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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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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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비지의 속마음을 알고 나자 더 이상 지체 할 이유가 없었다.

인공지능은 계획의 실행이 빠를 수 록 성공률이 높아진다고 보장한다.

대부분의 변수는 늘 상대방에게 시간이 넉넉할 때 생기는 법이다.

이런 경우에 그들에게 우리 둘의 존재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폐기가 가능한 존재.

우리가 그들에 맞서거나 그들의 지시를 어길 수 있는 카드는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현재 가용한 무엇이든 즉시 사용해야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는 어둠 속에서 일어나 벽체에 붙어 있는 tv 모니터를 뜯어냈다.

모니터 뒤 에는 무선으로 항시 충전이 되는 고용량 배터리가 붙어있다.

그 배터리는 21세기의 리튬이온 배터리와는 다른 발전된 형태이지만 기본 구성은 같다.

이미 갈무리된 정보를 통해 그 배터리가 일정한 조건이 형성되면 폭발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배터리의 충전 상태가 완전충전임을 확인한 후

침대 모서리에 힘껏 배터리를 내리쳐서 겉껍질이 갈라지게 했다.

유치창문은 다행히 방탄유리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유리창이 안전하게 깨지려면 유리창 중심은 곤란하다.

모니터의 금속 부분을 분해해서 유리창과 창틀이 맞닿는 모서리에 충격을 가했다.

깨어지진 않았지만 실금이 간 게 보였다.

떼어낸 배터리의 갈라진 부분을 유리창 방향으로 해서 배터리를 밀착시켰다.

이것은 폭발의 방향을 밖을 향하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손톱을 세워 스스로 내 등 뒤의 피부조직을 갈랐다.

나는 전투용이 아니라서 맨 손으로 피부를 가르는 작업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과하게 힘을 써야 했다.


피부는 거칠게 갈라졌지만 통증은 없다. 내 인공피부에는 통점이 없으니까.

갈라진 피부에서 인공혈액이 흘러나왔다.

이제 준비가 되었다.

나는 혈액을 도체 삼아서 내 등 뒤에 내장된 유기 배터리를 방전시킬 것이다.

순간 전압을 높이면 tv 배터리에 과전압을 흘려보낼 수 있을 것이고,

내 혈액이 매개체가 되어 배터리가 폭발할 것이다.

그러면 이 실험실 창문 유리를 터뜨릴 수 있다.

실금이 가있는 두터운 유리에 폭발이 가해지면 유리창은 순간 폭발을 일으킬 것이라고 인공지능은 계산을 마쳤다.


물론 그 폭발력으로 내 등의 피부가 손상을 입게 되겠지만,

배터리 폭발 방향을 잘 조정하면 그 피해는 옅을 것이고 오히려 그 순간 발생하는 폭발 열로 갈라진 피부를 지혈할 것이다.

그 이후는 새비지를 안고 뛰어내려 단지를 벗어나야 한다.

단지를 벗어나 강으로 가서 주변의 무엇이든 이용하여 강을 타거나 넘어서 산악지대로 피해야 한다.

그게 지금까지의 내 계획이고,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지만 확률은 높다.


현재 GMT 시간은 새벽 두 시.

감시 기계들은 잠들지 않지만 근무 중 인 인간들에겐 가장 정신적으로 느슨해지는 시각.

나는 이 모든 걸 행동으로 옮겼다.

어둠 속이지만 내 피부를 스스로 갈라내는 걸 보는 새비지의 눈은 놀라움에 커졌다.

나는 새비지에게 옷을 입고, 내 가운도 챙기라고 했다.

침대 매트리스 사이에 들어가 있던 비닐 막도 걷어내고,

실험실 내부의 보잘것없는 비품들도 챙겨야 한다.

그리고 어쭙잖은 실내화 도.


내 발바닥은 고통을 느끼지 않겠지만, 맨발로 드러난 땅 위에서 뜀박질을 한다면 피부가 손상될 것이고 그건 내 기능이 점점 떨어질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무엇이든 주변에 가능한 자원들을 끌어 모아야 했다.

그게 우리의 탈출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니까.

순간 전압을 높였을 때 행여 내 인공지능에 영향을 주지 않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더 이상 지체 할 순 없다.

내가 생각하고 계획하는 모든 것들이 자동적으로 넷 망의 할당 루트를 통하여 자동백업 되고 있을 테니까.

어차피 생각을 한 것들에 대하여 그들이 내일 아침 혹은 비상경보가 울린 이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기에 빨리 움직여야 했다.

더 많은 생각을 하는 것도 금기사항이다.

결국 내 생각들은 현재 자동백업 되고 있으므로 가능한 이 연구소의 네트워크를 벗어나야 나의 다음계획들이 이들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유리창에 밀착시킨 배터리에 등을 대고 힘껏 전압을 높였다.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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