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10

10

by 능선오름

멋진 신세계 10.


그날 이후로 사내는 주인집의 파워플랜트에 머무르게 되었다.

단독 고급주택에는 모두 집 뒤에 반지하 구조로 된 파워플랜트가 있는데,

친환경이 중요시되는 23세기 시대에 걸맞은 태양광발전과 에너지 재활용 시스템과

급배수 시스템 이 들어가 있는 시설물이다.

첨단 기기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적정 온습도를 유지하게 되어 있으며 여유 공간도 많은 편 인 데다가 기계 쪽 과는 거리가 먼 주인의 특성상,

설비에 문제가 없는 한 이곳에 누가 오는 일이라곤 없으므로 그 사내를 숨기기에는 아주 적절한 공간이었다.

더 좋은 건 시스템 수리 때 필요한 컴퓨터 단말이 위치하고 있어서 사내가 외부에 나가지 않고서도 충분히 외부 사정을 알아보거나 각종 뉴스와 필요한 정보를 알아볼 수 있는 여건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사내의 동의 없이 사내를 복잡한 식민지식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새비지’라 부르기로 했다.

그 이름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넷 상의 데이터에 1932년도에 쓰인 소설이 있었는데 그 당시로부터 먼 미래 세계를 상상한 소설이었다고 한다. 그 주인공의 이름이다.

어딘지 사내의 처지가 그와 비슷하다고 판단하여 내 맘대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물론, 사내에게 말을 한 건 아니다.

어떻든 ‘인간’ 에게 ‘신인류’가 불경해 보이는 행동을 하는 건 거부반응이 일어나기 쉬우니까.

사내를 주인 모르게 파워 플랜트에 숨긴 것에 대해 죄의식 같은 건 없다.

우리의 논리회로로 보면 인간은 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다.

지구의 역사에 비해 인간이 지구에 출현한 기간은 비교적 짧은데 지능의 발달로 단기간에 지구를 '뒤덮고' 있을 뿐이지 지구의 주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과거 고생대 때 공룡들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과학으로도 인간이 가장 가까운 항성계에 갈 능력도 불가능하며,

K-T경계와 같이 - 공룡의 멸종은 학자들의 연구결과 단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멸종한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운석의 충돌설은 공룡의 멸종을 조금 앞당긴 역할을 했을 거라는 것이다. 중생대 백악기와 신생대 제3기 지층이 경계를 이루는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지점을 K-T(K는 그리스어로 백묵이라는 뜻의 ‘Kreta’에서 온 것이고 T는 신생대 제3기 ‘Tertiary’에서 따온 것이다) 경계라 부른다.-

우주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 현대 인류는 무력하다.

그런 인류의 최초 누군가가 땅덩이에 선을 긋고 소유권을 주장 한때부터 '부동산' '재산'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인데, 그건 매우 비논리적인 설정이며 단지 힘의 논리로 억지된 것이라고 본다.

그런 거면 지구인 류보다 우월한 외계인이 지구에 들어와 힘으로 지구인을 노예로 복속시키고 지구에 대한 재산권을 주장한다면 인정할 것인가?

'땅' '돈' 이런 것은 실체가 없고 주인도 없다.

그러하므로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니 나는 파워플랜트가 주인 사내의 것이라는 생각이 없고,

때문에 그곳에 새비지를 머물게 한 것이 죄라는 생각 또한 없다.


주인은 잦은 여행과 출장으로 인하여 드문드문 집에 들어왔고,

주인의 이동경로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공중 넷 망에 늘 노출이 되어 있으므로 나는 수시로 주인의 눈을 피해 파워플랜트를 드나들었다.

그곳이 내 논리로는 주인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주인이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므로.


사내는 내가 파악하고 있는 공중 넷 망에 없는 정보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물론 그중 진위여부 파악이 어려운 정보도 있었지만 대부분 연관 정보를 확인해 보면 논리적으로 존재하던 정보인 경우들이 많았고 정보와 정보들의 연계성이 논리적이었다.

내가 그런 목적의 사이보그는 아니지만 새로운 정보들을 찾고 받아들이려는 이유는 내 데이터베이스를 확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단지 정보의 획득과 업로드에 대한 프로그램적인 본능 외에도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간간히 발생하는 내 버그 때문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 버그가 내 프로그램 상 오류라고 여겨서 업데이트를 계속 시도도 해봤고,

본사의 매뉴얼 상 나열된 오류 조정 기록을 모두 찾아보았으나 나와 같은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몇 번 버그를 경험하면서,

내 회로상 문제는 없었고 오히려 버그의 순간이 지나면 뭔가 조금 부족한 것 같은 그런 이상한 논리가 내 인공지능을 맴돌게 되었던 것이다.

사내의 눈길을 받을 때. 그리고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따금 버그가 내 인공지능을 엄습하는 그 순간은 잠깐 회로에 전자기 간섭이 일어난 것처럼,

찰나 간에 스쳐가는 ‘무엇’이 있곤 했다.

특별히 통증 같은 걸 느끼지 못하는 내 신체로서는 의외이기도 하고,

그 간섭현상으로 인하여 마치 인공지능에 불필요하게 쌓여있던 데이터들을 정리한 것처럼.

인공지능 자체가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된 것처럼.

그렇게 ‘무엇’ 인가가 내 신경 회로들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며칠간을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하려다 보니, 인트라넷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결국 본사에 들어가서 해결을 해야 한다는 판단이 생겼다.

본사로 가려면 셔틀을 타고 최소 반나절 이상을 물리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기능점검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돌아 올 예측시간이 모호했다.

내가 부재중이라면 새비지는 당장 생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나는 새비지에게 미리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나는 주택의 후문을 나서서 파워플랜트에 들어섰다.

파워플랜트의 보안게이트를 통과하여 계단을 내려가자 희미한 자연채광이 천정으로부터 들어오고,

사내가 컴퓨터 단말 장치 앞에 앉아 있었다.

새비지는 머리에 접속 헤드셋을 쓰고 구두 명령을 이용하여 홀로그램 화면 이곳저곳을 검색하고 있었다.

잘 정리되지 못한 덥수룩한 사내의 머리칼과 수염이 사내의 수척한 얼굴에 음영을 드리웠다.

그 옆얼굴을 보고 있자니 다시 찌르르 이상 신호가 감지되었다.

또 버그 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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