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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Jul 17. 2024

두 바퀴 위의 단상

소돔은 어디인가

대전역을 거닐었다.

아이와 함께 어머니를 뵈고 돌아오는 길에, 기차 예매가 밀려 시간이 좀 남아서 평소 가보지 못한 으능정이 길을 함께 걸었다.

주말 오후.

태양은 늘 그렇듯 기상예보를 비웃듯 난폭한 햇볕이 작렬하고 습도는 자카르타를 웃돌듯 온몸이 밀가루 풀을 뒤집어쓴 듯 끈끈하다.

주말 차량통제로 걷는 거리라고 분명 표시가 되어 있는데, 북적이는 사람들이 볼링핀으로 보이는지 거칠게 오토바이 와 노인들이 밀어붙이는 자전거가 살벌하다.


여늬 중심가가 그렇듯 거리의 버스킹도 귀가 아프고, 맞대응하듯 한껏 볼륨을 높인 매장들의 스피커 소리가 클럽 수준을 넘은 지는 한창인데.     

이건 보통 동남아에서 겪어본 전무한 신호등, 어쩌면 그보다 좀 심하다.

앞에 누가 오고 있든 – 아이, 임산부, 노인, 환자 – 거침없는 직진.

한 수컷과 암컷이 한 쌍을 이루면 그들은 천하무적 불도저가 된다.

앞에 어떤 무리가 오건 이 더위에 꼭 낀 팔짱을 풀 생각 없이 오로지 직진이다.

그 얽히고설킨 군중 속에서 이런 식의 암수 한쌍을 이길자는 없어 보이는데,

그들을 능가하는 집단이 있으니 대낮 알코올에 살짝 절여진 아저씨, 아줌마 무리들이다.


그들에게 거리에서 조금만 바닥보다 높거나 그늘이 드리워진 곳은 바로 그들의 스테이지가 된다.

거침없이 눕고, 거침없이 판을 벌이고, 거침없이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군중은 말없이 피해 간다.

천하 무쌍인 자웅동체 개체들도 이 집단 앞에서는 방법이 없다. 돌아갈 밖에.

벌을 사냥하는 말벌들 조차 떼로 덤비는 꿀벌들에게는 결국 물러나는 그런 형국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제압하는 건 걷기도 힘겨워 보이는 노인들이 타는 녹슨 자전거다.

군중의 무리를 날렵하게.... 가 아닌, 게다가 울릴 경고벨 같은 건 아예 없다.

있다 해도 아마 울리지 않을 것이다.

날렵하게 가 아닌 비틀비틀 휘적휘적 군중 사이를 통과하는데 걷는 속도 보다도 느리다.

앞에 누군가 있으면 앞바퀴가 앞을 가로막은 상대의 종아리를 긁는다.

놀란 행인이 돌아봐도 할아버지의 시선은 아주 저 먼, 뭔가를 바라보고 있다.

앞사람이 투덜대며 비키면 계속 직진할 뿐이다.

그런 소위 ‘독고다이’ 자전거에는 그 누구도 당할 재주가 없다.

욕지거리를 하며 피해도 그런 할아버지들은 아무 반응이 없다.


마치 속세를 이미 벗어난 도인 같기도 하고, 그냥 치매환자 같기도 하다.     

동남아 이상의 끈끈한 더위와 군중과 사방에서 들려오는 온갖 장르의 음악과,

보행자의 거리 중간중간에 펼쳐진 역시나 장르 없는 버스킹에 지쳐 대전역 광장으로 돌아오는 길.

여기저기 할머니들이 길거리에 서서 작렬하는 태양아래 뭔가 전단지를 돌리기에 뭔가 싶어 받아보니 00 교회.

아마도 저 할머니들은 이 보행자거리를 소돔 정도로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 당신들은 타락할 대로 타락한 이 도시를 구원하려는 잔다르크 정도?로 생각하는 걸까.

아. 그건 아니겠네. 잔 다르크는 가톨릭이지.


역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큰 목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노숙자 남자 둘에 여자 하나가 커다란 비닐봉지를 모두 함께 움켜쥐고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얼핏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니 대사가 이렇다.     


- 뭐시여! 이 깡통들 내가 모은 거라고!

- 아니, 대체 버린 깡통에 무슨 주인이 있어! 먼저 가져가믄 임자아녀?

- 뭔 개소리야! 이건 내가 그동안 모아놓은 거라니까!

- 어허~ 자네가 좀 양보혀. 어차피 따로따로 모아놓은 건데 뭐 그렇게까지.     


듣자니 광장 분리수거 터에 모인 알루미늄 캔을 가져가 팔으려고 하는데, 세 명이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다투는 형세다.

알루미늄 빈캔의 무게는 대략 18g. 원래 13~17g으로 나오지만 폐깡통의 경우 안에 액체가 남아있을 수 있어서 대충 18g이다.

그리고 폐 알루미늄캔의 고철가격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2024년 6월 기준 kg당 1776.5 원. 비닐봉지에 들어있던 캔의 개수를 100개라고 하면 18 g×100개= 1.8kg × 1776.5 = 3197.7원 = 소주 한 병 1400원? (잘 모른다) 이면 두 병 정도 살 수 있는 금액일 것이다.

왜 하필 기준이 소주냐 하면, 어느 곳이듯 역전에 모인 노숙인들은 늘 술에 절어있는 게 다반사라 그렇게 계산했다.     

내가 계산을 머릿속에서 돌리는 사이에 노숙녀가 노숙남을 밀었는지 ' 아이고 나 죽네 ' 하며 노숙남이 아스팔트 위에 나뒹굴고 그 서슬에도 비닐 끄트머리를 잡고 있어서 봉투가 찢기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빈깡통들이 나뒹군다.

  

아이는 그런 어른들이 다투는 풍경을 처음 봐서 충격을 받았나 싶다.

대체 왜 쓰레기를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싸우지? 우리 집에서는 모아서 버리기 바쁜데? 했겠지.

아이가 아는 세상에서 그런 직접적인 폭력이란 반에서 말썽쟁이들이 일으키는 사소한 시비.

그게 아니면 영화에나 나오는 현실감 없이 너무나 거대한 전쟁. 이게 전부였으니.

아이는 일찍이 유튜브라는 천하에 고약한 ‘사이비 교리’에 의해서 노동을 해야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달았고, 모든 동물은 포식자와 피포식자로 나뉘어 있음을 알았고, 노소를 막론하고 결국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주 일찌감치 깨달아버려서 어느 날 아이가 출가를 하겠다고 한 대도 놀랄 일은 아닌데.

정작 아이가 노숙자들의 다툼에서 그 이상하고도 추악한 인간의 민낯을 봐버린 게 충격이었던 듯 며칠간 그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답변이란, 인간은 자신의 배가 부르고 안정적이어야 타인을 배려하고 도울 수 있다 거나, 저 사람들도 태어나서부터 노숙자는 아닐 것이다, 인생에서 여러 가지 계기가 있어서 저렇게 거리로 내몰렸겠지, 하지만 조금 자유를 억제한다 해도 재활기관들이 있고 하니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면 아마 노숙은 벗어날 텐데, 그냥 길에서 폐기물 주워 팔고 그걸로 술 먹고 흡연장에서 꽁초 찾아서 담배 피우는 거리의 인생을 선택한 것은 본인 선택의 문제,라고 교과서적인 답을 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노숙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에 대해 가지는 선입견 혹은 판단은 제각기 다르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 직관도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내가 어렵고 힘들며 모든 부분에서 바닥을 치고 있었을 때 그들의 무리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를 했었다.

오죽했으면... 하는 공감과 이해였다.

그러다 바닥을 치고 벗어나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을 때는 왜 저들은 아예 벗어날 시도조차 않는 걸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어느 정도 저들이 ‘자의’에 의해서 저렇게 지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다 운 좋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늘 운전하고 지날 때 눈에 걸리던 ‘노숙인 무료식당’에 쌀과 라면과 지원금을 후원하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철저하게 무신론자인 나이지만, 뭔가 어려운 이들을 도움으로 일종의 액 막음? 같은 마음이 나도 모르게 무의식 저편에 감춰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당시에는 그런 마음은 아니고, 그저 운이 좋아서 조금 여유가 생겼으니 얼마라도 세상에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배식을 받기 위해 늘어선 사람들의 시선에서 악의를 느꼈었다.

무료 식사 제공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현장에서 움직이는 종교인 들이었는데, 그들이 쌀이나 라면박스 옮기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면 그걸 가져온 나에 대해서 증오 어린 시선이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한두 번 겪은 이후로는 그냥 배달을 통해 보냈었다,.

일종의 자격지심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들은 나를 ‘위선자’로 보았을지는 모른다.     


석가모니가 생로병사를 보고 충격을 받아 자신의 가업, 지위, 가족 모두를 버리고 출가한 것을 보면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믿고 믿으려 노력하는 존재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그것이 원시적 샤먼이거나 애니미즘이거나 기독교 이거나 힌두교, 불교이건 어떤 형태로든 종교를 만들고 그것을 믿는다.

그리고 내가 아는 얇고 좁은 지식의 한도 내에서는 역사 어디에고 실제로 현실적인 ‘신의 도래’를 목격한 기록은 없다.

만약 있었다면, 늘 대전역 한편에서 벌어지는 노숙인들의 치열한 바닥싸움과,

그 반대편 광장에서 온종일 찬송을 귀청 터지게 틀어놓곤 앞에 앉은 청중이라곤 그 시설에서 끌려 나온 기력 없는 노인들과 정신지체 장애인들.

한 겨울에 입술이 시퍼렇게 변했는데도 눈보라를 맞으며 CCM에 맞춰 빨갛게 변한 손으로 박수를 치는 그런 장소에도 현신을 하는 걸 본 적 없었으니.

종교적으로 아이에게 납득을 시킬 방법이 없다.

아이에게 종교란, 늘 하굣길에 지나가는 할머니인척 하고 있다가 손에 아주 작은 사탕봉지를 쥐어주며 와서 예배하면 더 맛난 거 준다고 유혹하는 그런 것이 전부이니 말이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참으로 유물론적이자,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겪지도 않았고 본 적도 없는 것을 당당히 말할 정도로 강심장은 아니어서.


그저.

꽃은 아름답게 피어나 볼품없이 지고.

개는 주인이 피우는 담배 한 대가 다 탈 때까지 비를 맞으면서도 조용히 기다리고.

깃털보다 작던 씨앗도 저리 알아서 연둣빛으로 오르고.

고구마 한 덩이조차 초록초록 줄기를 뻗어 올리고.

누군가는 아무도 알아줄 이유도 결과도 없을 자전거로 국토종단을 하려고 하고.

사람들은 머나먼 어디로든 여행을 가고, 또 여행을 오고.

그런 게 세상살이란다 딸아.

온 지구의 뭇 생명들을 구하려고 애쓰지 말고 마음 쓰지 마.

넌 네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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