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매니아 2

나 보통사람이야

by 능선오름

울트라매니아 2


내 직업은 영업사원이다.

일반적인 영업은 아니고, 국내 게임 개발회사의 영업사원이다.

회사에서 게임을 개발하면 제품을 대기업의 게임 유통업체에 시연회를 하고,

게임 자체를 팔거나 유통 권을 판매하는 게 내 역할이다.

물론 나 혼자 하는 것은 아니고,

이사급 영업팀장의 지휘 아래 프리젠트를 준비하고 유통사를 초청하고 지속적으로 유통사의 구매담당과 업무관계를 유지하는 것 이 내 임무 다.

마흔 이란 나이는 게임업계에서 좀 노인 취급을 받기도 한다.


젊고 빠릿빠릿한 친구들이 흘러넘친다.

나보다 더 명석하고 스마트하며 호감을 주는,

게다가 인건비까지 저렴한 젊은이들이 무수하다.

물론 개발자들은 다 나보다 훨씬 젊을 뿐 아니라 연봉이 몇 배가 넘는 인사들이 수두룩하다.

그 정돈 아니어도 영업팀 또한 이른바 '스마트'한 인재들이 차고 넘친다.

그러다 보니 영업팀장도 삼십 대 후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회사에서 만년과장 타이틀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실상 내 능력 때문이라기보다 는 회사가 처음 벤처기업 이란 이름으로 서너 명으로 출발할 때 함께 고생을 나눈 이른바 창업공신 이란 역사 때문임을 잘 안다.

거의 맨발과 맨몸으로 뛰다시피 했던 날 들 덕분에 회사는 제법 규모가 커다란 굴지의 게임회사가 되었고 디지털 단지 내에 사옥을 올리기까지 했다.


인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몇 백이 되었다.

하지만 엔지니어도 디자이너도 아닌 단순 영업자였던 나의 위치는 직원이 순식간에 불어나면서 일찌감치 밀려나기 시작했었다.

그나마 창업주인 대표님이 동갑이라 나름의 의리를 지키는 명목으로 버겁게 자리를 꿰어 차고 있는 상태였다.

이따금, 사옥을 오르내리다가 마주친 대표는 내 얼굴을 알아보긴 했지만 이내 외면하곤 했다.

언젠가 창업 멤버 몇이 모여 술자리를 하는데 우연히 끼어들게 된 일이 있었다.

나와 거의 비슷한 나이와 입장이었지만 경리회계 업무를 맡은 덕에 현재까지도 관리이사라는 타이틀을 지키고 있는 입사 동기가 반 억지로 끌고 간 것이다.

나는 처세술이나 수완이 좋진 못했지만 낄 데 못 낄 데를 구분 못할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다.

요즘 애들말로 '낄끼빠빠'는 구별한다는 말이다.


그 친구 입장도 회사 내 서열로 보면 모호하긴 했으나,

금전을 다루는 입장이고 초창기부터 사업차 발생한 뒷거래를 잘 알고 있는 친구라서,

대표도 소위 '멱살'을 잡혀 어쩔 도리 없이 끌고 가는 입장이기도 했다.

오히려 그 친구는 그런 사실에 대해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터였다.

감히 대표는 나를 자를 수가 없다. 왜냐? 내가 입을 열면 대표가 무척이나 곤란해질 거니까!

하지만 그 역시 아슬아슬하게 고용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은 나와 크게 다르진 않다.

동병상련이랄까.

그런 입장 때문에 굳이 나를 자리에 끌고 간 터였는데.

일차에서 식사, 이차에서 룸살롱을 전전하다 과거의 추억에 다들 사로잡혀 포장마차에서 3차까지 따라간 게 화근이었다.

그간 나를 보더라도 말도 안 붙이며 무슨 잡상인 보듯 흘기던 대표가 내 뒤통수를 툭툭 치며 술주정하던 것을 기억한다.


“ 어이, 우과장. 초창기에 내가 그랬잖아.

아무리 영업이라도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스킬도 좀 배우고, 응?

다른 주특기를 좀 배우고 해야 한다고 말이지.

영어회화도 응? 하다못해 중국어라도 응? 밑에 새파란 애들이 다 석사에 박사 야.

유학파도 많고. 그걸 알면서 그렇게 자기 발전을 안 하면서 창업 멤버라고 월급만 까먹고 계시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응? 아, 씨바. 내 입장도 좀 생각하란 말이야. 응?

쪽 팔리지도 않나. 한창 후배뻘들이 임원인데 말이지. 응?”


알지. 잘 알지.

근데 말이지.

거의 매일 밤엔 접대를 다니고,

주말에는 골프장 가방 찹쌀떡에다가 대표 구두를 맡겨 광내는 것부터,

대표 아들 등하교까지 챙기고 때로 대표 집 장바구니까지 봐야 하는 내게 무슨 시간이 있다는 거야.

내 마음속에서는 거센 항변이 들끓었으나 내겐 지켜야 할 가정이 있었다.

그래서 마음관 다르게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수그릴 수밖에 없었다.

곁눈으로 관리이사를 보니 불콰해진 얼굴로 연신 줄담배를 피우면서 대표와 내 쪽을 흘깃 거리는 게 보였다.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를 띤 채로.


아 뭐 이런 새끼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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