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매니아 3

사소한 함정

by 능선오름

울트라매니아 3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회사에 출근을 하면 암암리에 조직적인 따돌림이 시작된 것은.

회합 며칠 후 내 사무실 책상의 위치가 옮겨졌다.

관리부에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그 모든 이유가 다 의미 없음을 느꼈다.

그야말로 직원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복합기기와 사무용 기기 등이 빼곡한 구석자리는,

모든 직원의 사각지대에 있으면서도 출력을 하거나 커피를 가지러 오가는 직원들의

모든 시선에 노출된 그런 곳이었다.

항상 출력물이 나오는 소리가 연신 들려오고 불쾌한 인쇄잉크의 냄새가 진동하며,

이따금 커피를 들고 가던 직원들의 커피 잔으로부터 뜨거운 커피 세례를 뒤집어쓸 정도로 비좁은.


더구나 책상은 벽을 바라보고 있기에 내가 원해도 그들이 오는 걸 볼 수 없고,

그들은 수시로 오가며 나를 흘겨볼 수 있는.

게다가 그들의 동선 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어서 늘 내 컴퓨터 화면이 드러나 있는 그런.

누구나 내가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님 채팅 따위를 하고 있는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그런.

어리석다.

누가 나와 사내 채팅 따위를 하겠는가.

만년 과장한테.

오히려 그들의 통행에 걸리작 거리지 않으려면,

안 그래도 낡아서 흐느적대는 싸구려 사무의자를 곧추세워,

책상에 몸뚱이를 레고 블록 맞추듯 끼워 넣어야 간신히 통로가 확보되는 그런 곳인데.


그렇게 시작된 집단 따돌림은,

늘 의도적으로 점심시간에 나를 피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부서 회식도 그들 따로,

그리고 업무다운 업무는 주어지지 않고 막내 직원이 할 법한 심부름 위주로 주어졌다.

행여 막내 사원에게 뭔가 부탁이라도 할라 하면 늘, 팀장으로부터 면박을 받았다.


다들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니 사소한 건 좀 서포트해 주라는.

다소 분위기에 둔감한 나였지만 이것이 나 스스로 나가기를 원하는 팀장과,

회사의 입장이라는 게 분명 해졌다.

하지만 분위기 파악은 좀 늦은 나이지만 내 주제는 잘 알고 있었다.

내 나이, 내 경력, 내 능력에 갈 수 있는 동종 업계는 없었다.

결국 뚜렷한 특기도 없이 내몰리고 나면,

결국 허름한 아파트를 담보 삼아 치킨 집이나 편의점 자영업으로 가거나,

그도 아니면 발로 뛰는 실적형 영업을 하거나,

그도 저도 다 안 되면 결국 인력시장에 내몰려야 한다는 것을.


어느 날 팀장이 주요 프로젝트 관련 파일이라고 하면서

굳이 내 자리로 와서 은밀하게 USB를 건넨 것 은 의외였다.

게임 업체 특성상 보안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내 컴퓨터 들은 지정 컴퓨터 외에는 외부 저장 장치 포트가 아예 없었다.

USB나 외장하드 따위는 아예 반입도 안 되게 규정되어있었고 인터넷도 사내망 만 사용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시스템상 어떤 프로그램은 고사하고,

단순 문서조차도 팀장과 보안 이사 결재 없이는 외부 반출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팀장이 내게 USB를 건네며,

주요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 파일이라면서 워낙 극비사항이니,

내용 검토는 자기 컴퓨터의 비밀번호를 알려 줄 테니 자기 자리가 비었을 때 틈틈이 확인해 보고,

부족하면 집에 가져가서 검토해 보라고 하는 것은 실로 의외였다.

usb포트가 있는 컴퓨터는 팀장급 이상만,

것도 꼭 필요한 사람만 보안팀의 승인하에 가지고 있었으니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난 일종의 내 ‘버티기’가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퇴근을 기다렸고 퇴근을 했다.

아니 하려했다.

사옥 로비에서 보안 팀을 통과할 때 느닷없이 보안팀 직원이 가방 검색을 요구했고 나는 당황했다.

그런 경우는 드물었었으니까.

곰팡내 나는 내 오래된 가방을 열자 이따금 식사대용으로 먹던 칼로리 바.

쓸 일도 거의 없던 올해 연도 다이어리. 회사 이름이 새겨진 볼펜 두어 자루.

회사 이름이 인쇄된 포스트잇 한 뭉치. 출근길에 길거리에서 무심코 받아 넣은 무슨 전단지 두어 장.

그다음으로 당연히 내 낡은 가방 안에서 usb 저장장치가 나왔다.


"뭐죠? 이거 우리 회사에서 저장매체 사용불가인 거 몰라요? "

"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 내일 외부 프레젠테이션에 쓸 거라서 팀장님이 주신 건데요? "

" 그래요? 잠시 기다려봐요. "

경찰도 군인도 아닌데도 마치 회사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엄숙한 표정을 지은,

어깨 2가 내게 바짝 붙어서 근접 경호라도 하듯 나를 굽어보며 인상을 쓰고,

처음에 가방을 뒤지던 어깨 1이 나를 흘깃거리며 전화통화를 하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전화기 저 편에 있을

- 아마도 영업팀장 -

상대는 보이지도 않을 텐데 연신 절하듯이 절절매는 모양새로 통화를 끝냈다.

몇 걸음 안 되는 거리를 걸어오는 어깨 1이 어쩐지 어깨가 더 활짝 펴지고,

두 팔에 불끈불끈 근육을 돋워내는 것처럼 보인 것은 내 착각인가.


어깨 1이 마치 판사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확인했는데요. 그런 일 없으시다는데? 당신 지금 정보 무단반출로 걸린 건데 그거 알아? "


갑자기 반말로 바뀐 어깨 1의 청천벽력 같은 음성이 내 고막에 도달하고,

그게 무슨 말인지를 인식하려고 낡은 두뇌 속 뉴런들이 웅성거리는 게 느껴졌다.


" 뭐라고요? 그럴 리가! 제가 전화를 해볼게요. 뭔가 착각하신 겁니다! "


나는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어 팀장 전화번호를 찾았다.

지은 죄가 없는데도 손이 덜덜 떨리는 데다가 낡고 액정 여기저기가 깨진 휴대전화가 말썽이었다.

번호가 잘 두드려지지 않았다.

' 아, 당장 할부로 휴대폰부터 바꿔야겠다 '

그 와중에도 어깨 1의 험악한 시선보다는 낡아빠진 휴대폰이 창피하게 느껴지는 건 또 뭐냐.

팀장의 전화번호는 내 단축 전화 목록 1번 이므로 떨리는 손으로 터치를 했다.

신호가 조금 가더니 이내 통화 중으로 자동안내가 나온다.


" 이거 보세요. 팀장님이 지금 통화 중인 거 같은데 조금만 기다려봐요.

나 매일 출근하는 거 얼굴 알잖아요? 나 이 회사 창업 때부터 멤버라고요. "


내 말을 들은 어깨 1과 어깨 2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 아 그건 모르겠고, 우린 용역회사 파견이라 자주 바뀌니 당신 얼굴 몰라요.

게다가 내가 방금 통화한 영업팀장님이 왜 통화중이란 거요? 억지 좀 부리지 마쇼. 현행범 주제에. "

현행범?


어깨들에 의해 보안실로 끌려가다시피 한 나는 두 시간을 기다려서야 나올 수 있었다.

팀장은 여전히 통화가 안되었고,

보안팀에서 거칠게 잡아뺐은 출입카드 때문에 다시 사무실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내가 강제로 보안실에 죄인처럼 딱딱한 철제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어깨 1이 보안팀장실을 들락거렸고,

그들끼리 계속 뭔가를 수군거리고 오락가락 들락날락하는 게 두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는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아마 문자로 후속조치가 나갈 거라고만 하곤 그들은 나를 '석방' 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밤늦도록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휴대폰이 꺼진 상태로 자동응답만 들렸다.

아내가 불퉁맞은 얼굴로 뭔 놈의 전화질을 그리 하느냐 하지만 사실을 말할 순 없어서 그냥 일이 좀 바쁘다고 둘러대었다.

띠링 소리와 함께 회사 톡방에 공지가 떴다.

그곳에서 나는 회사 기밀을 유출하려 했다고 공지가 되어있었다.

회사 영업 기밀이 담긴 USB를 팀장 부재중에 팀장의 PC에서 몰래 다운로드하였고,

무단 반출하려던 것이며 그 증거로 경쟁회사의 전단지를 가방에서 발견했는데,

그 회사에 넘기려고 작정을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회사의 문구류들을 몰래 반출하는 치졸한 절도 행위까지 있었다는 말이다.

톡의 공지 아래로 팀장은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댓글을 했고,

어찌 된 일인지 사무실 CCTV에 는 팀장이 내 자리로 오는 영상은 없고,

내가 비워진 팀장 자리에 가서 꾸물거리는 영상만 올라와 있어서 그 모든 게 사실이 되어 버렸다.


다음날 아침에 회사로 갔지만 역시 보안팀의 제지를 받았다.

어차피 출입카드가 없으니 들어갈 방법도 없긴 했지만.

보안팀에 사정사정해서 팀장과 사내 전화로 통화가 되었다.

나는 울다시피 팀장에게 전화로 매달렸지만, 자긴 모르는 일이라는 답변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나는 다시 보안팀에 사정사정해서 입사동기인 관리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그럴 사람이 아니지 않으냐 사정을 해보지만,

그 동기 놈은 냉정하게 증거가 있으니 어쩔 방법이 없다는 거였다.

게다가 실제로 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였으니 빼도 박도 못한다는 말.

형사고발 까진 안 갈 테니 당장 사표를 제출하라는 관리이사의 폭언이 이어졌다.

대신 퇴직금이나 이런 건 꿈도 꾸지 말라는 말.

당장 잡혀가지 않는걸 다행으로 알라는 위로 아닌 위로.

넋을 놓아 멍해진 내가 비칠대며 보안실을 나서는데 뒤에서,

어깨 1과 어깨 2가 들으라는 듯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 늙어가지고 왜 추하게 도둑질까지 하는 거야? 나 같으면 진짜 대가리 꼬라박고 죽겠다. "

" 뭐 그런 부류 있잖냐. 창업공신 이랍시고 회사에 기생충처럼 붙어먹는 인간들. "


그리고 한 시간 후, 나는 사직서를 작성하기 위해 '특별히' 허락된 임시출입카드를 목에 걸고,

회사 옥상에서 머리를 아래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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