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말 좀 들어줘
2.
나는 사실 ‘부모찬스’를 받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젊은 객기로 ‘부모찬스’를 받는 건 수치?라는 식의 자기 합리화를 한 적도 있었다.
부모찬스를 못 받아서 부모님을 원망한 적은 없다.
세상의 불공평함을 원망한 적은 있을지언정, 부모님 역시 부모찬스를 못 받은 월남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다면, 전설적인 일론 머스크처럼 스스로 우뚝 설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
그러나 속담을 보라.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받을 수만 있다면, 부모찬스를 받아서 훨씬 안정된 시작을 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그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찬스를 쓸 수 없는 경우를 두고 말해보자.
1장에서 말한 ‘소박한 희망’을 이루려면, 그것도 서울권 안에서 이루려면 우리가 맨바닥에서 시작한다고 가정했을 때는 소박한 희망은 곧 궁핍한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이룰 수는 있지만, 아주 오랜 기간의 궁핍과 절약과 살아가며 마주치는 모든 격랑을 이겨내야 간신히 소박한 희망에 근접할 수 있다.
‘비빌 언덕’도 ‘부모 찬스’ 도 없으니 온전히 젊음의 시간들을 갈아 넣고 젊어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나이가 들었을 때 그나마 소망하던 ‘소박한 희망’에 근접한다는 의미다.
이른바 ‘꼰대’ 들이 하는 말.
‘ 남들 하는 거 다 하고 다니고 남들하고 싶은 거 다 따라 하면 돈은 언제 모으나?’가 진리가 되는 순간이다.
사회생활,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변인들과 잘 어울리고 – 그게 회식이건 술자리건 근무 후 여흥이건 – 동호회 꼬박꼬박 나가고 트렌드에 맞게 옷도 챙겨 입고 여행 인증숏도 올리고.
분명 ‘사치’는 아니다.
보편적인 직장인 에게 그 정도 삶의 여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같은 행위를 하고 있어도 이미 비빌 언덕과 부모 찬스를 받은 사람이 그리 하는 것과,
전혀 그런 게 없는 사람이 그리 하는 것은 동일한 질량이 아니다.
출발선이 제각기 다른데 타인들이 향유하는 것을 따라가려면 손해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다른 나라 젊은이들이 어떤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유독 어떤 트렌드와 유행에 민감하고 빠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안다.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먼저 시작된 인터넷, 와이파이, 모바일 통신 같은 것들에서 원조 국가들을 능가할 정도로 빠르다.
사용 가능 속도도 그렇고 망이 보급되는 속도도 그렇고 네트워크 구성이나 국민들의 적응속도도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성질이 급한 국민성’이라는 식의 성마른 단정은 거부하나, 어느 정도 잘 기다리지 못하는 성격들이 있는 것은 팩트 다.
그렇다 보니 현재 인지도 높은 산업이 몇 년 후면 사양산업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과거 하이텔, 천리안이 영원할 것처럼 유행하고, 싸이월드 나 동창을 찾는 사이트, 엽기토끼, 졸라맨 등으로 상징되던 플래시몹 시대에는 그게 꽤 오래갈 줄 알았었다.
지금은 개인 SNS와 웹툰과 K 컬처의 시대가 왔다.
그리고 한 때 ‘떠나려는 자, 지금 떠나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워라밸’ ‘파이어족’ 이런 식으로 ‘직업’ ‘직장’에 귀속되기보다는 자유롭게 작은 소비를 향유하며 세상으로, 제주도로 떠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당시에 그런 식으로 개인 소셜네트워크로 자유로움과 다른 세계들의 풍성함을 부르짖던 유튜버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이제 이름도 잘 나오지 않는다.
유튜브로 대변되는 개인미디어 시대는 한때 정점을 찍었고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은 유튜브를 통해 ‘직업’을 대안으로 삼으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를 보라.
그것은 수백 수천 명의 기획사 연습생들이 생존만 간신히 가능한 정도로 먹고살며 수년간 노력해도 그중에 인지도를 얻고 데뷔라도 하는 확률이 극히 ‘운빨’에 의존하는 상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꼰대식으로 말하자면,
하이텔, 천리안으로 대변되는 – 윈도 프로그램도 없던 시대에 – 텍스트 온라인 서비스 시절에도 온라인 소설로 인기를 끌어 영화화까지 된 사람도 물론 있었고, 한때 열풍이 불었던 엽기토끼 캐릭터는 소송 전으로 갈 정도로 엄청난 금전적 효과가 있었다.
내비게이션의 대명사로 자리 잡던 ‘아이나비’는 그 여파를 몰아 MP3 리시버 시장까지 광풍을 일으켰지만 지금의 기술시대에는 그 무엇도 남아나지 않았다. - 개인적으로 아이나비 개발시기에 그곳에서 근무했던 중요한 1인을 안다. 그 사람은 아이나비의 주가가 상한을 치던 시기에 조용히 정리하고 발을 뺐다 -
이전에 없었던 신기술 콘텐츠가 불과 십 년도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꼰대스러운 과거지사가 (과거라곤 하지만 불과 20년 내외의 이야기다) 직업, 직장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싶겠지만 먼 이야기도 아니다.
코로나 대유행 초반에 코딩이나 프로그래머들의 몸값이 엄청났던 시기가 있었다.
불과 3년 전 이야기다. 몇 억을 선금으로 주고 모신다는 광고, 혹은 뉴스들.
그리고 지금은 전혀 와닿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다.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반짝 유행하는 흐름에서 큰 몫을 챙기는 자는 소수이고 대부분은 흐름이라는 격랑에 휘말려 허우적 대다가 아무것도 남는 것 없이 맨 몸뚱이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건 주식, 가상화폐도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수십 년간 주식을 하는 사람을 수백 명은 보았다.
그중에서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고 기억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그 사람은 대기업의 ‘만년대리’였다.
사실은 대기업의 직원이 될 스펙은 아니었고 계약직 대표 수행 운전기사였는데 대표님의 선처로 정직원이 되었지만, 딱히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사람이다.
그 사람은 나이는 많지만 스펙도 낮고 회사에서 승진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그 사람은 일찍이 주식을 시작했는데, 소액을 투자해서 원금이 보전되고 수익이 발생하면 원금은 찾고 수익으로 다시 재투자를 하는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십 년이 넘게 천천히, 수익을 쌓아서 당시 그 회사의 직원 중 주식부자라는 소리를 듣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스펙도 형편없고, 월급도 낮은 그 하부 직원이 주식으로 돈을 벌어 좋은 차를 타고 다니니 속이 쓰렸던 몇몇 상사들은 주식을 단타매매 하면서 기회를 엿보았지만 거의 다 빈털터리가 되었다.
게다가 뭔가를 책임지고 이끌어가야 할 직책에 있던 사람들이 맨날 주식 시장만 흘깃대다 보니 업무에 실수도 잦아지고 주변의 눈총과 평가도 좋지 않아서 결국은 승진도 잘 안 되는 최악의 결과로 귀결되었다.
내가 운영하는 회사는 소기업임에도, 개중에 늘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눈치껏 주식 혹은 코인을 넣느라 바쁜 친구들이 있었다.
정작 본인의 급여는 최저임금 보다 약간 높은 정도의 수준을 가진 젊디 젊은 친구들이 일을 해야 할 시간에 그런 식으로 온갖 머리를 분산시켜 쓰다 보니 결과가 안 좋을게 당연하고,
그걸 지켜보는 상사들의 눈에는 그것이 그 직원의 능력치라기보다는 딴마음을 품고 있으니 일이 제대로 될 턱이 없다는 식의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이다.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직업’에 아직 ‘프로’도 못된 상태에서 여기저기 곁눈질을 하면 그만큼 대가가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