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복약 중입니다 2

불면증, 우울증 ing

by 능선오름

아직, 복약 중입니다. 2

불면증, 우울증 ing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나름대로 겪었다는 산전수전이란, 내겐 그토록 가혹했지만, 세상에 나보다 더한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은 사람이 없었을까.

그렇다고 해서 모두 나처럼 약에 찌든 것은 아닐 터.

그것은 사람마다 다른 기질적 문제일 것이며 그 배경으로는 성장기의 경험과 성격, 유전적인 기질상의 문제가 아닐까.

의사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생각이다.

인간은 80억 인구가 저마다 모두 다른 성격을 가진 개체이기 때문이다.

일란성쌍둥이라고 해도, 이미 유전적으로 거의 유사한 형질과 후천적인 성장환경이 다르다고 해도, 인격적인 부분은 모두 다르다.

때문에 어떤 바닥을 치던 정신적 침체기의 해저 깊은 곳에서 나는 지난날의 ‘나’를 온전히 관조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또한 지나고 보니 ‘나’라는 자아가 온전히 객관적인 제삼자의 시선으로 나를 살피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지만.


순진하다 못해 멍청하기까지 한 성장기의 나날들.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그 나이가 되도록 나는 밖에서 아이들과 구슬치기, 딱지치기 한 번 해본 일이 없어서 지금도 딱지를 접지 못한다.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나, 아이들과 어울려 놀 시간에 나는 늘 책 속에서 재미를 찾았었다.

집이 부유하여 책이 많았던 것은 아니고, 터울이 세 살, 여섯 살인 누나들이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들을 뜻도 잘 모르고 읽었다.

게다가 오래전이라 어린이 책을 제외한 모든 책이 세로 쓰기로 되어 있었던 시절이다.

그렇게 ‘데미안’을 읽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고 기타 등등 수많은 책을 읽었었다.

그 영향으로 나는 늘 몽상에 젖어서 하교 후에 읽었던 책들의 내용을 수업시간에 떠올려 복기하며 지냈다.

그것은 마치, 소설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한니발 렉터 박사의 ‘기억의 궁전’과 같아서,

듣기 따분한 수업 중에도 머리 한구석에 저장된 글들을 하나하나 복기하면 나는 딱딱한 나무 걸상에 앉아 까까머리 칠십 명의 수런거리는 교실을 떠나 자유로이 떠돌았다,

그곳은 때로는 대서양 깊이 잠수한 노틸러스호의 함교이기도 했고, 때로는 석양이 지는 미국 남부의 목화밭이기도 하였으며,

수업 중에 상상 속에 빠져 온종일 지낸다는 것은 학생의 처지에서는 심각한 문제였으나, 다행히도 당시에는 지금처럼 심각하게 과외를 하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그럭저럭 상위 성적을 거둘 순 있었으니 선생님들은 아마도 몽상의 세계를 부유하고 있는 내 멍한 시선을 수업에 열중하는 것으로 오해하였을 것이었다.

그렇게 나이에 맞지 않는 어른들의 책을 일찌감치 읽어버린 후유증은 상당했다.

겪어보지도 않은 세계를 마치 다 체험한 듯 착각하고, 작가의 시선과 픽션적인 생각들을 온전히 ‘어른의 시선’으로 곡해하며 성장한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의 시간은 제법 걸렸는데, 그건 짐작건대 선천적이며 후천적인 기질 중의 하나인 맹목적인 어떤 한 부분에 대한 터무니없는 ‘신념’ 탓이었을 것이다.

당시 짝꿍이었던 녀석은 당시 나이의 내 시선에는 몹시 음흉하고 난잡한 녀석으로 여겨지던 아이였다.

늘 수업시간에 말을 걸고 ㅡ 난 이미 몽상의 바다를 누비고 있는데 ㅡ 그도 아니면 변소 벽에나 그려져 있을 법한 조악한 낙서를 그려 다른 줄의 아이들에게 돌리거나, 어떤 경우에는 정체불명의 외국인들이 헐벗은 잡지를 가져와서 쉬는 시간이면 반 아이 둘에게 탄성을 지르게 했기에, 솔직히 관심이 없었다.

그 녀석이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싫다는 내게 보여준 외국인들이 나오는 잡지는 충격적이었다.

남녀가 적나라하게 뒤섞인 장면들.

솔직히 나는 그게 뭘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당시에 녀석과 나의 대화를 복기해 보면 이렇다.

ㅡ 이게 뭐냐?

ㅡ 야, 남자 여자 어른이 되면 다 이렇게 하는 거야. 이렇게 해서 애 낳는 거. 설마 너 몰랐냐?

ㅡ 아닌데? 내가 읽은 책 중에 의학 관련 책도 있었어. 거기서는 남자의 정자가 헤엄쳐서 여자의 난자로 간다고….

ㅡ 아 답답한 새끼. 그게 이거라니까? 니네 아버지 엄마도 이렇게 해서 너 낳은 거야. 새꺄.

ㅡ 뭐?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읽은 책에선 아니라고!

쉬는 시간 내내 다투다 수업 시작 벨이 울리자 녀석은 뭔가 초월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ㅡ 그래. 니 말이 맞는 거로 하자. 졌다.


이런 식으로 나는 실제의 세상에는 무지하였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서야 현실을 어느 정도 바라보게 되긴 했지만, 촌구석에서 공부는 않고 거로의 관심사가 비슷하던 아이와 더불어 당시 화제였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대해 열렬한 토론을 밤새 벌이곤 했다.

이러니 내 성장기는 온통 비현실적이고 엉뚱한 상상 속의 세상에서 자란 셈이다.

그리고 여러 사정으로 간부로 가게 된 군대에서 이십 대를 몽땅 보냈다.

매일 밤낮으로 대북 대남방송이 BGM처럼 깔린 척박한 최전방

어쩌면 일반적인 사회보다 훨씬 더 나라의 현실과 사실이 뒤범벅된 장소에서도, 나는 또 다른 몽상가였다.

모든 게 전쟁이라는 지극히 거칠고 험한 상황에 초점이 맞춰진 세상은 내겐 또 다른 몽상의 세계였다.

병사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키고, 그들과 함께 때가 되면 치열한 전투를 하다 장렬하게 전사하는 그런.

이를테면 또라이에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이십 대를 또 다른 세상에서 보내고 세상에 나오니 철없던 나는 그런 상태 그대로인데, 타인들의 눈에는 군 간부를 오래 했으니 리더십도 있고 안되면 되게 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으로 자타에 각인되었다.

나 자신마저 그런 사람인 줄 착각했다.

하지만. 그건 다 껍데기였다.

정작 속의 알맹이는 십 대 때 몽상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반적인 형태의 직장인과는 다른, 주로 밤을 새워 일해야 하는 특성도 있었고, 당시에는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은 실제 근로자와는 거리가 아주 먼, 그저 관리부 문서함에 쌓여 먼지가 뽀얗게 코팅되는 그런 것이었으니까.

일 년에, 과장 없이 350일 정도를 일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중 4/5는 야간근무. 그러고도 다음날 점심에는 출근. 명절 연휴를 제대로 지킨 적이 없고 매년 제야의 종과 새해 아침은 현장에서 바라본 게 10년이다.

그 때문에 늘 피곤함에 절어서 공원 벤치에 앉아서도 바로 짐이 들고, 머리에 베개가 닿으면 즉시 코를 곯았다.

밤을 새우고 운전하며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다가, 러시아워에 막힌 올림픽대로 한복판에서 운전대를 잡고 잠시 잠이 들어버릴 정도로 피곤함에 찌들었고, 어디서나 졸았다. 한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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