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13

13

by 능선오름

멋진 신세계 13.


사랑.

나는 새비지가 말하는 단어의 정의를 잘 알고 있다.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거나 애착을 느끼는 감정 상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사랑이 이렇게 정의돼 있다.

미국의 시인 존 키츠의 표현대로라면, 사랑이란 ‘온갖 자극과 감정이 뒤섞인 소란’인 것이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과연 사랑을 감정의 한 종류로 보는 것이 타당할까?

이 질문에 대해 신경과학자들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신경과학자들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사랑이란 감정은…’이라는 일상적인 표현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사랑이 만약 감정이라면, 사랑을 얼굴 표정으로 나타내 보라고 주문한다.


사랑은 반드시 ‘행동’을 동반한다는 점에서도 여느 감정과 구별된다.

사랑이라는 상태는 사랑하는 상대에게 모든 것을 집중시키며 그와 함께하고,

그를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수행하며, 일련의 행동에는 뚜렷한 목적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는 ‘욕구나 동기’에 더 가깝다.


결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뇌 활동사진을 찍어보면 사랑은 우리 뇌 안에서 감정을 관장하는 영역(편도체 등)에서 처리되지 않고 ‘욕구나 동기’를 관장하는 영역에서 처리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동정, 황홀경, 갈망, 두려움, 의심, 질투, 당혹, 집중 등 온갖 격정적인 반응을 동반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래서 호머는 자신의 서사시 <일리아드>에서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던가?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의 뜨거움. 갈망의 돌진. 연인의 속삭임이여. 가장 성스런 사람까지 미쳐버리게 만드는 그 마력이여.”


사랑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들은 다른 심리 상태와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욕망도 뇌에 있는 특정한 화학물질과 신경회로로 인해 생겨나는 보편적인 마음 상태라고 믿는다.

사랑하는 연인들을 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기(fMRI)라는 뇌 영상장치 안에 집어넣고 그들의 뇌를 찍을 생각을 했던 최초의 연구자는 헬렌 피셔라는 미국 럿거스 뉴저지 주립대학 인류학과 연구교수였다.

놀랍게도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필로폰 중독 환자들이 필로폰을 복용했을 때 활성화되는 보상 중추라는 영역에서 활발한 반응을 보였다.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마구 분비되는 것도 관찰됐다.

사랑이란 고귀한 마음 상태도 생물학적인 뇌 활동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관찰한 것이다.


인류의 역사 이래, 그리고 문자가 등장 한 역사 이후로 사랑에 대한 정의와 연구는 데이터 처리가 불가능할 만큼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공지능이 새비지를 보고 반응했던 일련의 비논리적 사고와 판단으로 인하여 행동으로 옮겨진 과정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한다면 그건 나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욕망’에 가까운 처리과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다만, 내게는 보통 인간들이 사랑에 빠질 때 분비되곤 하는 호르몬 자체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일종의 전자기 간섭과 같은 현상으로 나타났다는.

그래서 낯선 반응임에도 불구하고,

그 간섭 현상이 주는 일종의 ‘쾌감’과 유사한 효과를 더 느끼기 위하여 새비지에게 더 적극적인 도움을 주게 되었다는 논리.


이것이 내 인공지능과 공중 넷 망의 자료들과 새비지의 조언들을 조합하여 내린 결론이었다.

새비지에 대해서 숨기려고 하고 논리적 알고리즘과 무관하게 보호하려고 하며 새비지를 떠올리면 일어나는 무작위적인 회로 간섭 현상.

이 모든 버그는 새비지를 만나기 이전에는 없었던 오류였다.

그렇다면 아마도 나는, 이 인간.

새비지를 사랑하는 모양이었다.

내 논리 회로에는 없는,

주인이 가끔 내뱉는 단어와 그에 대한 논리적 문법 정의가 떠올랐다.


『맙소사 란 단어는 19세기 이후부터 쓰였다.

‘마 쇼셔’가 단독으로 사용되어 감탄사처럼 쓰이면서 동시에 윗사람에게 ‘그만둘 것’을 명령하는 의미를 가진 것이라면 그 윗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그것은 ‘신’ 일 것이다.

따라서 ‘맙소사’는 ‘신이여!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란 뜻이다. 』


맙소사. 신인류 인 내가 인간을 사랑하다니.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멋진 신세계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