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무게를 측정해라
3.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동시에 주식. 코인. 부동산 등 소위 ‘재테크’에 일찌감치 눈을 뜨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단 본인이 처음으로 등판한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후의 문제다.
아직 현직 업무에도 어리바리한 사람이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여유가 있는가?
그건 자신의 업무가 어느 정도 손과 눈에 익고, 마음에 여유를 가졌을 때 ‘부업’ 비슷하게 생각을 해야지, 주업인 현업에서는 날짜만 채우면 월급이 나올 거니 최대한 업무 시간 내에도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하고 스펙을 올리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 이건 아니다.
제아무리 상사나 동료의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업무에 전념하는 사람과 곁눈질하며 일하는 사람이 내는 성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세상은 공교롭게도 이런 부분에서는 공평한 법이다.
보통 ‘멀티 플레이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을 들으며 휴대폰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도 서류 작성도 하고 브리핑 자료도 잘 만든다는 식인데, 그게 굉장히 비효율적이며 인간의 두뇌가 멀티플레이를 할 수 없음은 수많은 뇌과학자와 행동학자들이 증명해 낸 바 있다.
그러므로 자만심에 빠져 이것저것을 동시에 해낼 수 있다 생각하면 당연히 인사 나 승진에서 도태되기 마련이다.
과거, 동료나 후배 직원들 중에서 자신의 주특기, 그러니까 주된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기보다는 일찌감치 다른 방면으로 ‘사회생활’을 다른 의미로 ‘잘한다’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아왔다.
그들은 대표 나 상사와의 인간관계에 초점을 두고 공적으로 사적으로 맺어진 ‘관계’에 치중한다.
그게 인사고과에 영향이 가장 크다 생각하고, 그것으로 조직 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조직과 거래하는 발주처 혹은 거래처에도 그런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사적으로 친해져 인사고과에서 이익을 볼 수도 있고, 관계에 의한 관계를 통해 업무에서 좀 더 편하게, 좀 더 인정받는 결과를 낼 수 있다.
인간은 아무래도 밥 한 끼 함께 먹은 사람에게 좀 더 긍정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정말 순간의 영향일 뿐 본질은 자신의 주특기인 ‘업무’다.
보통 그런 식으로 사회생활을 풀어 나가는 사람일수록 자기 주특기인 업무에 할당할 물리적인 시간이 적다.
그렇게 되면 동료나 후임에게 업무를 대충 위임하고, 동료나 후배의 업무실적에 슬쩍 손을 얹어서 자신의 실적으로 위장하여 인정받는 경우도 없지 않다.
문제는 그런 방식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잘못된 방법의 인상은 주변인에 의해서 소리소문 없이 알려지게 되어 있는 법이고,
거래처에 혹은 발주처에 좋게 좋게 말해서 넘어가는 것들도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들에게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으로 남겨진다.
실제로 나는 그런 방식으로 조직에서 입지를 굳혀가던 직원이 퇴사한 후, 발주처의 담당으로부터 그 직원에 대해 ‘사기꾼’이라는 소리도 들어보았다.
모든 업무를 달콤한 립서비스로 듣기 좋게 답변을 해주었지만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보면 결과적으로 종결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 친구는 후에 소규모로 독립을 먼저 했었지만, 기존의 발주처나 거래처로부터 아무런 연결고리가 생기지 못했다.
조직 내에서 일하면서 소위 ‘말땜빵’으로 일관하던 기억이 낙인으로 남아서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양치기 소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반대로 보이는 경우가 없지 않다.
대기업이나 공기업들은 대체로 승진시험을 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인사고과와 같은 부분도 무시할 수 없으나, 토익이건 토플이건 등등 ‘공부머리’를 가져야 승진의 기회가 오는 회사들이 있다.
그런 회사는 대개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일은 대강대강 넘기고, 아무리 조직이 바빠도 은근슬쩍 연차를 내거나 출장 업무를 간다는 핑계로 독서실에 가서 승진시험을 보는 사람이 더 빠른 진급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리 보면 우직하게 자기 업무와 조직문화에 충성하는 사람은 일편 미련하고 자기 손해를 본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라도, 그게 한 두 단계 승진에는 유리할지 모르나 그런 사람들이 최종 보스로 올라가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외부인이자 거래처에 불과한 내 눈에 보일 정도면 그 조직 내에서는 더 많은 시선에 이미 확인이 된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선들은, 승급은 했을지 모르나 그 사람이 결정적인 리더급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정도의 자격은 못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인간적으로 친하다고 해서, 업무 능력은 형편없는 후배나 동료를 키워주는 사람은 없다.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도 리스크가 될 수 있을 사람을 편들고 안고 가겠나?
세상은 그렇게 로맨틱하지 않다.
직장이라는 게 뭔가?
동호회가 아니다.
게다가 연줄이나 혈연으로 묶인 단체도 아니다.
심지어 혈연으로 학연으로 연결된 조직이 있다고 해도, 거기서도 결국은 실력 있는 자가 내 편이고 그런 자를 주변에 둬야 자신이 올라갈 자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하므로,
기본적인 업무력의 바탕이 없는 사람이 오로지 연줄로만 올라가는 경우는 없다.
단, 그 연줄이라는 게 이른바 ‘부모찬스’라고 하면 다른 경우다.
실력이나 경험은 전혀 없는데도 부모의 능력으로 마구 승진하고 올라가는 사람은 제외다.
그건 이미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대표에게 충성하고 하다못해 그 집안의 세탁물까지 챙겨주는 충성 아닌 복종심을 보인다고 해도 그것은 대표의 눈에는 딱 ‘집사 정도 능력’으로 보이는 것이지 그런 충성심을 빌미로 중요한 핵심업무를 맡기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직장에서 처음 입사해서 자리를 잡아야 할 때는 학연이나 지연으로 인하여 동시에 출발선을 출발한 동료들보다 빠른 자리 잡기를 할 수 있다.
좀 더 좋은 동아줄을 잡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제 아무리 황금동아줄을 잡아도, 동아줄을 타고 오르는 것은 본인의 능력이다.
자기 혼자 살아남기도 힘든데,
아는 후배라고 해서 열심히 끌어올려줄 선배는 없다.
동료애, 소위 전우애가 있다고 해도 잠재적으로는 모두 승진에 대한 경쟁자다.
그러니 ‘의리’ ‘협의’ 이런 것들도 타인들에게 비난받지 않는 선에서 끝내지 않으면 자칫 이유도 없이 늘 ‘총대’만 메고 화살받이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역설적으로 보면 업무 능력을 갖추지 않고 인간관계나 소위 ‘말발’ ‘접대’에 능한 사람에게 한계가 있듯이 ‘의리’ 하나로 주변에서 인정받긴 하는데 업무 능력은 좀 갸우뚱하는 사람도 한계가 있다.
어떤 측면에서 두 사람의 스타일이 정 반대로 보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똑같은 맥락이다.
자기가 ‘할 일’을 우선으로 두지 못한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직장에서는 입바른 환관이 되어서도 안되고, 정의감에 불타는 영웅이 되어서도 안된다.
자기 분수에 맞는 자기 업무를 하는 게 중요하다.
‘업무능력’은 그냥 기본이다. 특별한 게 아니라 기본기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