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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형태는 각각 다를지라도 전 국민 중에서 현재 돈을 버는 사람의 대다수는 직장인 일 것이다.
5인 이하의 소규모 사업장이건 수천만 명이 근무하는 대기업이건 돈 버는 연령의 절대다수는 직장이라는 이름의 산업군에서 근무할 거다.
2024년 8월 기준 임금근로자는 2,214만 3,000명으로 전년동월대비 18만 9,000명 증가한 가운데 정규직 근로자는 14만 7,000명 감소한 1,368만 5,000명, 비정규직 근로자는 33만 7,000명 증가한 845만 9,000명으로 나타났다.
나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종류의 산업군이 있고 같은 산업군이어도 규모와 업력의 차이가 다양하니 일괄적으로 직장인의 형태를 단정 짓기는 어렵다.
오래 직장생활을 해왔고 이제는 직장인 들을 고용하고 있는 내 상황에서는 비교적 중립에 가까운 시선으로 직장인을 바라보게 된다.
특히 코로나 시기를 거쳐온 이른바 MZ세대 직장인은 그 이전의 세대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그렇게 사회적인 흐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 직장의 개념은 무엇이라 일괄하여 표현하기 어렵다.
그렇다 해도 변치 않는 것들은 있는데 직장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마인드가 그런 것이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모두 다르며 후천적 교육환경과 각개 가정의 교육상황에 영향을 받아가며 조금씩 보편적인 사회생활에 길들여진다.
굳이 헤아려본다면, 나라는 개인 한 명을 기준으로 꼽아보아도 30년이라는 기간 동안 5개 산업군에 근무를 해보았으며 최종적으로 동일 산업군에서 최장 근무한 기간은 25년이다.
최초에 사회생활에 적응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와 선택착오가 있기도 하고,
젊은 시절에 흔히 빠지기 쉬운 ‘파랑새 증후군’을 겪은 때문이기도 하다.
파랑새 증후군이라는 용어는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동화극 "파랑새"에서 유래되었다. 주인공 티튈과 미튈은 (과거 어린 시절에 번역된 동화에서는 ‘찌르찌르’ ‘미찌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었다.) 행복을 찾아 파랑새를 찾아 모험을 떠나지만, 결국 행복은 자신들의 집 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다.
현대 사회의 파랑새 증후군이란 직장인들 사이에서 파랑새 증후군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현실적 노력보다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이나 환경을 찾아 떠나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막연하게, 지금 당장의 현재 보다는 좀 더 나은 조건과 더 나은 만족도를 찾을 수 있는 직작 혹은 직업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체로 이십 대에서 삼십 대 초반에 나타나는데 생물적인 연령이 젊다 보니 생기는 특유의 ‘근거 없는 낙관’과 ‘이유 없는 자신감’ 같은 것에서 비롯한다.
‘나’는 젊으니까, ‘나’는 열심히 살 거니까 혹은 살고 있으니까 남들과는 다르다는 실제로는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정말 이유 없는 자신감 같은 것이다.
젊으므로 실수도 많고, 경험이 적으니 주변의 경험치들을 간접으로 접하면서 자기 자신의 현재 상태를 냉정하게 파악하면 좋은데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나 역시 그러했고, 대단히 좋은 스펙을 가졌거나 라이선스를 가진 게 아님에도,
군에서 주변에서 받던 평가들과 결과등에 고무되어 정말 막연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난 아직 젊고, 늘 최선을 다해왔기 때문에, 성실하기 때문에, 남들 보다는 좀 더 나은 자리가 있을 거라는 식의 지극히 주관적인 자기 판단이 문제였다.
그리고 좀 더 경륜이 쌓인 상태에서 만난 수많은 후배들 – 족히 수백 명은 넘을 것이다 – 또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시행착오들을 겪고 좌절하고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도 느꼈고,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팩트폭격을 날리며 조언을 해주어도 결과적으로는 그들 또한 내가 느끼던 절벽과 내가 체험했던 자괴감과 다 겪고서 얻게 될 겸허함과 스스로의 보잘것없음을 깨닫는 과정을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본다.
세월이 흐르고, 세태가 바뀌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에 오렌지족, X 세대, Y 세대, Z 세대. 그러다 이젠 MZ 세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 MZ 세대의 부모 세대가 이른바 X 세대 일 것이다.
누구나 한때 젊었으며 누구나 가슴이 뜨거웠고, 누구나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현실에 절망하고 때로 자신이 세상을 주도하는 것처럼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또 다른 세상이 널리 펼쳐져 있어서 스스로 언제든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이 생각한다.
‘늦지 않았다’라는 혹은 ‘ 세상은 넓다’라는 가슴 벅찬 문장 몇 마디에 훌쩍 그게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며 살아간다는 말이다.
가끔은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세상의 대부분 사회인은 대체로 노력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다들 ‘열심히’ 일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정말 ‘성실하게’ 생활한다.
그런데, 그게 대부분이 그렇게 한다는 거다.
사회인 대부분이 그렇게 산다면 그 안에서 개개인이 스스로 인정하는 노력, 열심히, 성실하게 는 ‘기본’이지 특출함 같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개가 그렇게 살고 있음에도 시간이 흐르면 큰 격차를 가져오는 게 인생이다.
다수의 후배들에게 들었던, 소박한? 소망들은 대개 비슷했다.
“ 나는 큰 욕심이 없다. 조그만 국민평형 아파트 하나 장만하고, 결혼하여 아이 두엇 낳고, 때 되면 비싸지 않은 여행지에서 단란하게 가족여행이나 하고, 욕심 없이 늙어서 간소하게 살아가는 게 꿈이다. ”라는.
그런 말을 정말 무수하게 들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후배들은 모른다.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소박한 꿈’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절대 소박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젊은 시절 내가 꿈꾸는 ‘소박한 희망’ 또한 그리 다르지 않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소박한 꿈을 이루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부모찬스’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