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현재도 물고기 어항이 있긴 하지만, 그 당시에 비하여 아주 작은 규모로 축소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당시처럼 열정적으로 물고기 기르기를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들은 온갖 잡다구리한 세상의 일에 관심도 있고, 그 혜택으로 잡학다식 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는 것이며, 반대로 나쁜 점은 잡학에 대한 깊이가 옅고 아는 ‘한도’ 안에서 다식이란 결국 어느 하나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시절 키운 물고기들을 기억해 보면, 구피로 시작해서 네온테트라, 베타, 안시, 민물복어, CSR이라 불리는 각종 새우들, 도둑게, 푸른 가재, 금붕어, 난주라고 불리는 화려한 금붕어, 달팽이, 에인절피시, 심지어 냉각기가 꼭 필요한 1 급수 민물고기 인 금강모치까지.
집안에 수족관이 12개가 되어서 주말은 어항 물갈이를 하느라 종일 노역? 에 시달렸다.
처음 시작은 우울증으로 병가를 낸 아내를 위해서였지만 이내 내 성격 특유의 문제점.
뭐든 시작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미친 듯 몰두하고 온갖 시험적인 것들을 다 시도하는 괴악스러운 습관 때문이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려고 하면서 하나하나 주변에 어항을 넘기면서 이제는 2자 어항 한 개가 거실에 있고 사무실에는 6자 어항이 하나 남았다.
그런데 많은 물고기들을 키우며 공통점을 알게 되었다.
어종과 어항의 크기와 먹이종류와 수온과 수질을 막론하고, 늘 무리 중에 왕따가 생긴다는 것이다.
구피는 관찰하기 힘들다. 순식간에 폭번( 물고기 키우는 덕후들을 ‘물생활’을 한다 지칭하는데 폭번도 물생활자들의 언어로 폭탄번식 혹은 폭발적인 번식의 준말)을 하기에, 생장이 빠르기에, 누가 누군지 잘 모른다는 이유다.
하지만 비교적 번식이 어렵고 오래 살며 마릿수가 적은 종류들은 무리 중에 반드시 왕따가 나타난다.
심지어 노란색의 애플스네일이라 불리는 달팽이조차도.
최초에 관상어 판매점에서 사 온 물고기들은 많은 무리 중에서 특별한 선별 없이 마리수로 사 오니 잘 모르다가, 어항과 수질에 적응을 하고 난 이후 며칠이 지나면 반드시 무리에서 외톨이로 사는 애들이 생겨난다.
물고기는 대개 무리를 이루는 경우가 많아서 헤엄치거나 머리 방향을 돌릴 때도 대체로 한 방향을 지향하는데 반해, 꼭 한 마리 정도가 다른 방향으로 헤엄치거나 수초 뒤에 숨어 있다.
심지어 애플스네일조차도 그렇다. 셋 중에 왕따가 생기는 걸 보았으니까.
새로 구입해서 넣어준 달팽이마저 그렇게 된다.
그런데, 아예 어항에서 어렵게 번식한 애들은 어떨까?
보통 이마트 같은 곳에 있는 열대어 코너를 가보면 유난히 꼬리지느러미가 부채처럼 크고 색상도 화려하고 강렬한 물고기가 있는데, 그들은 안타깝게도 보통 아이스커피를 담는 조그만 일회용 잔 속에 혼자 담겨있다.
심지어 크기가 꽉 차서 몸을 잘 돌리지도 못하는데 그 물고기를 베타라고 부른다.
동남아 지역의 논이나 흙탕물이 고인 웅덩이 같은 곳에 사는 종인데, 정말 색상이 화려하고 활짝 펼쳐진 꼬리지느러미는 물속의 공작새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얘들은 합사를 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마트에서도 작은 감옥 같은 일회용 투명컵 속에 넣어서 파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팔리는 베타는 모두 수컷이다.
암컷은 마트에서 절대 판매하지 않는데, 수컷에 비해 너무나 평범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베타의 번식과정은 복잡하니 생략하고, 그렇게 번식된 치어들은 어느 정도 자라기 전 까지는 합사를 해도 무리가 없지만 인간의 사춘기 시절 정도가 되면 그야말로 미친 듯 서로 싸운다. 베타라는 물고기를 鬪魚 라고 부르며 태국에서는 투견이나 투계처럼 내기까지 한다고 하니 그런 경향도 있거니와 치어 시절부터 왕따 당하는 애가 생기게 마련이다.
베타의 번식과 육아는 정말 치열하고 눈물겹다.
일단 수컷베타가 자꾸 물 위에 거품방울을 만든다. 입으로.
그게 많아지면 번식기가 된 거다.
물론 거품을 보글거리건 말건 놔두면 그냥 다 지나간다.
중2병도 사춘기도 시간이 해결해 주듯이.
나는 어렵게 암컷 베타를 구했지만, 매뉴얼에 따라 어항 가운데에 투명하고 물은 드나들 수 있는 장벽을 세웠다.
슷놈과 암놈은 마주 보자마자 미친 듯 중간에 세워진 아크릴을 쪼며 대치한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서로 공격을 하지 않고 수컷이 물 위에 띄우는 공기방울이 점점 많아지는데, 이때가 합사를 시킬 때다.
마치 사자나 호랑이의 합사와 흡사한 분위기.
중간의 철책선?을 제거하면 요지조리 눈치를 살피다가 갑자기 수놈이 암놈의 몸통을 감는다.
근데 긴 몸뚱이가 아니기에 휘감기보다는 그냥 U자로 구부려 암컷의 몸통을 압박하는 것인데, 그러면 암컷이 알을 줄줄 낳는 거다.
그 알은 바닥에 가라앉는다.
한참 알을 낳은 암컷은 죽은 듯이 옆으로 누운 상태로 둥둥 뜬다.
산고에 시달려 잠시 기절을 하는 것이다.
이때 재빨리 암컷을 다른 어항으로 옮겨야 한다.
자연에서는 떠오른 암컷은 물결에 휘말려 흘러가고, 수컷이 암컷을 공격할 틈이 없지만 어항에서 암컷 베타가 깨어나면 자신이 낳은 알을 모조리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리를 시키면 수컷은 떨어진 알에 수정을 하곤 알들을 입에 물어서 자신이 만들어낸 기포에 살며시 붙인다.
수정란은 물 위에 뜨지 않으면 숨을 못 쉬므로 썩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추 보아도 알이 수십 개는 넘는다.
수컷은 그때부터 밤낮없이, 먹이도 먹지 않고 계속 떨어지는 알을 주워다 거품에 붙이고, 거품이 꺼지면 다시 입으로 거품을 만들고 하며 며칠을 보낸다.
이때 수놈은 아름답던 꼬리지느러미가 완전히 너덜너덜해진다.
눈물겨운 부성애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거품에 붙어있던 알에서 빠끔 조그만 눈이 보이고 꼬리가 생겨난다.
그러면 아기베타들이 아주 작고 투명한 올챙이처럼 변해서 거품을 떠나 홀로 유영하는데 이때 물고기사육자들은 ‘날아다닌다’라고 표현한다.
유영이라기 보단 물속에서 약간 톡톡 튀듯 움직이는 게 그렇게 보이기는 한다.
그러면 이제 치어들은 따로 치어망으로 보내야 한다.
안 그러면 양육에 지친 수놈은 힘들여 부화시킨 치어들을 먹이로 인식해서 다 잡아먹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이라면 당연히 치어들이 부화하자마자 알아서 달아났을 터지만 어항에선 도리가 없다.
그렇게 어렵게 키워낸 보람 같은 건 없다. 오직 본능뿐.
물고기들을 기르며 생각이 들었다.
왜, 먹이가 부족하지도 않고 번식기가 아닐 때도, 아직 치어일 때도, 왜 저들은 꼭 왕따를 만드는 걸까?
다수의 동물을 키워보진 않았으나 어릴 적 키워본 병아리와 그 병아리가 자라서 닭무리를 이뤘을 때도 늘 그런 왕따가 있었고, 이따금 자주 보는 길냥이 무리들에서도 늘 왕따 냥이가 보였다.
결국 무리를 지은 동물들은 반드시 왕따가 생긴다는 섣부르지만 나름 통계적인? 결론이 생겼다.
그렇게 이해하면 인간의 무리에서 왕따문화가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건 ‘문화’ 라기보다는 ‘본능’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인간이 일반적 의미의 동물과는 확연히 다른 이유를 이성과 언어라라고 하는데,
(오죽하면 스스로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사피엔스라고 스스로 얼굴에 금칠을 했을까) 실상은 동물적 본능의 발로 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인간이 모여 살면서 문명을 이루고, 비로소 ‘사회’가 조성되었고 ‘규율’ ‘법’ ‘인간적 도덕성’ 같은 게 생겨났으며 종교로 인하여 본능에 반대되는 개념의 행동 강령? 같은 것이 생긴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아이들. 이를 테면 아직 사회화와 교육이 안된 어린아이들일수록 물고기들의 행태와 그리 다르지는 않다.
본능적이며 직관적으로 '왕따 감'을 찾아내고 왕따 시킨다.
물론 그 이후 각종 교육과 관습을 배우면서 왕따를 시키는 행동도 말도 분위기 조성도 옳지 않다고 인식하게 되면 좀 덜하다.
그러나.
이후 고학년 생활이나 대학교, 군대, 회사. 대학원연구실 등등.
인간이 모여있는 어느 집단이고 반드시 왕따가 나타나고, 아니 왕따를 창조하는 분위기가 생긴다.
오래전에 읽은 조직 내 무리의 성격분류에 대한 글이 있었다.
너무 오래되어 원문이 어디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어쩌면 수많은 가설 중 하나였을 뿐일지 모르지만 나름 대규모 집단, 소규모 집단을 관찰하고 경험도 해 본 결과 과거 기억 속 ‘통설’이 얼추 맞음에 공감했던 기억은 난다.
소규모 (3명 이상) 중규모 (60명 이내) 대규모 (100~300명 이내)로 집단의 규모를 설정하고, 그 집단내에서 이유와 원인과 전혀 무관하게 진취적이며 집단의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는 무리를 A라고 하고, 딱히 티 내는 것 없이 무리 전체의 ‘대세’에 편승하는 무리를 B라고 하자.
반면에 원인도 이유도 없이 무조건 모든 규칙, 어떤 규범이건 불만족하고 늘 무리에서 겉도는 무리를 C라고 한다.
그렇게 구분된 무리들을 모아서 A, B, C 각각의 특성을 가진 무리만을 골라 나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A라고 분류된 집단 안에서 다시 A, B, C 무리가 생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C라는 집단에서도 마찬가지 구분이 생기고.
이것은 일종의 표본조사 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뚜렷한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 조직에 참여한 사관학교 (물론 속내와 사정까지는 모른다 ) 생도들도 집단 속에서 반드시 A, B, C 무리가 생긴다.
그랬던 생도들이 임관하여 병과별로 다르게 최소 20~50명 집단을 지휘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는 본인이 어떤 성향이건 과 무관하게 당연히 A 그룹의 성향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개중에 고문관 중에 고문관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군 집단의 지휘자가 졸지에 왕따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는 통속적인 말은 진리에 근접한다.
과거 6.25 전쟁 때는 불과 20대 30대 사단장이 많았다.
군 1개 사단은 그것도 병과와 어떤 임무의 부대냐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1만에서 2만 명이다.
그 많은 인원이, 젊다 못해 어린 지휘관의 연필선이 어디를 긋는가 에 따라 전멸하거나 살아남는다.
그들도 하고 싶어서 그 계급의 무게를 짊어진 것이 아니라, 창군 초기에는 장성급이 원래 없었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것은 분대, 소대도 다르지 않아서 앞장서서 나를 따르라 외치던 지휘자들은 임관 불과 반나절도 되지 않아 죽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오죽했으면 적의 총알이 날아오는 경우 소리가 ‘쏘위 쏘위’ 하면서 날아온다는 우스개가 있었을까.
결코 잘난 사람, 용감한 병사가 진급하는 게 아니라, 윗계급이 다 전멸해서 등 떠밀려 지휘자가 되는 것이다.
거기서 몇 번이고 죽다 살아나는 경험을 치르면 더 위로, 위로, 나중에 장성까지 되던 게 현실이었다.
군의 경우와 크게 다르진 않다.
보통 학생들의 교실에서도 일진, 짱, 통, 이런 말로 통하던 지배자가 퇴학을 당하거나 전학을 하거나 하면 또 그걸 대체하는 인물이 반드시 창조된다.
늘 궁지에 내몰려 빵셔틀 역할을 하던 아이가 어느 시기에는 갑자기 더 약한 빵셔틀의 조종자로 변하기도 한다.
거꾸로 지배자 역할을 하던 아이가 빵셔틀로 전락? 하는 경우도 있다.
오해 마시기 바란다.
결코 폭력적인 학교나 집단이 가진 야만성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좋은 일’만 한다는 집단에서도 이런 분류와 무리는 반드시 생기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직장인들 사이에 ‘ 또라이 질량 불변의 법칙’ 이 있을까.
또라이 상사, 빌런 선임, 미친 후배, 이런 게 다 싫어서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했더니 이름과 성별과 주민번호만 다른 동일한 인물들이 존재하더라 하는 이야기다.
이것은 물고기 무리 중에 늘 뒤처지고 왕따가 되어 처음에는 같은 몸집으로 어항에 들어갔는데 6개월 후엔 현저하게 몸집 차이가 벌어지는 현상과 다르지 않다.
먹이를 충분히 급여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A집단의 몸집만 더 불릴 뿐이다.
한 번은 너무 안쓰러워 창조주 이자 인간인 내가 개입하여 작고 왕따 당하는 놈들만 골라서 별도의 어항을 만들어준 적이 있었다.
모두 일종의 피해자 물고기들이니 분리해서 급여를 충분히 주면 모두 몸집이 커지겠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웬걸.
결국 그 안에서 똑같은 현상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왕따는 애초 왕따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결국 하나의 특정 개체를 왕따로 진화시키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