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깨달음
울트라매니아 4
사내는 골목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자신의 꼬락서니를 보았다.
십 년이 넘게 입어 온 단벌 양복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모래투성이였다.
본래 양복 소매 나 깃이 너덜거리긴 했었지만.
이따금 팀장이 자신의 스타일 때문에도 설명회를 망친다고 타박을 놓던 그 옷.
하지만 정작 자신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일도 없었거니와,
새 옷을 장만할 만큼의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었으니까.
십여 년 넘게 팔에 차고 다니던 낡은 전자시계는 액정이 박살 나 있다.
그나마 고무 밴드라 밴드까지 박살이 나진 않았다.
심지어 십 년을 신어오던 단벌 구두도 충돌의 여파인지 한쪽 밑창이 입을 살짝 벌리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에 느껴지는 통증도 없고, 긁힌 상처조차 없었다.
언제부터 썼는지도 모를 인조가죽 벨트는,
아까의 소동 때문인지 여기저기 실금이 가있던 어딘가가 끊겨서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 외에 더 망가진건 없어 보였다.
다만 입안이 꺼끌 거리는 게 보도블록 밑에 깔려있던 모래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사내는 과감하게 퉤! 하고 침을 뱉지도 못하고 천천히 고인 침을 발아래로 뱉었다.
하필 재수 없게 낙차의 오차로 인해 입을 벌린 구두 앞코에 떨어졌다.
젠장,
주머니 속 휴대폰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사내가 떨어진 구덩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시계 상태로 봐서 아마도 박살이 났을 것이다.
어차피 바꿀 거라 어제 생각은 했었지만.
이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통증도 아무 흉터도 없다는 게.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뺨을 비틀어 보았다.
아팠다.
이 알 수 없는 기적은 뭘까.
죽으려고 몸을 던졌는데, 이리 대책 없이 살아난 이 상황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밤이 이슥하도록 사내는 비좁은 골목 안쪽 막다른 벽 근처를 벗어나지 못했다.
현재의 몰골로 나서다간 모두의 눈길이 닿는 것이 문제였고,
전철 통행권도 휴대폰에 담겨 있는데 바로 회사 앞 도로라 다시 찾으러 가기도 그렇다.
해서 밤이 깊고 인적이 드물어지기를 기다렸다.
만 하루 동안 일어난 일 들이 꿈만 같았다.
자신을 절벽으로 내 몬 팀장.
어쩌면 그 연극의 시나리오와 각본 담당이었을지 모르는 대표와 관리이사의 징그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내는 가차 없이 생존경쟁의 장에서 마땅히 밀려 나가야 할,
‘도태 대상자’가 된 것이며 달리 벗어날 길은 없어 보였다.
사회생활 대부분의 시간을 온전히 보낸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언젠가 떠밀려 나오리란 것을 어렴풋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런 방식이 될 줄은 몰랐었다.
최소한 팀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위로 선물 비슷한 것을 받으며 마음에는 없을지라도 박수를 받으면서
자신의 개인 사물을 박스에 담아 쓸쓸하게, 하지만 의연하게 나오는 것.
그게 사내가 그리던 퇴사의 모습이었다.
비록 대기업처럼 큰 퇴직금이 아니라 할지라도 오랜 기간 근무한 대가라면 대가 인 퇴직금과,
나름 그동안 회사가 제법 규모가 커진 상태이므로,
하다못해 회사에 납품하는 사무용품 회사라도 어찌어찌 취업을 도모해 주기라도 바란 것은 좀 과 했을까.
아무리 자신이 쓸모없는 잉여인간처럼 보였다고 해도 이런 방법밖에 없었을까.
자신에게 누군가 대놓고 이러저러 하니 그만 퇴사하는 게 좋겠다고 하면 자신은 순순히 받아들였을 텐데.
어쩌면 그런 말을 하기가 뭐해서 괴상한 자리배치와 이상한 업무들을 준 거 아니었을까.
알아서 나가라고 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해고’와 ‘자발적 퇴사’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니까.
나오는 형태에 따라 퇴직금이나 이후의 보상금이나 다른 여러 가지 사회보장 제도에 있어서도 적용 기준이 달랐다.
참으로 치사하고 더럽다고 할망정, 사내에게 한두 달의 급여를 받고 안 받고는 생존에 대한 문제였으니까.
‘강제’와 ‘자발적’ 은 굉장히 큰 차이였으니까.
사내는 문득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그들이 말한 것 같은 범죄를 저지른 상태가 되면 어찌 될 것이었는지를.
범죄 행위에 대한 징계 절차로 퇴직금은 몰수될 상황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어떤 손해배상 – 손해가 그전에 있었을지 어떨 진 모르지만 –을 요구당했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한 사건 같지만,
자신이 회사의 주요 자료를 빼돌린 것으로 입이 맞춰진 이상,
모두가 그렇다고 증언을 하는 이상 사내가 대응할 방법은 없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거치적거리는 사람을 아주 합법적으로,
돈 한 푼 안 들이고 오히려 회사에서 내놓아야 할 돈까지 절감해 가면서 깔끔하게 내 보내는 것 일 수 있었다.
그랬나.
그런 것이었나.
경황이 없이 내몰리기만 하던 사내의 헝클어진 머릿속에서 슬슬 노여움이 돋아 올랐다.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얻자고 이 빌어먹을 회사에 충성을 해온 것인가.
최초 회사가 구멍가게 규모로 일을 시작했었을 때, 걸핏하면 몇 달이고 월급이 밀리던 그때.
자신의 보잘것없는 급여까지 일부 토해내면서 거래처에 술을 사고 영업을 하느라 아이 출산에도 가지 못해서 두고두고 마누라에게 시달리던 시절.
대체 왜 나는 무작정 일을 열심히 해서 회사가 커지면 다 나눠주리라던 대표의 말도 안 될 공약을 믿었던 걸까.
나는 이 회사에 무슨 존재였고 회사에서 내쫓긴 현재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