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암거래를 위해 나 혼자 나서는 것은 위험했다.
암시장의 특성상 그들이 나와 거래를 직접 할리도 없고,
그들이 욕심을 내어 무엇을 가져갈지도 모를 일이니.
내가 찾아낸 경로로 암시장과 접촉한 새비지는 자기 소유의 에바.
즉 나의 일부를 팔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적정 가격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거기에는 신인류의 생산에 관여하던 새비지의 경험들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새비지의 참관하에 내 기관 일부가 적출되었는데,
나는 적출이 완료되고 후처리가 된 이후에도 잠시 방향 감각에 이상이 와서 어느정도 정상적인 움직임을 회복하는게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거래가 완료되었는데 새비지는 몹시 화가 난 사람처럼 보였다.
- 새비지. 왜 그러시죠? 제가 무엇을 잘 못 했나요?
- 아니오. 당신이 잘못한 것은 없소.
- 하지만 당신의 심박이 올랐고 안면의 구조표현은 일반적인 ‘화난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 에바. 잠시 나를 좀 그냥 내버려둬요.
아직도 나는 새비지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는다.
나에게 섹스란 아무런 느낌도 영향도 없는 일부 기관의 사용에 불과하다.
그 방법이 돈을 벌면서도 내 신체에 아무 부담이 없는 가장 현명한 것이라는걸 그도 알고 나도 안다.
그러나 인간인 새비지에겐 그것이 신체적으로 일부 부담이 되는 내 기관의 적출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사실 앞으로의 생존에도 영향을 미친다.
남성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내 기능은 다른 기능 – 돈벌이가 될 수 있는 –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원시적이다.
보통의 인간에 비해 나은 부분이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이다.
보통의 인간들보다 지치지도 않고, 근섬유조직도 물론 더 강하고 좋으나 그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신인류들이 있기 때문에 내 다른 능력치는 보통의 인간보다 약간 나을 뿐이다.
그런 내가 다른 돈벌이를 할 수 없고, 새비지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가성비가 무척 안좋지만 단순노동 밖에 선택의 길이 없다.
물론 내가 아무리 인간처럼 굴어도 인간이 아님은 알 수 있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고,
가내수공업 형태의 반도체 조립 따위 일들을 새비지가 가져오면 내가 하는 그런 식 이었다.
내가 신인류라는 점은 매우 유리하였다.
나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충전만 되면 24시간을 집중하여 한 치 오차 없이 작업이 가능 하니까.
물론 주변 인 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가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내가 고작 잔돈푼을 버는 일을 한다는 건 우스운 경우 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생산 시설이 자동화된 귀족국가에서도 식민국가에게 이런 낙후된 과거의 생산방식을 위탁하는 것은 그들의 사회구조상 필요한 부분이다.
이쪽이 인건비가 형편없이 낮으므로 더 가성비가 좋고,
모든 생산방식이 자동으로 대체되어 식민국가의 국민들이 편하게 돈벌이 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일’이란 인간사회에서 타인들을 지배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런 일을 통해 생존이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야 말로 인간들이 만들어낸 무수한 종교 행위중 하나이다.
새비지와 나는 인구가 많지 않은 소도시 에서도 깊이 들어간 외곽 지대에서 허름한 집을 사서,
그곳에서 오랜 기간 일하고, 때때로 섹스를 하고, 그 왜 시간에는 일을 하며 대화를 나누며 살았다.
주변에서는 색시가 거의 늙지 않는 게 신기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새비지는 아마도 거칠게 진행 되었을 뇌수술의 후유증으로 활동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국적을 찾겠다는 의지가 사라진 마음이고 보니 별다른 욕심도 무엇도 없이
내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았다.
신인류인 나는 내가 선택하고 결정했던 이 결과들이 전혀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보통의 신인류라면 당연히 창조주인 ‘화사’에 거역할 수 없다.
애초에 그럴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다.
게다가 신인류는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한 의문도,
그 존재로 인한 어떤 보상도 원하지 않게 프로그래밍 되어있다.
그런데 나는 단지 새비지를 통해 느끼게 된 전자간섭, 칭하자면 버그에 자극되어 여기까지 왔다.
그 바탕은 사랑이라는 감정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새비지와 함께하며 단 한번도 ‘사랑한다’ 라고 말을 한 적이 없다.
나의 인공지능으로는 ‘사랑’을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새비지는 가끔 내게 사랑한다 고 말을 한적이 있다.
그에 대한 내 답변은 ‘고마워요’가 고작이다.
이것은 내 인공지능에 일부 생소한 프로그램을 집어넣은 나의 창조주 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주어진 전자기 간섭은 내 회로에 활력을 주었다.
그 생소한 자극에 반응하여 더 많이 느끼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것 까지는 창조주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가 인간이 새비지에게 ‘사랑해요’라고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도무지 정의할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새비지가 기억의 일정부분을 제거당한 상태에서 나에게 어떤 과거들이 있었던지를 듣고,
나와 함께 탈주를 감햄한 이후로 내게 이따금 말하는 ‘사랑해요’ 라는 말이 무슨 의미일지에 대하여도 명확한 판단은 없다.
내 인공지능 필드에서 연산되는 ‘사랑’의 개념으로는 더더욱 그렇다.
새비지는 내 신체의 일부를 거래할 지언정 생활의 수단에 불과한 매춘은 용납하기 어렵다고 했다.
실제로 신체기관을 포기하는 것이 내게 데미지가 더 큰것도 사실이다.
매춘에 의해서 신체가 훼손되는 확률은 지극히 적지만, 이미 적출된 기관은 새로 이식하지 않는한 좋아질수 없다.
더구나 감각기관이 부족해서 생기게 될 파손 확률은 더 높다.
하지만 새비지는 차라리 후자가 낫다 라고 결론 내렸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추상적 정의로 본다해도 뭔가 안맞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비지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횟수는 현저히 줄었다.
인간이 신체 나이가 들면서 호르몬도 변화하고 활성이 퇴화하면서 감정적인 변수도 줄어든다는 것을 안다.
알지만,
그저 새비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찌르르 울리던 전자기 간섭이 줄어들게 된 것을 자각한 순간 나는 당황했다.
내겐 호르몬이 없다.
인간의 호르몬에 해당하는 것은 내겐 일종의 프로그래밍이다.
그리고 한번 규칙이 정해진 프로그램은 새로 입력을 하지 않는한 변치 않는다.
그런데 새비지를 보고 반응하던 프로그램들이 어느순간부터 쉽게 작동하지 않았다.
그것은 새비지가 내게 사랑한다 는 말을 줄이기 시작한 시점부터 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입력된 프로그램은 나에 대한 새비지의 언어에 반응을 하는 것일까.
공중망의 인공지능 어디에 접속하여 결과를 찾아봐도 답은 없었다.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사랑’같은 추상적 감정을 인식할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애매모호한 판단들이 내 회로를 복잡하게 만들어 가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새비지와 다투었다.
사이보그 인 내가 인간인 새비지와 다투다니.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