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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내 정확한 답변을 듣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행동은 보편적 인간들이 상대방 의견에 반대할 때 나타나는 몸짓이라는 정보가 있다.
그것도 실은 불필요한 정보이지만.
“ 식민지의 의미가 반드시 정치적인 시대라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 이후로도 경제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은 그들의 자본을 바탕으로 제3세계의 국가들의 자원과 인력을 수탈해 온 게 사실 이오.
그리고 경제대국끼리 협약에 의하여 조직적으로 제3세계의 발전을 막아 온 것도 사실이고.
또 식민지가 반드시 국가 간의 문제는 아니오.
여러 경제대국들의 모든 인간이 다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
물론 기본적 생활권이야 제3세계에 비하면 비교할 바도 안 되도록 기초 생활이야 훌륭하지만…….
그러나 그들 역시 대기업의 자본에 휘둘려서 상위권 국민들과 동일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소?”
사내가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쏳아놓는 동안 나는 내 인공지능에 깔린 기초지식 이외의 것 들을 얘기 하는 상황이라 공중 넷 망을 통하여 부지런히 관련 데이터를 다운로드하였다.
사내의 이론은 내 가 가진 정보들로 종합해 보건대 현 국가에서는 매우 ‘위험한’ 사상이었다.
자본에 의한 권력. 권력을 기반으로 한 수탈.
소수 자본가를 위한 다수의 노동 착취. 기초적 생활 안정과 필요한 즐거움의 제공 등등.
이것은 23세기 들어 발효된 새로운 헌법에 기인하며,
지극히 개인의 만족만을 추구하는 삶의 형태를 권장하면서 동시에 기존의 가족제도가 유지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여 인력 유지를 위한 인공수정 및 육아 기능을 국가가 책임지고,
개인은 각각의 직업과 각각의 즐거움을 추구하며 그에 대한 대가로 국가에서는 건강과 각종 즐거움에 대한 것 까지를 책임 진다라는 것.
심지어 섹스 까지도. 그래서 우리 신인류가 등장한 것이기도 하고.
다만, 그들의 태생에 따라서 이미 지도층은 지도층으로 육성되고 피지배 계급은 또 그렇게 육성이 되므로 피차 불만도 없고 결과적으로 분쟁 없는 평화로운 세계가 되었으니 문제는 없다.
즉 사내의 사상은 현 세계에 맞지 않는 대단히 위험하고 불순하며 파괴적인 사상이다.
사내의 정체도 알 수 없는데, 그 사상까지 현 체제에 맞지 않으니 사내는 불순분자로 분류 된다.
“ 저는 당신과 일주일 동안 지내라는 명령을 받고 들어 온 것입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섹스를 제공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는 말을 듣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내게 무엇인가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면 그건 어렵습니다.
내 논리 회로가 당신이 말하는 바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합니다. 미안합니다.”
사내는 잠시 멈칫하는 듯 보였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 쉬었다.
보편적 인간이 보이는 실망의 몸짓. 그리고 납득할 수 없다는 몸짓.
그들은 아직도 원숭이의 몸짓과 유사한 유전자가 남아 있다.
사내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사내는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말했다.
“ 에바. 사실 당신이 어떤류의 사이보그 인지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내 생각? 주관은 그래요.
어떤 식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당신은 가정용 냉장고가 아니에요.
실제 당신 육체의 90% 이상이 유기조직 일거요.
당신의 뇌 또한 그렇고.
그건, 종류는 좀 다르지만 당신도 인류의 한 종이라는 거요.
결코 아무렇게나 사용하다 폐기하는 가전제품은 아니라는 거죠. “
사내는 잠시 말을 끊더니 테이블에 놓인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또렷한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다.
나는 분명 사내를 처음 보았다.
그런데 지금 이 사내가 하는 말은 공중 넷 망에도 없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들은 기억이 난다.
기억이라기보다는 내가 인지 못하는 데이터가 인공지능 필드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다.
내 인공지능에 뭔가 찌르르하는 전자기 간섭이 일어났다.
이런.
리부트 했는데 버그 가 일어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