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백서

바닥은 없다

by 능선오름

4.

정말 ‘옛 것’ 같은 말이지만, 그것이 대기업 이건 소기업 이건 불문하고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성인이자 사회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는 분명 있다.

그것이 ‘절대적 기준’은 아니라 해도 기본적으로 가질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다.


최전방에서 군생활을 하다가 새로 중대장이 오셨다.

새로운 중대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군사학교를 나온 사람이었기에 배울 점이 많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좀 친해진 어느 날 내게 물어본 이야기가 있었다.


- 어이, 0 중위. 자네 혹시 어머니를 부양가족으로 올려놓았나?

- 아닙니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살고 계십니다.

- 에이, 너 선배들은 그런 교육 안 해주더나? 주민등록상 어머니를 자네 주소지로 옮겨놓으란 말이지. 그러면 가족 수당이 나오는데 이런 거 선배들이 안 알려줬어? 난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


딴에는 내 생각을 해줘서 한 말일 거다.

지금 시대에는 주민등록부가 전산화되어 있어서 어림이 없는 이야기 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게 그 조언은 좀 충격이었다.

소위 ‘선배 장교’가, 편법을 써서 수당을 꾸준히 챙기라는 이야기를 하다니.

그건 내가 알고 있던 장교의 자세와는 상당히 다른 내용이었고, 물론 짬밥을 좀 먹은 선임들이야 그런 편법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초임장교에게 미리 교육까지 할 내용은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따금 뉴스에서 기사화되는 야근 하지도 않은 공무원이 실컷 놀다 와서 야근 퇴근 체크를 한다는 것처럼.

그리고 이전에 근무하던 회사의,

앞에서 말한 ‘입으로 업무 하는’ 그 친구가 후배들이 입사하면 회식자리에서, 현장에 나가면 식당이나 철물점 등에서 일반 영수증을 최대한 받아서 – 지금처럼 pos 기기로 인쇄되어 나오지 않던 시절이다 – 소위 ‘가라 영수증(가짜)’을 결재 올려야 ‘용돈이라도 번다’ 고 교육을 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었다.


글쎄.

이제 막 사회생활 직장 생활에 첫발을 내디딘 청춘들에게 불과 몇 살 차이 나지도 않은 그 친구의 조언? 이 과연 도움이 되었을까.

그게 현명하게 사회에 적응하는 길로 들렸을까.

아니면 한심한 것부터 가르쳐주는 그 친구가 제대로 된 선배로 존경받을 수 있었을까.

나중에 그 친구가 발주처나 협력사로부터 그토록 야박한 평가를 받게 된 데는 그 모든 것들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게 내 판단이다.

사람들은 머리 좋은 친구들을 감탄하고, 존경하기도 한다. 물론 질투도 한다.

그러나 머리가 좋은 게 아닌 얍삽하고 잔머리를 잘 쓰는 친구들을 존경하거나 질투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한도에서는.

그리고 그렇게 거둔 쏠쏠한 잔돈들을 모아서 적금이라도 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없다.

그렇게 편법으로 들어온 돈은 또 그렇게 사라지는 법이다.

사회생활, 직장생활에서 소위 FM을 지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FM이 뭔지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FM은 군사용어로 Field Mannal의 약어이다.

즉 한국어로 하면 ‘야전수칙’ 정도의 뜻이다.

군대에서 왜 FM을 강조하느냐 하면 그건 ‘생존수칙’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실제 전투상황에서 혹은 훈련상황에서도 FM은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다.


내가 근무했던 회사가 아닌 거래처 – 대기업/공기업 – 에서도 비슷한 사례는 많이 보았다.

개중에는 ‘공기업’이라는 허울에 매몰되어 마치 자신이 ‘공기업 그 자체’인 듯 본인에게 주어진 권한이나 능력의 범주를 한참 넘어서서 거래처들을 거의 ‘졸’ 부리듯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고,

오히려 정말 ‘공공기관’의 담당으로 거래처들의 애로사항들을 해결해 주려고 발로 뛰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었다.

대기업에서도 그와 같이 극단적으로 다른 양상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을 거의 삼십 년 가까이 바라보았다.


모 호텔의 전기시설 담당 과장이 있었다.

시설관리팀의 전기 과장이란, 말이 과장이지 ‘과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통 건물관리 회사가 협력사로 들어오게 되면 그 회사의 업무를 안내하는 역할이고,

건축에 관련하여 전기가 간섭되는 부분이 있을 때면 단순하게 도면 검토를 하고 필요한 가이드를 내주는 그런 역할이다.

즉, 기술자 라기보다는 행정관인 셈이다.


그런데, 그 과장이란 자는 나이가 사십 대였는데 협의를 들어온 인테리어 회사 – 그 회사는 호텔보다 역사가 오래되었고 회장님도 칠순을 넘었다 – 의 주임급 사원에게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 야, 너희 회장 그 새끼는 요즘 안 들어오냐? 옛날에는 찾아와서 사정도 하고 그러더니 말이야....


그 주임은 기가 차서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을 곁에서 바라보았었다.

그 과장이란 사람은 늘 그런 식으로,

협력사에서 도면 협의를 하러 누가 들어오건 밑도 끝도 없이 ‘ 너네 사장 새끼’로 이야기를 시작했었다.

이건 MSG 한 방울 없는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마뜩지 않지만 일단 전화를 받았다.


- 안녕하십니까? 저 00 호텔 전기실의 0 과장입니다.

- 아,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 왜 이렇게 목소리가 친절해졌지? )

- 아~ 제가 이번에 회사를 나와서 새로 전기회사를 차렸거든요. 앞으로 좀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잠시 혼란스러워졌지만 이내 조용히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 아~ 그러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일이 ‘있으면’ 전화드리겠습니다.

후에 보니 온갖 협력사에 내가 받았던 것과 동일한 내용의 통화가 있었고, 그 사람은 곧 업계에서 사라졌다.


직장. 그리고 직업이란 늘 갑을병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갑이 없거나 을이 없는 직업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권한과 권력의 정점에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직급들도 그 위에 누군가가 있다.

완전한 밑바닥에 있는 것 같아 보이는 낮은 직급의 일을 하는 사람들도 누군가에겐 ‘갑’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전반적으로 사회, 특히 자본주의 사회는 계층을 형성하며 공평하지 않은 계급사회인 것이 맞지만 그 계급이란 것도 극히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물고 물리는 사회구조라서 누구에게든 함부로 할 것도, 함부로 당할 것도 실은 없다.

인간은 지위고하를 떠나 누구나 삼시 세끼 밥을 먹고, 하루 7시간 이상 잠을 자야 한다.

여기서 생물학적으로 자유로운 이는 없다.

적어도 그런 측면에서는 공평하다.

직장, 직업, 산업군에서도 그러하다.

어떤 특정 직업군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사회의 필요성 때문에 생기는 변화일 뿐이지 도태도 아니고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요즈음 부동산 경기가 낮고, 예전에 대비해서 공인중개사 인기가 시들하다고 하여 영원히 공인중개사는 도태되고 불필요한 직업군일까?

그렇지 않다.

여기서 얻어야 하는 교훈은 의외로 단순하다.


‘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걸인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공격할 송곳 정도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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