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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연 Jul 22. 2024

ep1. 여름, 매일이 잔칫날

점심 먹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12층에서 한 사람이 탄다.

어색한 목 인사만 하고, 양쪽벽으로  바짝 붙어 멀찍이 선다.

이 순간 엘리베이터 속도는 무척이나 느리다.

할 일 없이 전화기만 만지작 거릴 뿐.


10년을 넘게 살고 있는 곳이지만, 웃으며 인사하고 지내는 이웃은 두어 명 정도.

어릴 적 추억과 달리 오히려 살갑게 다가오는 사람이 어색해져 버린 요즘이 서글프다.




지독하게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화장실도 주방도 없이 연탄아궁이 위에 은색 양은 냄비 하나 얹어 놓을 수 있는 부뚜막이 고작인

방 하나짜리 집이 조금의 공간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

한쪽에서 보면 4층인 것도 같고, 다른 쪽에서 보면 5층인 것도 같은 시장 상가 건물은

위에서 보면 2층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공용 화장실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뫼비우스 띠처럼 보인다.


"지영엄마, 경철엄마 점심 먹자"

선미엄마가 문만 빼꼼히 열어 나오지는 않고 방 안에 앉아 소리친다.

방 안에서 불러도 사방 70미터는 건물을 돌아 울리는 그 목소리가 들리지 싶다.

"선미언니, 우리 집은 오늘 먹을 반찬이 별로 없네. 고추나 된장에 찍어 먹을까?"

지영엄마의  대답에 이어, 경철엄마가 말한다.

"나, 어제 오이김치 담가서 아이스박스에 넣어 놨는데, 익었으려나."

이곳에 냉장고가 있는 집은 드물다. 아이스 박스의 크기로 그 집에 먹을거리가 얼마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문 앞에 석유곤로, 파란색과 흰색이 마블링된 무늬의 아이스박스가 항상 놓여 있어도 손 타는 일 한번 없다.

서로의 사정을 너무 잘 아는 가난한 사람들끼리의 의리인 것이다.


"경철엄마야, 너네 오이지 맛있게 익었더라. 그것 좀 큼지막하게 썰어서 고추 넣고 물 부어와 봐"

선미엄마가 말한다. 이어서 지영엄마가

"지영아, 가서 뚱뚱이 할머니 모시고 와. 점심 드시라고."


지영이는 뚱뚱이 할머니 남편 뚱뚱이 할아버지를 무서워한다.

엄마가 할머니네로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입이 저도 모르게 쭉 나온다.

슬리퍼를 끌고 할머니 집 멀찍이 서서

"할머니, 엄마가 점심 같이 드시재요"

소리치듯이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점심 상이 차려질 곳으로 내 뛴다.


"이놈의 새끼들, 시끄러워 죽겠네. 저리 가서 놀아."

커다란 몸집에 허스키한 목소리, 효자손을 항상 들고 다니시는, 아이들만 보면 소리치며  쫓아내는

할아버지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다.




2층 너른 공터에 깔려있는 돗자리는 마치 시골 마당 평상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여름 점심은 적게는 다섯 집, 많이 모이면 일곱, 여덟 집이 모여 같이 먹는다, 여름 방학이면 학교 안 간 아이들까지. 마치 매일이 잔칫날 같다.


오이, 상추, 열무, 고추, 가지볶음, 콩나물 무침, 두부, 호박 넣은 된장국, 숟가락으로 긁어 껍질 벗겨 삶아낸 감자, 옥수수, 온통 이런 제철 푸성귀이지만 모두 둘러앉아 먹으면 그 맛이 꿀맛이다.

큰 그룻에 담긴 오이지 국물에  숟가락이 섞이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계란이나 고기반찬은 이 점심 잔칫상엔 절대 나오지 않는다.

나올 수 없다. 제 식구 먹이기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반찬투정 없이 물 마른밥에 오이지를 맛있게 먹는다.


매일 있는 이 정오의 모임은 동네 소문을 들을 수 있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수아네 소문 들었어?, 이발소 종업원 김 군은 간질 환자라네, 미자네 큰 아들 엄마 속 너무 썩인다'

와 같은 말들이 오고 가다 보니 원치 않은 싸움의 발상지가 되기도 한다.

어른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아이들이 못 들은 척 딴짓을 하는 것 같지만

그곳에서 듣는 이야기로 얼마나 많은 상상, 고민, 가끔은 두려움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쏙닥 거렸는지를 말이다.


지독하게 가난한 그래서 더 정 많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겉에서 보면 들어가 보기도 겁나는 지저분하고 어두운, 그런 건물이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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