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백서

삐딱하게 feat. G Dragon

by 능선오름

5.

모든 회사에는 신입사원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있다. 아니, 있거나 없거나 일거다.

내가 최초로 입사한 회사에서는 사장님이 출근 첫날 나를 붙잡아 앉혀놓고,

무려 세 시간 동안 단독 오리엔테이션을 했었다.

규모가 크진 않으나 전체적으로 학력이 높고 – 보편적 기준에서의 학력 – 구성회사들도 인원은 많지 않지만 각 파트별로 회사를 만들어 일종의 작은 그룹사 형태를 갖췄었다.

사장님 또한 학구열이 대단하여 갓 출근한 신임을 두고 ‘메모의 중요성’ ‘ 필기하는 법’ 등 당시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것들에 대해서 오랜 시간 교육을 하셨는데 나중에는 그것이 사장님의 사회생활 초기에 선배로부터 받았던 오리엔테이션의 직계 교육임을 알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서 ‘매일매일 자라기’ ‘프로로 자라기’라는 나름 직장생활의 프로화에 대한 베스트셀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내가 배운 내용들이 그대로 중복되어 기술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 아, 같은 계통의 업종에서는 이게 일종의 전승 인 모양이다’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게 사회생활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사장님은 ‘최고 학력’ 출신답게 ‘보통 사람들’에 대한 공감은 부족했다.

흔히 똑똑한 사람들이 범하는 실수, 나는 되는데 너는 왜 안돼? 혹은 ‘ 나는 쉬운데 너는 어려워? 노력이 부족한 거지’ 식의 마인드이다.

그러나, 사람은 제각기 그릇이 있고 그게 평균치 보다 상당히 높은 사람들은 평균치의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내가 뭔가를 오리엔테이션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가능한 ‘보편적인 보통 사람’의 기준에 맞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첫 번째 잔소리는 늘 똑같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너 자신 외에 동료 선배 후배 그 누구의 말도 액면 그대로 믿지 말라’였다.

신입사원을 뽑아놓고 처음부터 ‘불신’을 조장하다니.

내 나름의 이유는 있다.


규모가 큰 회사이건 작은 회사이건 입사하면 무조건 ‘동료’가 생기기 마련인데, 그 동료들이란 모두 제각기의 ‘사정’이 있는 법이고 그 사정에 따른 관점으로 뭔가를 이야기한다.

즉, 자신이 곧 조만간 회사를 옮길 생각이면 입사자인 신입사원에게 부정적이고 한마디로 ‘초 치는 이야기’들을 잔뜩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이제 곧 자신이 퇴사를 하거나 전직을 할 것이므로 그에 대한 ‘당위성’을 밑밥으로 깔아놓는 거다.

만약 그 동료가 최근 승진을 했거나 상사로부터 신임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무조건 회사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도 저도 아닌 사람일 경우에는 ‘적당히’ 하고 ‘적당히’ 지내는 게 최고라는 식의 ‘ 처신’을 가르치기도 한다.

갓 스물 중반대의 신입사원은 처음에는 그럭저럭 자기 사수뻘 되는 사람의 말을 듣긴 하지만,

이미 머리가 굵은 상태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몇 달이 지나면 스스로 평가하고 스스로 판단한다.

하지만, 처음 입사해서 듣는 동료들의 이야기들로 인해 회사와 사회생활에 대한 정제되지 못한 편향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분명히 있다.

때문에 자기 자신이 직접 보고 겪고 확인한 것이 아니라면 믿지 말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상사의 지시대로 일을 하고도 나중에 그로 인한 ‘책임’을 뒤집어쓰게도 될 것이며, 누군가는 열과 성의를 다해 만들어 놓은 일의 성과가 자신의 노력은 다 숨겨지고 상사의 능력으로 둔갑하는 억울함도 맛볼 것이다.

그렇게 뒤엉키다 보면 회의감과 분노와 불신들로 사회생활에 절어지는 결과로도 바뀔 수 있다.

그 모든 것은 이 사회생활 이란 게 ‘동호인 모임’ 같은 게 아니라서 그렇다.

누구나 잠재적으로 자신의 승진에 대한 ‘적’이며 구조적으로 경쟁하는 조직이 아니어도 사람들의 본성은 누군가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앞서는 꼴을 잘 못 봐줄 정도로 옹졸하다.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학교 다닐 때도 늘 선도적으로 일을 해온 사람이라고 해도 인간관계의 그물에 빠져 버리면 도량 따위는 사라지고 편협하고 치졸한 자신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자세는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불필요한 ‘경쟁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소위 ‘밥그릇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성실하고, 일에 대해서도 진심이라면 굳이 입으로 광고를 하지 않아도 결과적으로 다 알게 된다.

당장 어떤 자가 모든 일을 입으로만 떠들고 다니고 나중에 그 영광을 얻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세상에 ‘인과응보’의 법칙 같은 것은 없다.

적어도 표면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는 그게 맞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기묘하게도 ‘인과율’에 대한 ‘응보’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발현되게 되어 있다.

과거 근무처에 엉뚱한 낙하산 인사가 내려온 적이 있었다.

소위 ‘대기업 간부’ 출신의 인사가 그야말로 뻑쩍지근한 배경을 자랑하며 갑자기 ‘윗선’으로 꽂힌 것이다.

당시의 대표님은 나름 인품이 훌륭했지만, 회사를 키우기 위해 그 정도 배경과 사회적인 융통성이 있는 사람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즉, 자신은 고고하여 사회적인 융통성도 없고, 대개의 ‘더러운 일’을 해줄 만한 인간관계폭이 넓은 사람 정도도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 기대에 부응? 하여 그 낙하산 인사는 입사하자마자 거래처들을 갈궈서 바꿔치기를 해 버리고,

기존의 업무 시스템을 다 갈아엎고, 직원들의 결재판을 집어던짐으로써 자신에게 복종을 강요하고, 심지어 신규 거래처 담당들은 당신에 상무에게 차도 사줬으니 알아서 잘 결재 올리라는 협박?을 들을 지경이었다.

결과로 많은 인원들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어쩌면 그렇게 해서 자신에게 맞는 조직을 구성하려는 게 당시 낙하산 상무의 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 수모를 견디지 못하여 그만뒀으니까.

그리고 세월이 흘러 우연히 당시 사장님을 만나게 된 일이 있었다.

근 이 십 년 은 되었을까.

사장님은 회사를 접고 다른 회사의 식객이 되어 있었는데, 그 상무의 근황을 묻자 이미 십 년 전에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다.

그냥 돌연사.

그것이야말로 흔한 일도 아닌,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할 순 있다.

하지만 당시에 그 회사에 근무하다 그만두었던 직원 대다수가 이십여 년이 넘어서도 그 상무 이야기가 나오면 증오심에 이를 갈 정도였었으니 그게 단지 우연일까 싶다.

여기서 또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 영원한 상사도 영원한 부하도 없다. 동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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