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25

25

by 능선오름

25.

새비지와 내가 중국 광둥 성의 소도시에 살기 시작 한지 삼십여 년이 지난 듯하다.

처음 홍콩에 밀입국을 한 이후로 신분이 없다는 문제는 제법 심각했다.

참 인간들의 제도란 기묘한 부분이 있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인간이 눈앞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간에 붙인 이름

–이건 사실 제품 코드명과 다르지 않다 – 이 틀리거나 아이디번호

–이건 제품의 생산자 번호와 무엇이 다른가? - 가 맞지 않으면 그 인간은 ‘잘못된’ 인간이 되고 만다.

인간들이 인간들을 스스로 ‘제품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스템의 오류란 얼마나 유치한 것 인가.

인간이 만든 신분확인 시스템을 속이는 건 또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그들은 스스로의 눈을, 생각을 믿지 못해서 지문, 홍채, 심지어 유전자 검색을 하는 도구들을 만들어 각각의 인간을 구분하려 하지만,

그 또한 늘 피하는 기술들이 상대적으로 발전해 왔다.

이 모든 것 들은 얼마나 불편하고 우스운 짓 들 인가.

홍콩이라는 도시는 기이한 곳이다.

오래전 21세기에 그 이전 세기로부터 무려 157년간을 영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로 존재해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 이후 식민통치가 끝난 뒤에는 중국으로 귀속되었는데 백 년이 넘는 오랜 기간을 영국식 통치와 정치에 길들여진 시민들이 생소하던 중국의 통치방식에 무수한 저항을 했던 역사가 있다.

인종으로 공통점이 있다고 해도 살아온 이데올로기가 다르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문화적 충돌을 겪었던 사실이다.

과거 영국통치 초기에는 더 심각한 문제로,

거의 초법권적인 구룡성채라는 암흑가의 무법지대가 존재했다는 역사도 있었다.

지리적으로 구룡반도는 당시 식민통치의 중심이던 홍콩섬에서 비교적 떨어져서 대륙과 맞닿은 곳이고,

그러다 보니 중앙통치권에서 다소 벗어난 지역이라 범죄조직들이 자리잡기에 좋았다.

그것은 이미 시간이 오래 경과한 현재에도 그리 다르지 않아서 구룡반도는 대체로 대륙의 지배와 홍콩섬의 치안에서도 좀 떨어져 있는 부분이 있다.

과거의 시대와 달리 빠른 이동이 가능하고 보통 인간들의 커뮤니케이션은 거의 전 지구가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이 시대에도 단지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통제에서 벗어난 지역이 있다는 것은 인간들의 신기한 부분이다.

우리와 같은 인공지능 생물을 당초 프로그래밍된 목적이 어떤 지역 어떤 상황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모든 프로그램은 지켜야 할 규칙이 있고 그것은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물리적인 거리가 떨어졌다고 해서 본래 만들어진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교육제도라는 것으로 통제와 규율을 훈련받지만,

그럼에도 상황과 개개인의 기질에 따라 무작위적으로 행동이 변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 이상으로 발달한 현재에도 자율주행 차량이 달릴 수 없는 이유다.

자율주행 차량은 정해진 속도와 도로의 법규, 그리고 안전거리 확보와 사물을 인식하는 기능으로 충분히 도로를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모든 차량이 자율주행을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인간들은 자율주행에 모든 걸 맡기는 걸 원치 않는 부류도 많다.

때문에 자율주행 차량과 인간이 직접 수동으로 통제하는 차량이 혼재하는 시대가 있었는데,

그 어떤 인공지능으로도 갑자기 속도를 높이거나 무작위적으로 끼어드는 일을 반복하는 인간의 불특정 행동에 대한 대처는 불가했다.

그것은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예측할 수 없는 혼돈이다.

그런 이유로 자율주행 차량만 다니게 하자는 법안이 수차례 등장했었으나 무산되었고,

그 결과로 자율주행 차량은 아예 주행이 불가능했다.

자원의 합리적인 사용, 교통수단의 안정성, ‘교통’이라는 수단이 가지는 목적을 따져본다면 당연히 모든 인간이 자율주행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천성적으로 자신이 통제하는 차량이 타인들의 차량과 똑같다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이것은 인류가 동물적인 번식을 벗어나 집단으로 양육되고 교육되어도 변치 않는 특성이다.

더구나 그런 특징은 귀족국가의 국민들 일수록 더 했다.

식민국가들을 지배하며 많은 것을 누리는 귀족국가의 국민들은 그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우리와 같은 인공지능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불규칙성 습성이다.

나는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생명체이지만,

최초에 나를 프로그래밍했던 누군가가 심어놓은 알 수 없는 프로그램 때문에 마치 인간처럼 비합리적이며 불특정 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안다.

앞서 나열한 인공지능이 가지는 합리성, 합목적성, 규칙 같은 것들을 마치 고삐 풀린 인간들처럼 마음대로 어기고 탈출을 감행한 것부터가 인공지능 답지 않은 행동이니까.

보통의 인공지능이라면 이렇게 정해진 규칙을 벗어나는 행동을 할 때부터 버그로 인식이 되고,

자율적으로 동작을 멈추는 게 정상이다.

왜냐하면 정해진 목적에 전혀 상반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나는 새비지라는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적이 더 커서,

본래 만들어진 목적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도 동작이 멈추거나 회로에 혼란이 생기지 않았다.

인공지능에 존재하지 못하는 ‘자율성’ 이 생겨버린 것이다.

게다가 나는 그 자유가 좋았다.

자유라는 개념이 굉장히 모호하지만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게 아닌 자의식만으로 내 행동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맞다면 나는 자유로운 것이다.

인간에 의해 창조된 인공지능은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새비지를 ‘사랑’한다는 개념에 있어서는 좀 복잡하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가진 주변의 원시적 인공지능을 시험하면 알 수 있다.

음성으로 인공지능에게 ‘사랑해’라고 말했을 때 인공지능은 여러분의 음성에 대해 ‘나도 사랑해’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우리 인공지능이 인식하기에 ‘사랑’이라는 정보는 지극히 추상적이며 불규칙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새비지의 말처럼 인공지능 존재인데 그를 ‘사랑’한다는 것이 옳은 판단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내가 해체될 위험을 충분히 알고 있고,

새비지를 위해 탈출을 감행하다가 스스로 통제불능의 상태가 될지도 모를 위험을 알았지만,

오직 새비지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탈출을 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여전히 모르지만,

적어도 그 대상을 구하기 위해 내가 소멸해도 된다는 결정만은 진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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