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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에서, 그리고 국회에서 숱한 반대의 소리와 반대 집회와 종교 단체들의 반박 성명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반년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자 그 모든 게 다 시들해졌다.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엄청난 자금을 들여서 중후한 이미지의 중년 배우들을 앞세워 광고가 아닌 캠페인 식으로 ‘선택에 의한 안락하고 존엄한 마지막’은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긴 간병 생활을 짊어진 가족들도 동의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무엇보다, 다큐멘터리 식으로 ‘제발 평화롭고 추하지 않은 죽음을 달라’는 말기암 환자들의 부르짖음 앞에서 그래도 삶은 고귀한 거라 주장을 펼칠 강철심장 같은 이들은 적었다.
이 모든 것은 ‘합리적’인 것이다.
게다가 스스로가 선택하고, 기존의 끝도 없고 언제 마침표가 찍힐지 모를 막연하게 생명을 연장만 하는 보험들의 약관을 추가 개정하여 바꾸기에도 쉬웠다.
보험사들은 그야말로 추정도 안될 막대한 예비비를 준비하느니 차라리 확실하게 자금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사망보험금 지급을 선택했다.
물론 보험사에서 손해가 없도록 비율을 조정하는 과정이지만.
당사자를 둘러싼 가족들도 긍정하는 분위기였다.
세금도 없는 보험금이라는 것이 매력적이고, 언제 끝날지 모를 당사자의 죽음을 서로 대화도 단절된 상태에서 기다리는 것, 자신이 존경하거나 사랑하던 부모가 종잡을 수 없는 어른아이가 되어 버리는 것, 결국 강제 입원하다시피 하는 요양원에서 이른바 요양사에 의해 일방적이고 무력한 폭행과 모욕을 당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존엄사’를 선택하는 수많은 배경 중 하나 일 뿐이다.
사회라는 곳은 ‘복지’라는 것을 기본적인 것으로 내세우곤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인력과 시설과 언제 끝날지 모를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것에서 예외가 없다.
그러느니 차라리 ‘존엄사’를 선택하는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고,
끝도 없는 막대한 복지비용을 줄이고, 가족들이 짊어질 부양의 무게를 줄여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두가 ‘좋은’ 방법이라는 게 공론화가 되어갔다.
모든 여론이라는 것은 만들기 마련이다.
소위 ‘전문가’ 들을 초빙해서 존엄사의 당위성과 인간의지 존중 같은 키워드를 만들어내고,
그 모든 것을 사회적 규약으로 자리 잡는 게 미래의 인류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여론화하면 결국 사회의 흐름은 따라오게 마련이니까.
시간이 좀 흐르자 대체로 사람들은 본인이 원치 않았던 연명치료를 혐오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안락생명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 의지’를 가진 자유인의 권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덕분에 안락생명은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 이전의 그늘진 사옥을 벗어나 생명보험 본사의 2개 층에 떳떳하게 자리를 잡았다.
- 종선아, 아니. 이제 이사님이지. 이사님. 승진 축하드립니다? 하 하
대호의 장난스러운 승진축하인사에 종선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 뭐 너도 사외 고문에서 이제 법무 이사로 올라갔잖아. 창완이도 부장이 아니라 본부장이 되었으니 다 잘된 거지. 그런데.... 창완이 너 얼굴은 왜 그렇게 시무룩하냐? 승진한 게 싫으냐?
오랜만에 세 동창은 술자리에 모였다.
그들이 일 년여년 모였던 동네의 허름한 선술집이 아닌, 제법 멀끔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위스키 바에 모인 것이다.
종선이나 대호는 꽤 자연스러운 장소인 듯 여유롭게 보였지만, 창완은 못 올 자리라도 온 것처럼 잔뜩 어깨가 움츠려져 있었다.
- 백 칠십오 명이야.
뜬금없이 창완의 입에서 흘러나온 숫자에 종선과 대호는 어리둥절 해져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친구의 입에서 똑같은 질문이 튀어나온 것은 반사적이다.
- 뭐가?
이구동성으로 물어오는 질문에 창완은 두 친구를 훑어보듯 바라본다.
그 눈빛은 아무 감정이 보이지 않는, 다 타버린 모닥불의 잿더미처럼 공허하다.
- 일 년간 내가 계약을 이행한 사람의 숫자야.
창완의 말에 두 친구는 다시 합이라도 맞춘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생각해 보면, 안락생명이라는 사업이 잘 된 다는 것은 곧 ‘선택적인’ ‘자발적 존엄사’ 비율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어떤 의미 있는 문장과 단어로 서사를 만든다 해도 결과적으론 사람의 죽음이라는 결론에서 자유롭지 않다.
때문에 누가 시킨 것이 아니어도 안락생명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서로 간에 죽음이 연상되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계약 이행’ 정도의 표현만 사용했었고, 그렇다고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 그래. 그게 뭐. 우리들 보험사 직원들도 모두 보험에 가입되어 있잖아. 우리 역시 우리가 창출해 낸 보험에 찬성한다는 의미에서.
종선이 불퉁맞은 말투로 대답하자, 대호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자못 쾌활하게 입을 연다.
- 맞아, 맞아. 이건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고. 오히려 도와주는 거잖나. 여러 사람을.
말 그대로 계약이고, 계약을 이행한 건 문제가 아니지.
그러나 이어서 나온 창완의 말에 두 친구는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나, 진단받았어. 알츠하이머 초기라고 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