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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선오름 Jul 19. 2024

얼리어답터 讞利於答攄 외전 11

모방과 도용

얼리어답터 讞利於答攄 외전 11     

모방과 도용

     

집에 달항아리가 있다.

흔한 달항아리지만 나름 이름 있는 도예가로부터 선물을 받았으니 의미가 있다.

미안하지만 현재는 내 약봉투 껍질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인다.

그런데 딱 그 느낌의 가습기가 나왔더라.

심지어 일본 브랜드인 발뮤다에서.

모양이 괜찮아서 사보았다.

막 증기를 뿜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좋긴 한데,

게다가 다른 방식의 가습기들처럼 물통을 따로 빼서 챙기는 방식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좋네 싶긴 한데.

의외로 방식은 무척 단순하다. 초음파 식도 아니고 가열식도 아닌 기화식.

그러니까 물에 적신 수건을 널어놓고 팬을 돌려 공중에 습기가 퍼지게 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물방울이 주변에 맺히는 일도 없고 바람 위에 손을 대고 있어도 바람만 나올 뿐 습기는 없다고 느껴진다.

물론 증기도 아니고 수증기가 증발하는 것이니 그렇다.     

구조상 많은 면적이 노출되도록 쭈글쭈글한 원형의 필터가 내장되어 있다. 아마도 폴리프로필렌 같은데.

그 표면은 다공질로, 거기서 물을 빨아올리면 상부에 있는 팬이 돌아가면서 증발되는 습기를 공중에 확산하는 것이다.

팬의 속도 조절은 상부 꼭대기의 링을 돌리는 직관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이게 물을, 이를테면 도자기 구멍에 해당하는 상부에 콸콸 부으면 상부 표면에 물량이 떠오르니 좋은데 그러다 보면 잘 청소를 않고 냅다 물만 붓게 된다.

그러면 나중에 필터가 누렇게 하얗게 변한다.

음... 열심히 닦아도 잘 닦이지 않고 오히려 쭈글쭈글 접힌 부분이 퍼져서 원형으로 말아 다시 넣을 때 애로사항이 많다.

필터야 소모품이니 교체하면 되지만, 누렇게 되는 기간이 좀 짧다.    

 

그리고 디자인.

이건 아무래도 조선 백자, 공식명칭은 백자대호(白瓷大壺)인 달항아리의 디자인을 그대로 갖다 쓴 거 같은데??

이 정도면 모방이 아닌 그냥 복제 수준이다.

그런데, 한국 발뮤다 홈페이지에 가면 요따우로 써있다.     

국뽕 하라는 건 아니지만 누가 봐도 아닌 건 아니지 않나?

물론 엉뚱하게도 UN 같은 곳에 대형 달항아리를 기증한 건 생뚱맞게도 일본인이다.

그러나 일본 어디에서도 제국시대 이전에 자신들의 힘으로 만들어낸 달항아리는 없었다.

크리스티 경매장에 이따금 등장하는 달항아리 들은 모두 Made in Chosun, 소유자는 일본인, 대강 이렇다.

외국인들은 달항아리를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조선말기에 달항아리는 사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통해서 관요 가마가 다 파괴되고 숙련된 도자기 장인들이 모두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면서, 전란 이후에 비교적 쉬운 방식으로 미숙련 도공들도 제작이 가능하게 대량생산 체제 비슷하게 만든 그런 것이다.

대체로 300년쯤 된 일상생활용품 셈이다.     

차라리 떳떳하게, 조선 백자의 담백한 아름다움을 현대에서 재현했다고 광고하면 일본인들이 화가 나서 안 샀으려나?

하지만 그건 누가 봐도 똑같다.

이걸 구매할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이조차 진열장 위에 놓인 달항아리를 손가락질하며 ‘ 저거랑 똑같아! 신기해! ’ 했으니까.

그런데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뭐라든 우리 집 달항아리와 빼박이니 디자인에 감정은 없다 ) 이게 뭔가.... 습도 부분도 잘 모르겠고,

그 흔한 자외선 소독등도 없으니 이게 뭐 필터가 안전한 건지도 모르겠어서 지난겨울은 그냥 젖은 수건 걸고 잤다.

그거나 이거나.

게다가 무소음으로 유명한 그린팬의 발뮤다 답지 않게 1,2 단계만 넘으면 엄청난 소리가 나거든.

과장하면 거의 프로펠러기 시동 걸 때 소음이 나서 갓뎀이다.

음.... 올해는 그냥 안 쓸 거야.

게다가 가격도 내용물 대비 너무나 사악하다.

차라리 그냥 가열식을 사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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