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들을 키우던 때 한창 유행하던 말이 있었다. 딸을 둘 낳은 엄마는 금메달. 딸 아들 순서로 낳은 엄마는 은메달. 아들 딸 순서로 낳은 엄마는 동메달. 아들만 둘 낳은 엄마는 목 메달이라는 말이었다. 어머님은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나는 목 메달이래"
"저는 동메달은 되네요"
아들만 둘 낳은 시어머님께 이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 큰 소리로 웃어 버렸다. 웃고 난 뒤 민망함이 몰려왔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 웃으며 오고 가는 말이지만, 아들 둘은 키울 때도 힘이 들고, 키워 놓고도 서운함이 적지 않다는 뜻이 포함된 말일 터였다.
사람들은 쉽게 말하곤 한다. 아들이 더 키우기 힘들다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느꼈던 점은 아들이건 딸이건 아이들은 그냥 모조리 키우기 힘들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가족 안에서는 아들이 훨씬 키우기 쉬웠고, 딸은 아들 몫까지 힘들었다.
아들은 남자답게 또는 딸은 여자답게 키워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한 적은 없었지만, 남매를 낳았음에도 때로는 자매를 키우는 것 같았고, 때로는 형제를 키우는 것 같았다. 형제에 조금 더 가까웠다.
K의 어린 시절은 보통의 남자아이와는 사뭇 달랐다. 내가 아이의 눈길이 미치는 곳에만 있다면 울음도 없었다. K는 29개월이 되었을 때 한글을 모두 읽을 수 있었고 간단한 영어 단어도 읽었다. 무척이나 정적인 아이였다. 운동에 재능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몸으로 하는 활동을 즐기지 않았다. 반면, 한두 시간씩 앉아 그림책을 보고 질문을 하거나 작은 물건 하나에 집중하기도 했다. 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궁금해했다. 어려서부터 집중력이 좋은 K를 보며 자식 키우는 엄마들 누구나 한 번씩은 하는 우스운 생각을 매일 하곤 했다. '얘는 천재가 확실해' (현재 K는 어릴 때와 달리 운동을 좋아하고, 교사가 되길 바라는 건실한 젊은이로 자랐다)
K가 공룡에 관심을 가지면 눈에 보이는 공룡 책을 모두 사와 보여주었고, 아이의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있도록 나와 남편은 공룡 이름을 외우느라 시간을 들였다. K가 자동차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장난감 자동차를 다 살 수는 없던 터라 남편이 자동차 판매장을 돌아다니며 사지도 않을 차에 대해 상담을 받고, 그 팸플릿을 모으러 다니는 수고를 하기도 했다. 국산차 수입차 가리지 않고 잔뜩 모아놓은 팸플릿만 꺼내 놓으면 아이는 그 더미 안에서 몇 시간을 조용히 놀곤 했다. 내 신체의 피곤함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K는 잘 자랐다.
Y는 배 안에선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었다. 아주 조용히 있는 줄도 모르게 자랐고 태어났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건강하지 않았다. 삼칠일이 지나기 전에 청색증으로 입원해야 했다. 퇴원하고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아이는 다음날 다시 긴급으로 입원했다.
'호흡곤란'
폐렴으로 진단받았다. Y는 울음이 많았고, 깊게 잠들지 못했다. 겪어보지 않았던 일이라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날들이 많았다. 왜 우는지. 울음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날들이 대부분이었고 내 품도 좋아하지 않았다. Y를 두고 내가 했던 못된 생각들을 모두 아는 듯이 그렇게 울어댔다. K가 그랬듯이 Y의 어린 시절도 범상치는 않았다. 좋게 말한다면 Y는 불의를 참지 못했고, 나쁘게 말한다면 괴팍했다.
Y가 5살 때였다. 점심시간, 밥을 먹던 와중 한 남자아이가 Y의 친구 L을 못생겼다고 놀렸다. 그 바람에 L이 울어버리자 Y는 밥 먹던 숟가락으로 남자아이를 바로 응징해 버렸다. Y의 행동은 남자아이의 머리를 찢고 말았다. Y의 정의로운 행동에 나는 잠시 고개 숙인 엄마가 되었다. 그 뒤로도 종종.
Y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신체 활동으로 전부 쏟아내려는 듯했다. 활발을 넘어 부산스럽기까지 했다. ADHD가 의심된다는 학교 상담 선생님의 말씀. 놀라고 걱정되던 마음은 잠시였고, Y는 K와 다르게 대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길로 Y를 태권도 학원에 데리고 갔다. 넘치는 Y의 에너지를 발산시켜 줘야 할 것 같았다. 처음 Y는 강하게 거부했지만 한 달 만에 태권도는 Y의 진로가 되었고, 미래가 되어버렸다. Y는 지금 그녀의 정의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경찰 제복을 입고 있다.
아들은 파란색 옷을 입어야 남자답게 자라고, 딸은 분홍색 옷을 입혀야 여자답게 자라는 게 아니다. 아들이건 딸이건 그들이 가지고 태어난 각자의 것이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때론 아들을 딸처럼 대했고, 딸은 아들처럼 대했다.
"아들은 키우기 어렵고, 딸은 그래도 아들보다 쉽지?"
하고 물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누군 쉽고 누군 어렵나? 난 둘 다 어렵더라"
때론 형제가 되고 때론 자매가 되는 나의 두 아이는 각자의 길을 잘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