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인간들의 방향성이 동종의 모든 인간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나와 새비지에게는 도움이 된다.
만약 인간들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귀족국가에 버금가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하였다면 우리 둘처럼 사회의 틀에서 벗어난 자들이 발붙일 곳은 없었을테니까.
아마도 보존된 원시림 속에서 석기시대 인류처럼 살지 않는한 모든 곳에서 우리의 존재는 드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전 세계적으로 공공연한 불평등을 실천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그들의 권력이 덜 미치는 곳을 찾을수 있었다.
몽콕.
과거 홍콩의 재래시장이 밀집했던 지역은 세기가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형적인 여건이 홍콩과 중국을 연결하는 구룡반도에 자리한 이유도 있겠지만 귀족국가와 식민국가가 지역별로 뒤섞일 수밖에 없는 중국의 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국가별 인구수가 가장 많은 중국은 중국 전체가 귀족국가화 되기 어렵다.
그 때문에 소수의 귀족이 다스리는 도시국가 외 다른 지역들은 아직 식민국가 형태이다.
그런 이유로 굳이 해외에 별개의 식민국가를 거느리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구분이 확연히 드러나는 특이한 형태.
홍콩의 아일랜드 지역은 귀족도시국가 형태인데 반해,
구룡반도의 지역들은 21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몽콕 지역에는 국적불명, 소속 불명의 인간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고,
중앙정부에서도 그게 차라리 제한된 영역에 불순분자들을 가두는 효과가 있으므로 방치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점이 바로 내가 머나먼 홍콩까지 새비지를 데리고 도망친 이유다.
나는 약간의 비용을 통하여 새비지와 나의 신분을 세탁 했다.
물론 몽콕 지역의 해적 망을 통해서 가능 했던 일이다.
그곳을 통해서 우리는 신분을 제3세계의 국적으로 바꾸었고,
중국의 산업단지가 밀집한 광둥 성에 이주노동자 로 변신하여 살아 갈 수 있었다.
인간이 아닌 신인류가 인간으로 등록되기에는 어려운 일이지만,
세기가 바뀌어도 돈은 모든 것을 바꿀수 있다.
인간이 발명한 실체가 증명되지 않은 종교 중 하나가 바로 ‘돈’이다.
돈이라는 건 실체가 없다.
더구나 세기가 바뀌어가면서 모든 화폐는 전자화 되어 있어서 더욱 그렇다.
인간들 간의 거래, 국가간의 거래에도 통용되는 전자화폐는 그 근간을 차지하는 전기가 없어지면 소멸된다.
단지 데이터베이스 상 숫자만 남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생존하려면 그 수치상의 돈이 필요했다.
나는 나와 새비지의 신분을 세탁하기 위하여 몽콕에서 드러나지 암시장을 통한 ‘거래’를 했다.
나의 시각기관과 청각기관 일부를 매매한 것이다.
인류가 신인류를 개발하였다해도, 생산을 하려면 많은 돈이 든다.
시대가 바뀌고 첨단 기술이 넘쳐도 항상 보다 저렴한 ‘짝퉁’을 원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짝퉁에도 대체 불가한 부속기관들은 필요하다.
내게도 필요하지만 일부 없어져도 인간처럼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부분들은 헐값에 거래가 가능했다.
새비지는 물론 반대했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기에 도리없었다.
거래에서 얻은 돈으로 신분을 만들고,
그 신분을 이용하여 식민국가 하층계급이 할 수 있는 단순 노동들을 하는 것.
그게 내가 택한 생존의 방식이다.
나는 우리 둘의 도피를 위해 매춘을 하지 않았다.
넷 접속을 끊기 전 갈무리 한 ‘남자인간’에 대한 정보에는 여러 남성을 거친 여성을 남성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기록들이 있었다. 아니, 실은 아주 많았다.
한국의 오랜 역사를 되짚어 보아도, 국력이 모자라서 중국에 여성들을 조공으로 바쳤었거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 성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 들이 모국에 돌아 왔을 때, 결코 환영 받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 오히려 동족에게 배척을 당했다는 기록 들.
멀리는 인도나 아랍권 에서도 강간당한 여성이 지조를 지키지 못했다고 가족 살해를 당하던 역사. 그것이 23세기의 남성 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으리라 판단 한다.
특히, 섹스라는 게 그저 상품으로 인식되던 귀족국가가 아닌 제3세계 출신의 사고방식으로는.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내가 가장 힘들이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매매춘’을 선택 할 수 없었다.
나는 새비지를 ‘사랑’하고 있음이 분명 하고, 새비지가 싫어 할 만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사실 이부분에 대해서 나와 새비지는 오랜시간 토론을 했다.
나의 본래 만들어진 목적이 섹스인데, 그게 가장 효율 높고 돈을 벌기에 쉬운 방법인데 왜 안된다는건가요?
나의 논리회로는 많은 인간이 선호하는 매춘을 반대하는 새비지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에바.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소? 나도 당신을 사랑하오.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하는걸 아무렇지 않아하는 인간이 있을 것 같소?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내게 섹스라는 행위는 그저 내 기관의 일부를 이용하여 그걸 필요로하는 인간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다는 매우 쉬운 행동입니다. 그토록 간단하고 쉬운 논리가 왜 이상하다는건가요?
에바. 이해는 어렵겠지만 인간의 심리는 그래요. 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벌이는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 못한다는거요.
그러면 당신은 다른 방법으로 생존에 필요한 돈을 마련할 방법이 있나요? 우리에게 다른 방법이 있다면 따르겠습니다.
내 건조한 답변에 새비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신인류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
머리를 흔들면 뭔가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말인가.
몰라. 모르지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오. 에바 당신은 우리가 생존하기 위한 방법을 택했는데 그 결과로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영향받지 않을거라고 장담하오? 나도 모르는 마음인데.
인간은 이런 면에서 우리 신인류보다 원시적이다.
인공지능이란 항상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다.
가장 에너지 소비가 작고, 가장 효율이 좋은 행동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효율이 나쁘거나 또는 전혀 가능성이 낮은 일에도 인간은 선택을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 면을 인간들은 ‘인간성’ 내지는 ‘윤리’ ‘정의’ 라는 인공지능은 규정하기 어려운 용어들로 내세운다.
인공지능의 관점에서 그런 단어들은 종교 만큼이나 실체가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인간 한 명을 희생시키면 다수의 인간이 생존할 수 있고,
그 인간을 살려두면 다수의 인간이 죽는 상황이 있다고 치자.
우리 인공지능에겐 너무나 단순한 문제다.
다수를 살리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다.
인간들은 이런 성향을 공리주의라고 부른다지만 인공지능에겐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판단된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를테면 자발적으로 눈보라가 치는 산꼭대기를 굳이 실낱같은 가능성에 맡기고 올라가던 인간이 고립되고,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 인간 하나를 살리기 위해 온갖 장비와 수많은 인원들을 동원한다.
그 과정에서 구조는 고사하고 구조대로 올라갔던 사람들이 몰살을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랬을 때 인간들은 그런 어딘가 불합리적인 행동을 ‘숭고한 희생’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은 내 기관의 일부들을 암시장에 거래하는 겁니다.
난 그러고 싶지 않소. 첫 번째 방법 이상으로 나쁜 방법이오.
그렇다면 새비지 당신에겐 무슨 다른 방법이 있나요?
차라리 내 장기를 팔고 싶소.
그러나 당신과 같은 인간의 장기를 만드는 비용보다 우리 신인류의 부속을 만드는게 더 비용이 높다는건 알고 있지 않나요? 인간의 장기는 더 이상 암거래 대상이 아닙니다.
나의 말에 새비지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화가 난 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의 감정을 앞세운 판단은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