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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구소를 탈출 한 후 즉시 내 인공지능과 접속 되어 있던 넷을 차단했다.
그것은 내 위치를 숨기고자 하는 목적과 동시에, 내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해서 이기도 했지만
실은 탈출 직전 까지 업로드 된 나의 예상 탈출로를 뒤집기 위한 목적이 컸다.
연구소의 네크워크에 들어가 있을때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데이터가 업로드 되지만,
위성통신을 이용하는 공중망에서는 선택이 가능했으니까.
그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업로드 된 백업 데이터로 나를 추적 할 것 이고,
나는 그들의 심리를 역으로 이용할 생각 이었다.
새비지를 등에 업고 나는 그들이 예측 할 수 있는 도주로의 반대방향 으로 날이 밝기 전 까지 뛰었다.
나는 전투용 에바가 아니지만 호흡으로 숨이 거칠어 질 이유도 없고 기본적으로 구성 되어있는 강화탄소 골격과 유기 근육 때문에 지치지 않고 시속 40KM 속력으로 꾸준히 달릴 수 있었다.
다만 내 기본 크기는 성인 남자보다 작게 제작이 되어 있으므로 새비지는 좀 불편했을 것이다.
나와 새비지는 날이 밝을 무렵 항구 에 도착했고 사전 다운로드 받은 출항 리스트를 참고 하여 홍콩을 향하는 화물선에 밀항을 할 수 있다.
23세기의 화물선은 고속 호버크라프트 타입 이라서 하루면 홍콩 도착이 가능하다.
그곳에 가서 어떻게 신분을 숨기고 스며들지에 대해서는 사전 갈무리한 정보들이 유용했다.
내 계획은 이랬다.
홍콩의 ‘몽콕’ 이란 지역은 23세기지만 21세기와 같은 문화들이 아직 잔존 하는 곳 이다.
첨단 과 과거가 공존하고, 21세기의 아시아 최대 무역도시답게 귀족국가의 사무소 들이 설치되어 있지만 대륙으로부터 그리고 동남아 제3세계로부터 불법 이민자와 체류자, 노동자 들이 뒤섞인 곳.
때문에 신분 증명이 디지털화 되어 있음에도 누락된 정보가 흘러넘치는 곳.
필요 할 때는 첨단 장비의 도움도 받을 수 있는 혼란의 세계.
나와 새비지는 그곳으로 스며들 예정 이다.
탈출 당시의 폭발로 인하여 내 등을 구성하는 인공피부는 모두 우글쭈글 눌어붙었다.
인간으로 보면 마치 심한 화상을 입은 듯한 형상 이지만 다행히 나는 통증을 모른다.
그리고 그 여파로 오히려 혈액 유출도 막을 수 있었다.
충전기가 없는 상태에서 가능한 햇볕에 의존하여 태양광 충전을 하다 보니 에너지가 부족 하긴 하였지만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나는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지만,
새비지는 인간 이라 먹고 배설하고 자야 했다.
호버 크래프트에 몰래 올라타는 것은 의외로 수월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판단이 안되지만 연구소에서 정부기관에 우리의 탈출을 알리지 않은것 같았다.
호버 크래프트에 타는 절차도 그다지 삼엄하지도 않고,
주변에도 경계가 별로 없었던 것은 비논리적이지만 '운'이 좋은 것이다.
사전의 정보로는 귀족국가를 들어오는 과정은 밀입국자를 막기 위하여 무척 삼엄하고 치밀하지만,
귀족국가의 출국은 의외로 수월하다고 들었던 탓일까.
하긴,
굳이 귀족국가에 밀입국 하려는 사람이야 많지만,
귀족국가에서 나가려는 사람은 거의 없기도 하고 굳이 나간다면 말릴 이유도 없는게 그들 정부의 입장이다.
숨어들어온 호버크래프트의 창고 비슷한 곳에 들어가자 마자 지쳐버린 새비지는 잠이 들었다.
나도 제대로 만들어진 충전 도크에 들어가기 전에는 에너지를 아껴야 하므로 예상 도착시간을 맞춰놓고 슬립 모드로 전환했다.
모드 전환전 어둠 속에서 지친듯 잠이 든 새비지의 수척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또 다시 인공지능에 뭔가 찌르르 간섭이 스쳐간다.
그리고 나는 그게 인간들이 지칭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임을 안다.
몽콕에 도착하여 며칠간은 빈 창고 같은 곳에서 지내면서 연명을 하였지만 그 상태로 오랜 기간을 버티는 것은 불가능 해 보였다.
전세게 네트워크는 항상 귀족국가로부터 감시가 되고 있어서 접속이 불가능 하다.
그러나 항상 필요에 의해 무엇인가가 생기는 법.
낙후 지역에는 나름의 지역 네트워크가 있다.
이른 바 제도권으로부터 ‘해적망’ 이라 불리는 네트워크를 통해 법적으로 금지 된 행위들이 벌어지곤 한다. 이를테면 밀거래, 밀입국, 마약, 살인청부, 매춘 같은 것 이다.
23세기 들어 나와 같은 합법적 성행위 개체가 있어서 굳이 매춘이 필요 없게 되었다곤 하지만 그건 귀족국가에 한 해서 였다.
제 3세계 에서는 오히려, 대부분의 국가가 출산통제와 결혼제도를 불법으로 규정 하다 보니 엉뚱하게도 불법 리스 된 에바 들을 매매춘에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물론 국가에서는 인간에 대한 매매춘이 아니므로 어느 정도 관대하게 지나가는 경우도 많았고.
나는 해적망에 접속하여 매춘을 하려고도 생각 했다.
아무런 아이디도 법적 지위도 없는 새비지와 내가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 이었다.
나는 태양광만으로도 생존이 가능하다.
하지만 새비지는 인간 이다.
그는 먹어야 하고 살 곳 도 필요하다.
그에겐 이른바 생활능력이 없다.
내 능력을 이용하여 새비지가 생존 하도록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 본래의 만들어진 목적대로 하는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