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나보다 한 살 어리다. 하지만 입학 연도가 같아 우린 친구로 만났다. 친구로 만나 결혼까지 했으니 우리의 대화는 20살 그때와 다름없다.
어른들이 들으면 놀라 기절하실지도 모른다.
야! 너! 는 기본이고 가끔은 10대 청소년들이 하는 말도 서슴없다. 아이들을 키울 때는 서로 조심하는가 싶었는데 모두 독립시키고 우리끼리 살다 보니 언어의 순화과정이 많이 생략되었다.
난 학원강사로 고등학생들을 가르친다.
남편과 있는 시간보다 철딱서니 없는 고등학생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보니 나이를 먹어도 언어의 나이는 그들과 같다.
아이들을 대할 때 사용하는 말투와 남편에게 쓰는 말투에 차이를 두지 않았었다. 남편을 향한 내 말투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남편은 나의 말에서 '명령어'를 듣는다.
'~하자'가 아닌 '~해'를 쓰는 나의 말투를 남편은 나이 들어 갈수록 거북해한다. 물론 난 내가 이런 어투로 남편에게 말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종종 남편이 불편함을 표현할 때마다 난 남편의 예민함을 탓하곤 했다. 좁혀지지 않는 간극으로 부부의 사이가 차츰 소원해지고 있었다.
작은 아이가 일주일 정도 집에 있겠다며 왔다. 이틀을 같이 지낸 아이는 나와 카페 데이트 도중 슬쩍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 아빠는 둘이 똑같아. 왜 그렇게 서로 툭툭 대는지 알 것 같아"
"아니지. 아빠가 엄마말을 오해하잖아. 엄마는 아빠한테 명령하는 게 아니야"
"그건 엄마 생각이지 가끔 엄마는 내가 들어도 기분 나쁜 말을 아빠한테 해. 엄마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다는 걸 엄마만 모르는 걸 거야"
모처럼 딸과 보내는 시간에 남편과 둘이 살며 서운했던 일들이나 털어놓고 위로나 받고 싶었는데.
이건 웬걸!
나의 오점만 지적당하고 말았다.
반박과 변명을 한참 늘어놓고 보니 지금 뭐 하는 건가 싶은 생각에 기운이 빠져 버렸다.
'그래. 자식들이 제일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 보니 카톡 가족 단체방에서도 남편은 항상 높임말을 쓴다. 반면 나는 응 또는 아니 위주의 단답형 뿐이다. 가끔은 너무 바빠 대답을 하지 못할 때도 있다.
나는 휴대폰 통화 자동 기능을 항상 사용한다.
업무상 하는 통화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함인데. 남편과 다툼이 있을 때도 종종 사용한다.
남편이 지적할 땐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내 말투를 들어보기 위해 녹음된 것들을 재생시켜 보았다.
......
'내 말투가 뭐 어때서?'
......
'이땐 조금 화가 났었나'
......
'아! 이 목소리는 듣기 싫은데'
다르게 들린다.
부끄럽고. 만망해서 다시 듣기 거북한 것들도 몇 통화 있었다.
'참. 자식이 뭔지'
남편이 그렇게 오래도록 말해 왔건만. 아이 말 한마디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요즘은 남편과의 대화에서 내 말투를 신경 쓰다 보니 그 대화자체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말을 하는 중간중간 생각을 해야 하니 말하는 게 무척이나 어색하다.
"자기야. 그거 거기다 놓지 마"
하다가도
"그거 거기다 놓지 않으면 어때?"
"밥 먹어"
하다가는
"식사해요"
하니 얼마나 우스운 상황인가
"뭐야? 왜 이래? 뭐 잘못한 거 있어?"
얄밉다.
이상하다고 놀리지 말던가
말투를 흠잡고 삐지질 말던가 하나만 하면 좋으련만
'명령하는 마누라'라는 틀에서는 벗어나야겠기에 오늘도 아이의 말을 되새겨 본다.
"자기야. 술 많이 마시지 말고 일찍 들어오면 좋겠어"
(술 많이 먹지 마. 빨리 들어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