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회복제가 된 한컷

by 류연

숨을 참는다. 허리를 반쯤 숙여 문과 귀를 최대한 밀착시킨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남편의 말소리가 작게 들린다. 긴장 되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너희 둘 다 잘못한 거 맞지? 오늘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아이들의 대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자, 너희들 각자 말해봐. 엉덩이 몇 대?"

K가 우물쭈물 말한다. "두 대요."

뒤이어 Y가 대답한다. 큰소리로

"아프잖아. 난 싫어"

대답에서도 각자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남편이 말했다.

"너희 둘 잠시 반성하고 있어 봐."


문을 열고 나오는 남편의 표정은 묘하다. 화가 난 건지 즐거운 건지 웃음을 참으려 잔뜩 힘이 들어간 얼굴이 참으로 괴상스럽다. 방문에서 멀리 떨어진 주방으로 나를 끌고 간 후 남편이 말했다.

"나 제네 혼 낼 수가 없어 자꾸 웃음이 나와서"

우리는 소리 죽여 서로 얼굴을 보며 웃었다.


K와 Y가 싸워야 했던 이유는 사소했음이 분명하다. 지금은 전혀 생각나지 않으니 말이다.

단지, 서로 입에 담으면 안 되는 더욱이 가족이 함께 있을 때는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할 단어들이 두 아이 사이에 오고 갔다. 싸움은 말로는 말려지지 않았다. 급기야 남편이 험상궂은 얼굴로 매 (아이들이 싫어했을 엉덩이 전용 매가 냉장고 위에 있었다 )를 들고서야 싸움은 멈췄다. 그날의 훈육은 남편이 맡았으니 나는 참견할 수 없었다. 내 할 일은 나중에 아이들을 보듬어 주면 되었다. 웃음이 진정된 남편이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K 이리 와"

엉덩이 두 대를 맞은 K가 울면서 방을 나왔다. 나는 K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원망을 섞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K는 곧 울음을 멈추었다. 뒤이어 방에선 어마어마하게 큰 Y의 목소리가 들렸다.

"싫어 싫어 아프잖아. 한 대도 못 맞아"

좁은 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우당탕 소리와 함께 Y는 고함을 치고 있었다.

"아빠가 먼저 맞아 봐 얼마나 아픈지?"


남편이 다시 방을 나온다. K가 나와 함께 있으니 웃진 못하고 표정 관리를 하며 주섬주섬 휴대전화를 챙기고는 다시 Y에게 갔다. 좀 전과는 너무 다른 무거운 침묵이 집 안에 퍼졌다.

"뭐지? 왜 이렇게 조용한 거지?"

K는 저 혼자만 매를 맞을 것 같은 억울함이 몰려오는지

"엄마, Y는 왜 안 혼나?" 하며 다시 운다. 억울해서 운다. 서러워서 운다. K를 달래주는 것이 먼저임을 알지만 방 안의 상황 또한 무척 궁금했다. 남편이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나왔다.

"K. 엄마랑 할 말이 있는데. 네 방으로 잠시만 들어가 있어."

K가 들어가자마자 남편은 내 코앞에 휴대전화를 바짝 들이댔다. 참지 못한 웃음이 울음처럼 터져 나왔다. 소리 죽여 웃느라 얼굴의 근육도 배도 허리도 아팠다.


좁은 방 안에서 아빠의 손길을 피해 도망 다니느라 Y의 얼굴은 벌겋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다. 눈물과 콧물이 엉켜 범벅이 된 얼굴은 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백 대쯤은 맞은 것 같다. 침대 모서리에 앉아 제 아빠를 노려보는 눈에선 반성의 기미는 좀처럼 찾을 수 없다.


금방이라도 공격할 수 있도록 허리를 높이 쳐들고 힘을 주고 있는 고양이의 눈매가 꼭 이렇지 않을까 싶다.

사진 속 입 모양만으로도 Y의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남편은 이 순간 Y의 표정을 다시 Y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절대 맞지 않겠다는 Y의 결의기 이겼다.

이후로도 K는 종종 억울하고 서러웠을 테지만,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두 대요"


업무에 지치거나 사람에 치여 삶이 힘든 날.

남편은 10여 년 전 찍어놓은 이 사진을 다시 꺼내보곤 한다. 큰 소리로 하하하, 허허허, 깔깔깔 웃으며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기에 이 날 Y의 화난 얼굴만큼 제격인 건 남편에게 없다.


Y 또한 사진 속 자신의 얼굴을 보며 한 마디 한다.

"진짜 못 생겼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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