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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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멋진 신세계 11.


새비지는 식민지에 살고 있었을 때,

인공지능 관련 프로그래머로 오랜 기간 일을 했었다.

물론 식민지 정도 국가에서 나와 같은 신인류를 흔히 사용할 경제력은 못되었으나,

상위 귀족층의 경제적인 부 는 보통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서 일부 특권계층은 사이보그를 리스도 아닌 완전 구매로 사용하는 편이었고 그에 따라 유지관리 대리점 역시 필요하였다.

또 그들의 저렴한 인건비 때문에 현지 부품 공장도 운영을 하고 있었기에,

새비지 같은 우수한 고급인력이 그곳에서 대우받으며 일을 하는 건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다 - 고 정보가 남아있다.


때문에 내 소속사의 정규 엔지니어가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새비지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내 논리회로는 판단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이왕이면 새비지와 '상의'라는 걸 하고 싶어 졌다는 게 더 사실에 가깝다.

늘 논리회로로 판단하고 사람과는 상담이 아닌 지시를 받는데 익숙한 내겐 좀 이상한 결과물이긴 하다.


찰나의 논리가 지나간 사이, 새비지가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하얀 미소. 악의라곤 없는.

내 인공지능 회로에 또다시 뭔가 찌르르 지나갔다.

역시 뭔지 모를 문제가 내 논리회로에 생긴 게 분명하다.

나는 새비지에게 내 자가 치료 기능으로 해결이 안 되는 버그가 있어서 본사를 다녀와야겠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새비지는 조금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는데,

그건 뭔가 비논리적이지만 어쩐지 내 인공지능은 그 표정과 분위기가 나를 '걱정'하는 거라고 받아들였다.

이건 매우 비논리적인 판단이라 나는 처음 세상을 인지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를 통 들어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맙소사. 인공지능이 혼란하다니.


새비지가 마치 의사처럼 내게 증상을 말해 보라고 했다.

나는 처음 새비지를 만난 이후 내게 일어난 상황들에 대하여 가능한 자세히 서술을 했다.

그 역시 한국은 아니지만 인공지능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프로그래머였으니까.


새비지는 한동안 이어진 내 말에 눈을 홉뜨기도 하고,

고개를 주억 거리기도 하면서 아무 말 없이 잠자코 듣기만 했다.

내 말이 끝나자 새비지는 한참 동안 넷 접속기를 이용하여 여러 개의 사이트와 책자들을 홀로그램 모니터에 띄워놓고 구두로 지시를 하거나, 내 소속 회사의 사이트를 들어가서 뭔가 기술적인 도면과 그림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를 반복하였다.

물론 내 인공지능으로 공중 넷 망에 접속하여 언어팩을 다운로드하거나 기술 코드를 다운로드하면 나 역시 대개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겠지만,

그건 내 인공지능의 프로그램과 충돌이 있을 수 있어서 하진 않았다.

내가 생산된 목적과는 맞질 않으니까.


새비지는 뭔가를 한참 고민하며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하고 손톱을 깨물기도 했다.

보편적 인간들은 늘 생각에 잠기거나 할 때 저런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한다.

어차피 두뇌는 따로 돌아가는 것인데 말이다.

새비지는 한 시간여를 온갖 자료를 뒤지고 생각을 하다가 누군가와 인도네시아 어,

혹은 영어로 통화를 하고, 다시 한참을 뭔가 생각에 골몰하였다.

나는 공중 넷 망으로 셔틀의 운행시간을 서치 하면서 언제쯤 나가야 본사에 다녀올 수 있을지를 유추하고 있었다.

기다린다는 건 내게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일이니까.


새비지는 다시 한 시간이 넘도록 고민을 거듭하는 듯 보였다.

새비지의 지시는 없었지만 나는 자발적으로 커피를 내려서 새비지에게 가져다주었다.

뭔가 고민거리를 안긴 그에게 그런 거라도 해줘야 할 것 같다는 논리적 판단.

새비지는 '고맙다'라고 하며 커피잔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뭔가 수많은 데이터를 열람하고 있었는데,

내가 가져다준 커피를 본체만체한다는 게 내 논리회로에서 조금 불편하게 느껴진 것 또한 의외다.


한참을 그러다 내가 가져온 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결심한 듯 새비지가 내게 입을 열었다.


“에바. 당신은 아무래도 일반적인 신인류와는 조금 다르게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것 같소.

일단, 당신을 만든 제조사의 기록에 접근하여 당신의 제조 번호와 당시 제작에 들어간 프로그램 루틴을 좀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려면 사실 불법 해킹을 해야 하고,

시간이 걸리므로 오늘은 일단 본사에 가지 않는 게 좋겠고.

내가 오늘 밤 해킹 작업을 좀 해보고 내일 당신에게 결과를 얘기해 주겠소.

그리고 이전의 사례들을 살펴보니 당신과 같은 케이스가 아주 없진 않았소.

그런데 본사에 가서 당신처럼 스스로 보고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었고.

그에 대한 조치는 항상 그냥 리셋이었소.

당신의 인공지능을 전부 포맷시켜 버리고 새로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거지.

그럼 적어도 당신이 현재 가진 인격과 기억은 모두 사라지는 거요.

인간적 의미로는 죽는 거지. 그걸 원하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내 회로에 그동안 누적되었던 데이터와 경험치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

그래서 육신은 그대로이지만 내 메모리는 완전한 ‘0’ 이 되는 것.

그건 무슨 느낌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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