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와 바보의 차이를 아세요?

by 류연

텅 빈 복도를 걷는다. 탁. 탁 발을 내디딜 때마다 공기를 울리는 신발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긴장으로 얼굴은 달아오르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손에 들고 있는 음료 선물상자가 괜히 부끄럽다.

'그냥 아무것도 사 오지 말걸'




'내 아이 아니다. 옆집 아이다'

라고 생각해야 아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 나는 그것이 어렵다.

'어떻게 내 아이를 내 아이 아닌 것처럼 대할 수 있으랴'

아이의 눈빛, 작은 행동만으로도 그 작은 속에서 움트는 감정이 내게로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는데 말이다.



부모로 살다 보면 간혹 아이들 당사자가 느끼는 것보다 엄마인 내가 훨씬 속상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부모 다음으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 선생님에게 듣는 아이에 대한 평가와 비난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 집의 경우 선생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식에 대하여는 이성적이기 힘든 게 엄마이기 때문이다.

노력을 한다고 해도 완전히 독립되기 어렵다.


K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모든 선생님과 대체로 잘 지냈던 K지만 유독 그 학년은 힘들게 보냈다.

출석하는 5일 중 3일은 글루건 심으로 손바닥을 맞았고, 거의 대부분은 벌 청소를 해야 했다.

당시 나는 매일 혼이 나는 K를 나무랐다.

내가 K의 편을 들면 선생님과 더 부딪힐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였다.

어린 K는 의지 할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더 이상 본인의 억울함을 말하지 않았다.

어쩜. 혼이 났다는 K의 말이 나도 듣기 싫었는지 모른다. K가 아무 말이 없으면 학교에서 별 일 없었느냐고 굳이 묻지 않았다.

K의 마음을 알아주는 노력을 하는 대신 내 맘이 더 편하려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양육한다는 것은 언제나 후회의 연속이다. 모든 순간이.


어느 날, K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와 내게 한 말은

"엄마, 선생님이 나 00 아파트 사냐고 물었어.

너네 엄마는 왜 한 번도 학교 안 오냐고 그러던데"

나는 그냥 흘려 들었고, 1년 동안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학년이 끝나갈 무렵 학부모 상담요청을 선생님 쪽에서 먼저 원하셨다.

선생님을 만나고 온 날부터 나는 K를 나무라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 아이를 믿기로 했다.




'똑, 똑' 노크를 하고 선생님의 대답을 기다렸다.

"네"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미닫이 문을 천천히 열고 머리부터 들이밀었다.

왜 문도 활짝 열지 못 했을까?

좁게 열린 문 틈으로 몸이 다 빠져나오자 어색하게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여기로 앉으세요" 한다.

선생님은 다이어리를 들고, 나와 마주 앉았다.

"어머님. 제가 1년 동안 K가 잘못한 행동들 날짜별로 모두 적어 놨거든요"

선생님의 말에 그저 수첩을 뒤적이는 선생님의 손만 바라보았다.

수첩 안에는 몇몇 아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이들 이름 밑에 부디 잘못한 것만 적혀있지 않기를 바랐다. 칭찬도 적혀 있기를 바랐다.


"어머님은 K가 천재인 것 같아요? 아님 바보인 것 같아요?"

첫 질문이었다.

아이를 맡아 지도하는 선생님이 학부모인 내게 하는 첫 질문이 이랬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천재라고 하겠는가? 바보라고 하겠는가?

어색하게 웃고만 있는 내게 선생님은

"천재는 글씨를 못 쓴다는데, K는 글씨는 못 쓰지만 다른 행동을 보면 천재는 아닌 것 같죠?"

선생님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도 없었다.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1년 동안 K가 많이 힘들게 했나요? 말썽쟁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집에서와 학교에서가 많이 달랐나 봐요. 죄송해요"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지만, 억지로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후로 선생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잊어버리고 싶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말들 뿐이었다.


수첩 속에 적혀 있는 내용들은 이랬다.

0월 0일 급식으로 나온 토마토 남겨서 손바닥 맞음

0월 0일 책상밑으로 흘린 밥풀 줍지 않아서 나머지 청소 시킴

0월 0일 미술시간에 친구와 말다툼해서 손바닥 맞음

0월 0일 생선구이 안 먹으려고 휴지로 싸서 주머니에 넣어서 손바닥 맞음

0월 0일 알림장 글씨 엉망으로 써서 30번 다시 쓰게 함

0월 0일 수학 시간에 질문(어떤 질문인지는 말씀 안 해 주심) 많이 해서 뒤로 나가 벌섬

등등....

순간 헷갈렸다. 줄줄이 말씀하시는 이것들이 K를 말썽쟁이로 봐야 하는 일들인가?

더 나아가 바보로 볼 만한 잘못된 행동들인가?

편식을 한다는 것, 글씨를 못 쓴다는 것, 질문이 많다는 것. 이런 것들이 초2 아이가 매일 손바닥을 맞아야 할 일이던가?

내 기준에는 글루건심으로 손바닥 맞을 일은 아닌 것들이 선생님 기준에는 손바닥을 맞아야 하고, 나머지 청소를 해야 하고, 30번을 다시 써야 하는 잘못한 행동인 것이었다.


선생님은 그냥 K를 싫어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 마디 반박도 하지 않고, 묵묵히 듣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나오는 내 뒤로 들리는 선생님의 목소리

"어머니, 이 음료수 가져가세요. 저 이거 안 먹어요"

잠시 망설였다. 부끄러움에 목소리가 떨렸다. 아니 화가 나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럼 내일 아이들 주세요"


나는 아직도 당시 선생님의 의도를 알지 못한다.

나를 불러 K가 1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느끼게 해 주시려 한 것일까?

아님 K의 편식을 고쳐야 하고, 글씨 연습을 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싶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K가 바보임을 알려 주려던 것일까?


독자님들은 천재와 바보의 차이를 아시나요?

전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제겐 K도 Y도 각자의 자리에서 천재입니다.

아주 가끔은 진지하게 바보를 의심하기도 하지만요.



**얼마 전 읽은 브런치 작가 최다온 님의 글 '입맛도 자란다'를 읽고 떠오른 기억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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