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은 안 해요, 그렇다고 포기하진 말아요
근 이십여 년을 맹목적으로 충성해 온 SKT를 떠났다.
그동안 기기변경, 혹은 상품권, 또는 가전제품 혜택 등등 숱한 프러포즈가 있었지만 굳이 통신사 변경을 안 했던 이유는 사실은 간단하다.
뚜렷한 이유 없이는 단골을 바꾸지 않는 내 성향 탓이다.
머나먼 분당에 단골 자전거 매장을 만들고 ( 왕복 100KM에 달한다 ) 혹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옥션 만을 온라인 구매처로 쓰던 습관들은 오직 내 성향 때문이었다.
상대방이 특별히 내게 서운하게 하지 않는 한, 거래처도 대개 이십여 년 거래를 해오고 있으니,
어지간해서는 잘 안 바꾸는 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해 관심은 많은 축에 속하지만, 적어도 나의 주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옷이나 가방이나 물건들도 가능하면 같은 브랜드를 선호하는 편이기도 하다.
딱히 굉장한 실망을 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런 맥락으로 SKT와 갤럭시 폰을 주야장천 편애? 하며 지냈다.
생각해 보면 두 회사에서 나에게 특별히 뭘 잘해준 것은 없다 싶다.
과거에 LG 대리점 한 곳을 단골 삼아 몇 년간 수억 거래를 하였었는데,
알고 보니 하이마트 보다 더 비싸게 받으면서 별로 혜택 주는 것도 없음을 깨닫곤 맹목적인 짝사랑은 쓸데없음을 깨닫고도 그랬다.
이번 SKT 사태를 겪으면서 이러저러한 불편함도 불편함이지만, 뭐 어차피 다른 통신사들도 정보유출에서 완벽하진 않았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사태가 발생하고 요청한 유심칩이 언제 들어올지 기약이 없다는 단골 대리점의 말을 듣곤,
바로 그 옆의 다른 통신사에 가서 통신사를 바꿔버렸다.
내친김에 휴대폰도 애플로 바꿔버렸다.
갤럭시에 딱히 감정은 없지만, 2년만 쓰면 급속하게 줄어드는 배터리가 괘씸하기도 하고 어차피 집에서도 아이패드를 계속 써왔으니 뭐 아이폰이면 어떠랴 싶어서.
음.... 대리점에서 기종 변경을 한다고 하니 직원이 조금 걱정을 하긴 했다.
한 번도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삼성과 삼성 사이 데이터, 앱 이동에 비해 안 되는 앱도 많을 거고 사용방법도 생소할 텐데 괜찮겠냐는 걱정.
뭐 그런 걸 다 걱정하냐고는 했지만, 어쨌든 하룻만에 손에 익게 하는 건 쉽진 않았다.
그런데.
오전 10시경에 휴대폰을 바꾸고 사무실에 돌아왔는데, 막 출근한 직원이 말을 한다.
그 매장이 있는 빌딩의 위층 어딘가에서 누군가 유리창을 깨고 투신했는 바람에 119 구급차가 와있고 하는 것을 보며 출근했다고.
상황을 생각해 보니 1층 상가 매장에서 내가 혼자 열받아 휴대폰을 바꾸고 있는 그 시간에,
누군가는 절체절명의 마음으로 빌딩에서 뛰어내렸다는 말이 된다.
저런.
그토록 죽을 정도로 힘겨우면 그냥 그만두면 될 텐데.
이도저도 안되면 그냥 어디로 사라져 버려도 될 텐데.
물론 극단의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그런 것이 통하지도, 그 마음을 내가 헤아릴 수도 없다.
하지만.
우울증과 수면장애로 고생하고 있는 나 역시도 이론적으로는 빈틈 투성이의 병을 앓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진 안 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안타까움이 든다.
세상을 짝사랑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단 한 번뿐인 생을 포기하면 안 된다.
나는 세상을 사랑하려고 했는데 세상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경우,
그런 경우에 놓인 사람의 숫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숫자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장담한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도 속에 깊이 박힌 절망 하나 없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므로.
살아야 한다.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