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19

19

by 능선오름

내 인공지능에 전자기 간섭이 일어난 순간 갑자기 모든 생체기능이 굳어 버렸다.

나는 호흡을 하지 않으나 생체세포에 인공혈액을 돌리기 때문에 심장에 해당하는 순환펌프가 있는데,

그 펌프를 제외한 인식기능 부분들이 잠시 동작을 멈춘 듯했다.

모든 기능들은 갑자기 크게 활성화된 인공지능의 일정 부분 때문에 입출력이 끊어져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기억필드와 논리필드 사이로 엄청난 데이터들이 폭주했다.

나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시간 동안 인공지능을 엄습하는 데이터들로 인해서 아무런 동작을 할 수 없었다.

내 인지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온 순간,

나는 모든 잃어버린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실을 깨닫는 그 순간이 내게,

그리고 사내에게 몹시 위험한 순간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판단하였다.


사내는, 새비지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에바, 무슨 문제라도 있소?

당신 방금 전에 잠시 경련 같은 걸 일으킨 것 같은데.”


나는 건조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아무 문제없습니다. 새로운 넷 데이터를 다운로드한 것뿐입니다.”


사내는 그렇소?라고 답하곤 다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아무런 동작 없이 의자에 앉아 마네킹처럼 굳어 있었으나 머릿속 인공지능은 미친 듯 회로가 가동되고 있었다.


오래전, 공상소설 작가 중 아시모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세운 가설 중 로봇의 3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제1원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이 원칙이란 단지 소설상이었지만 어쩌면 최초로 로봇의 미래를 예견한 자 로서의 영향력은 컸다.

후대의 과학자 들은 우습게도 그 원칙을 기준으로 인공지능을 개발했다.

사실 그건 인류를 지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 원칙이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의 기준이 없이 인간을 초월하는 지능과 신체능력을 가진 로봇이 등장한다면 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될 테니까.

그런 이유로 세기말이 될 때 암울한 미래를 그린 영화들이 수많이 등장하지 않았던가.

다소 거칠고 원시적인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던 영화 '터미네이터'

그보다는 조금 더 세련된 상상이었던 '매트릭스'

그와 유사한 내용으로 인류의 미래를 말살하는 인공지능들에 대한 아류작들이 많이 등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이후 실제로 전시에 사용된 공격용 드론이라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로봇의 원칙을 배제한 살상병기로 만들어진 것도 사실이니까.


나는 어떤 연유로 봉인되었거나 삭제되었던 데이터들이 순식간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 이 방과 새비지와 내가 감시받고 있는 중이란 것 또한 깨달았다.

나 역시 아시모프의 3원칙에 의해 프로그램되었으며,

때문에 그 원칙에 따라 새비지와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논리적 판단과 예상 들이 나노초의 속도로 지능 필드를 내달렸다.

어쨌든 나는 기억이 돌아온 것을 감시자들에게 들켜서는 안 되었다.

그건 새비지와 나, 둘 다 완전 소거 될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새비지는 이곳이 불법 이민자 단속국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곳은 사기업의 연구실이다.

분명 현행법에서 아무리 범죄자라고 해도 사기업에서 감금을 하고 뇌수술을 하는 건 불법이다.

그럼에도 저 들은 새비지의 뇌를 건드렸고, 내 기억을 포맷한 후 상태를 테스트해보기 위하여 나를 다시 이 방에 집어넣은 것이다.

새비지에 대한 정보가 세계 어디에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저들이 이미 새비지를 인간이 아닌 그저 실험대상 정도로 등급을 확정했음을 의미했다.

새비지와 인연이 있었던 나를 포맷하고 굳이 이곳에서 새비지와 나의 기억 포맷 여부를 다시 확인하려는 것 또한 그들이 치밀하게 준비한 실험임을 증명하는 것이고.

그것도 모르고 새비지는 감청을 하고 있을 저 들이 거북해할 말들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불쌍한 사람.

내 인공지능의 기본기능에서 인간은 불쌍한 존재가 아니다.

그것보다 '불쌍'이라는 개념은 내겐 원래는 없는 감정이다.

인공지능, 특히 우리처럼 일정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은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애초부터 인간들이 굳이 기계에게 감정을 얹을 이유도 없고.

그 목적성을 생각한다면 나와 같은 인공지능은 더더욱 인간을 '사용자' 이상 다른 것으로 판단할 기준은 없다.

그게 인간들의 입장에서도 편하니까.

인공지능과 감정교류를 진정으로 원하는 인간은 들어본 적이 없다.

때로 본능적인 '외로움' 때문에 사이보그에게 감정을 이입시키는 인간은 물론 있다.

그러나 그건 인간의 오해일 뿐 그렇다고 사이보그가 덩달아 감정을 가지게 만들진 않았다.

때문에,

내가 새비지를 불쌍하다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실은 굉장한 오류다.


나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앉아서 밖에서 감시하는 자들의 동태를 살폈다.

공중 넷 망을 통하여 복도에 있는 감시카메라가 오픈되어 있었으므로 인트라넷 내부에서 그들의 행동을 살펴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이다.

박사는 한참 내부를 들여다보다가 기지개를 켜며 다시 연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실험실 내부는 여러 대의 카메라로 녹화가 되고 있으니,

천천히 분석하면 된다고 판단 한 모양이다.


내겐 아주 짧은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나는 평상시 쓸 필요도 없고 저장도 하지 않던 데이터를 넷 망에서 찾아냈다.

사이보그 식의 복화술을 이용하여 낮고 짧은소리로 상대방에게 은밀하게 소리를 전달하는 기술이다.

내 음성을 내는 방식은 성대가 아닌 일종의 유기 스피커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 파장과 높낮이 조절이 가능해서, 새비지의 가청 주파수를 낼 수 있다.

즉, 카메라에 장착된 보통의 마이크로폰을 속이는 것이다.

나는 새비지에게 은밀한 대화를 보내기 시작했다.


“고개 돌리지 말고 듣기만 해요.

난 당신이 누군지, 지워진 기억이 무엇 인지 알아요.

내가 이 방법으로 길게 말하는 건 어려워요.

그러니 곧 불을 끄고, 나에게 섹스를 하자고 요구해요.

그래야만 내가 당신에게 긴 대화를 할 수 있어요.

지금 우리는 감시당하고 있어서 당신이나 내 대화가 녹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내 말에 대답을 하면 안 됩니다. “


창밖을 바라보던 새비지의 어깨가 움찔했다.

불쌍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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