 오빠를 구했다고 생각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Y는 말한다. 의기양양하게.
"오빠, 너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지켜준 거 알지?"
K는 대꾸하지 않는다. 그 속마음은 '네 맘대로 생각해라'이지 않을까 싶다.
K와 Y는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아이들의 성씨가 특이해서 학교엔 아이들과 같은 성씨가 없었다. 생김새 만으로도 두 아이가 남매인 것은 알 수 있었다. 성까지 같으니 둘의 관계는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건 사고 없이 조용히 다니며 제 할 일을 찾아서 하는 K를 잘 아는 선생님들은 Y의 행동에 짐짓 놀라셨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가끔 하시곤 했다.
"Y, 네가 K동생이야? 얼굴은 많이 닮았는데, 행동은 정말 다르네"
"전 오빠랑 다르니까요. 전 오빠보다 운동을 훨씬 잘하거든요." 하며 당돌함을 보였다. Y는 이러한 선생님들의 의아한 눈초리는 전혀 괘념치 않았다. 서운함을 느끼거나 비교당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K 또한 나름의 곤란은 있었다. 체육 시간에 K는 Y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K는 Y가 운동으로 받은 메달을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했다. 반대로 Y는 K가 받아온 여러 상장을 단지 종이 한 장이라 여겼다. 그렇게 둘의 성향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는 듯했다.
지난날을 반추해 보면 난 Y에게 분홍색, 노란색, 빨간색 옷을 입힌 적이 없다. 제 오빠가 입던 하늘색, 연두색, 흰색 또는 검은색의 옷만 입혔다. 치마는 지금껏 딱 두벌 사줬다. Y도 흔히 여자들이 입는 옷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난, 운동복이 제일 잘 어울려"
Y는 그랬다. 운동복을 입은 모습이 가장 자연스러웠다.
운동복이 제일 잘 어울리고 체육을 좋아하던 Y는 온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정의감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 든든한 무장이 이제 제 오빠나 가족에게뿐 아니라 좀 더 멀리 나갈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