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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연 Nov 19. 2024

내가 한 김장은 김장도 아니었다.

노동의 맛

여름보다 겨울이 좋다. 이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선 한 가지 꼭 넘어야 할 관문이 있다.

김장!


"어머니. 어디세요?"

"응. 지금 회관에 와 있어"

"우리 김장 언제 하실 거예요"

"글쎄. 큰집이 이번주 토요일에 절여서 일요일에 하신다니까 우리 다음 주에 할까? 모르겠네"

"날짜 말씀해 주셔야 일 빼놓을 수 있어요~"

"그래? 그럼 담주 토요일에 배추 뽑아서 절이고 일요일에 하지 뭐!"

"네~토요일에 일찍 갈게요"


밭에서 배추 뽑아 절이고 속 만드는데 하루.

속 넣고 고기 삶아 품앗이 오신 동네 어른들 점심 대접하는데 하루.

꼬박 1박 2일의 여정이다.


해마다 친정 김장까지 생각해 주시는 덕에  다섯 집 김장을 하게 되는데도 토요일 출근인 나는 쉬는 일요일에만 가서 하곤 했다.


2022년까진  속 싸는 날만 마을 품앗이 하듯 가서 일하는 척하고 1년 먹을 김장을 염치도 없이 넉넉히 가지고 왔었다,


작년부터는 어머님 아버님 연세도 있어 걱정된다며 남편이 하루전날 가 부모님과 뽑고, 절이고, 썰고, 무치기를 했다.

이틀에 걸친 김장에 남편은 몸살을 았으니 그동안 부모님은 어땠을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작년의 남편 모습을 보고 올해는 나도 같이 갈 요량으로 미리 어머님께 날짜를 여쭈어 보고 일을 빼놓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안 해본 일임에도

'뭐! 얼마나 힘들겠어?'생각하며 호기롭게 토요일 아침 시댁으로 출발했다.


1차전

밭에서 배추 뽑기

이 일은 남편과 아버님이 해서 세 바퀴 수레에 잔뜩 실어 날라다 주면 나와 시이모님은 쪼그려 않아 큰 배추는 4등분 작은 것은 2등분으로 잘라 놓는다. 잘라놓은 배추는 나의 어머님과 시댁 큰 어머님이 간수에 푹 담갔다가 초등학생 키만 한 검은 통에 넣어 켜켜이 소금을 뿌려 절인다.

뽑아오는 족족 다듬어 절이니 몇 포기인지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2차전

이번엔 무다.

요즘은 마을 농협에서 기계로 무채를 썰어준다.

무거운 무를 들고 오고 가는 것이 번거롭지만 아버님이 일부를 썰어 가지고 오셔서 부족한 양만 조금 뽑아 채칼로 썰어 갖은양념 넣어 버무려 놓는다. 남편과 시동생 장정 두 명과 큰 어머님까지 셋이 온몸을 불살랐다.

3차전

가장 힘들고 추웠던 일이다.

새벽 4시 30

큰 어머님 오시는 소리에 일어났다.

거실로 나가 따뜻한 차 한잔하고 각자 우비를 입는다. 장화도 신고 전투준비 완료

절인 배추 씻어서 물 빼놓기

마침 올 가을 가장 춥고 바람 많이 부는 날

차고 짠 소금물 노동을 해야 했다.

어두울 때 시작한 노동은 동이 틀 때쯤 끝이 났다.


4차전

대망의 속 넣기

이제껏 내가 했던 김장은 김장도 아니었다.

이 일이 가장 쉬운 일이었거늘

고작 속만 넣어놓고는 김장 다 해본 것처럼 떠들었으니 과거의 내가 참 가소롭다.



마지막으로 넉넉히 고기 삶아 고생하신 동네 어르신들과 온 식구가 배 부르게 먹고 마무리


이제 한껏 이 겨울을 만끽할 일만 남았다.


어머님 아버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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