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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이 밀려오고 그믐달이 떠 오른 이후로도 사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히 물이 차 오른 이후로 배를 오를 방법은 없으니 당연 한 것 이지만 여인은 행여나 하는 마음에 갈라진 선체 틈으로 어둠에 쌓인 방파제를 하염없이 바라 보다 잠이 들었다.
여인은 물속에 있었다.
아무 호흡이 되지 않을 텐데도 특별히 괴롭진 않았다.
물속에 누워 있는 상태로 수면을 바라보니 폐선의 밑바닥이 보였다.
어쩐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여인은 자신이 폐선의 바닥을 바라보는 더 깊은 물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상했다.
그녀가 머무는 폐선은 밀물이 들어온다고 둥실 떠오를 정도로 안전하진 않았었다.
배의 흘수선 정도에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어서,
썰물때는 몰라도 밀물이 들어오면 배의 밑바닥은 바닷물이 밀려들어와서 내려갈수 없었다.
배의 상갑판 아래 그녀의 보금자리 아래 밑창은 바닷물이 밀물이면 바닷물이 차오르고,
썰물이면 빠져나가는 일종의 자연 친화적인 화장실이었다.
그 덕분에 배 밑창에 볼일을 봐도 오물이 쌓이지는 않았으니 나름 수세식 변기라고 할수 있었다.
그런데 배가 물위에 떠있고, 자신은 바닷속에서 그 배의 밑바닥을 올려본다니.
이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여인은 희미하게 깨달았다.
어차피....그래 어차피라고 했다.
소스라쳐 잠을 깬 여인은 어둠속에 누군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알아채곤 뒷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그게 함께 지내온 그 남정네 라는 것을 곧 깨닫자 일말의 안도감이 밀려왔다.
여인은 부스스한 머리를 들어 어둠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기울어진 중갑판 때문에 삐딱한 자세일수 밖에는 없지만.
“ 깨었소? “
남자의 목소리가 반가왔다.
바나군 속마음 과는 다르게 여인의 목소리는 불퉁맞게 반응했다.
” 왜 돌아온거여?
이 쓰레기 같은 배에 뭔 미련이 있다고. “
속마음과 다르게 내뱉어진 말에 그녀 스스로도 당황스럽긴 하지만,
이미 뱉어진 말을 주워담을수는 없었다.
다행히 사내는 그녀의 말에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 이 배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아냈소. “
사내가 말하는 알아냈다는 게 뭔 일일지 짐작한다.
아마 사내가 사라진 날 오전 방파제에 와 있던 남정네 무리들 얘기겠지.
그들은 동네 청년회라고 했다.
새로 구성된 청년회에서 죽어가는 어촌을 살리자는 취지로 환경 미화사업을 하기로 했단다.
그 중 방치된 이 포구를 제일 먼저 깨끗하게 정비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자니 포구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폐선을 치우는 게 가장 큰 문제 였는데,
사업비가 많지 않아 어떻게 처리 할지를 갑론을박 했다는 것 이다.
그래서 날을 잡아 풍어제도 지낼 겸 폐선을 불사르기로 결정 했다고 들었다는 것.
며칠 후에 폐선 앞에 제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고는 전체 다 불을 질러 없애기로 했다는 것 이다.
여인은 물끄러미 사내를 건네 바라보았다.
“그래서?”
사내는 말을 잘못 들었나 하는 얼굴로 여인을 들여다보다가, 그건 아님을 알았다.
“ 아니, 불 질러서 배를 태운단 말요. 그러니까 거처를 옮겨야 할 거 아니요? 그대로 있을 수 없잖아요.”
여인은 세차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 난. 안가. 아무데도.”
사내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여인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 무슨 소리에요. 그럼 배안에서 불에 타 죽겠다고요? 어디든, 다른 데로 가면 되잖우.”
“ 어디로?”
사내는 말문이 막혔다.
자기 자신, 그야말로 세상 끝 이라는 심경으로 온 곳이 여기였다.
어느 곳 이라서 그네들에게 둥지가 될 것 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어디 도시 역전이라도 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어쩔 건데요?”
여인은 말없이 주머니에서 담배꽁초를 꺼내 때에 전 손가락으로 눌러 폈다.
불을 붙여 한참동안 연기를 피우던 여인이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 난, 안가. 못가. 더 갈 곳이 없기도 하지만 이제 싫어.
그렇게 불에 타 죽는 것도 나쁘지 않지. 당신이나 가.
난 그냥 그게 언제가 되던 술이나 먹고 잘 거야. 그러다 불이 나면 타 죽는 거지 뭐.”
남 말하듯 하는 여인을 보면서 사내는 기가 막혔지만, 달리 대안을 내놓을 것도 없긴 했다.
여인이 두 번째 꽁초에 연이어 불을 붙여 한참을 태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 모습을 봐. 어쨌거나 씻고 옷도 갈아입으니 멀쩡하잖아.
어렵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어.
뭐 신용불량에 빚에 쫓긴다니 멀쩡히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사지 멀쩡하고 남자니까 이리저리 구르다보면 괜찬을거라고. 난 달라.
이 생활이 몇 년 째 인지 기억도 못해. 엊그젠 별 아픔 없이 이도 빠지더라고.
것도 두 개나 말이야. 난 완전 폐물 이야.
갈 곳도 없지만 어딜 가도 쓰레기 취급 받을 거라고.”
사내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문득 냄새나는 바닷물이 코와 입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저녁을 생각했다.
너무 고통스러웠었고, 너무 무서웠다.
기억이 거기서 그대로 끊긴 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었다.
그러면 불에 타서 죽는다는 느낌은 과연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