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 위의 단상

일단 믿어라!

by 능선오름

엉덩이와 쫀드기의 만남

나 스스로는 소위 ‘자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21년 코로나 시작 후 건강을 위해 고교시절 타 본 자전거 이후로 처음 타기 시작했었으니,

그리고 자전거를 직접 수리하는 적도 엄두도 없으니 진정한 의미의 ‘자덕’은 못된다고 자평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자덕’(자전거 덕후)이란, 집에 자전거 정비대를 놓고 스스로 체인도 갈고 타이어도 갈고 자전거를 애지중지 방안에 모셔놓는 정도는 해야 한다.

국토종주 수첩 하나쯤은 가볍게 갖고 있어야 하는 거고.

나처럼 그냥 자전거를 사서 오직 타기만 하는 것, 그것도 한강 자전거 도로만 오가는 정도를 자덕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위 ‘기변병’ 이란 것은 있다.


“ 기변병 機變病 :자신이 소유한 기계를 신제품이나 다른 모델로 자주 바꾸고 싶어 하는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과거 고교시절에 늦게 자전거를 배우게 된 것은 순전히 ‘오기’때문이었다.

선친께서는 내가 자전거 타는 법이라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을 하셨는지 내 중학교 시절에 어디서 자전거를 하나 얻어오셨다. 아마 중고를 사 오신 걸 텐데.

정작 선친께서도 자전거를 타지 못하신 것 같다.

타실줄 아셨다면 이래저래 하라고 하셨을 텐데 무작정 쇳덩이 자전거를 주시고 무조건 연습을 하라고 하셨으니까.

자꾸 넘어지고 배우고 싶은 마음도 없던 터라, 몇 년간 집뒤에 처박혀 녹이 슬어가던 자전거를 타게 된 이유는 간단히 '오기' 때문이다.

친구 녀석이 만날 때마다 자전거를 끌고 와서 어찌나 자랑질에 얼짱 대는지, 은근히 꼬라지? 가 나서 뒷꼍에서 먼지를 잔뜩 머금은 고물 자전거를 꺼내어 자전거 연습을 시작했다.


딱히 배우는 방법을 모르니 경사도가 약간 있는 언덕에서 중력 가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하는 자전거의 균형을 잡아보고, 좀 익숙해진 후에는 평지에서 페달을 밟아보고. 그랬다.

마침 학교 기술교과 시간에 자전거 원리를 배운 덕에 나름 체인도 닦고 브레이크 패드도 맞춰보곤 했는데,

지금의 자전거들과 달리 기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브레이크도 뒤쪽은 드럼에 가죽띠를 당겨서 제동을 하는 진짜 원시적인 자전거였던 기억이다.

사실 너무나 평범한 고물 자전거라서 내 앞에서 꼬라지를 유발한 친구의 자전거와는 수준이 달랐지만 나름 열심히 타고 다니긴 했다.

물론 그 시절에는 아예 자전거 헬멧이라는 것조차 없었다.

있었겠지만 주변에서 그런 걸 하는 사람도 없었거니와 자전거 자체도 드물고 자동차도 드물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포장이 잘 된 도로가 드물어서, 정말 무식하게도 현재 강변도로 중에서 응봉동을 지나는 길이 당시에는 지금처럼 도로와 인도분리가 안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자전거를 탄 적도 있었다.

그것도 역방향으로. 그게 안 되는 것인 줄도 몰랐으니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 운전자들의 손가락질을 응원?으로 착각할 정도로 무지몽매했던 앙팡테리블의 시절.


그러고 나서 성인이 된 이후로는 자전거와 아주 먼 이별을 했었는데.

코로나 격리가 한창이던 시절 우연히 차를 끌고 지나가다 보게 된 접이식 자전거가 갑자기 자전거를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다.

그즈음에 건강 진단에서 고혈압, 당뇨 전단계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고 어쩌고 하는 의사의 잔소리를 한 바탕 들었던 참이다.

고혈압 약, 당뇨 약을 먹기 직전 단계이므로 불안하면 ‘선택’하여 약을 먹어라 라는 엄포.

그런 일이 있어서 또 무작정 약 대신 자전거를 샀다.

그래도 접이식이고, 그러니 작고, 그러니 트렁크에 실리고, 트렁크에 실리니 가끔 한강주변에서 주차를 하고 한 시간이라도 타면.... 약을 안 먹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정말 어울리지 않게도 ‘앙팡테리블’에 가까운 만용으로 시작한 셈이다.

일단 자전거 부위 명칭도 모르고, 기어 변속도 모르고, 제동법도 잊었고, 공기압도 모르고, 헬멧도 모르고,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몸은 그 먼 세월을 건너뛰어 균형 잡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세월만큼 두터워진 배둘레와 빈곤한 근육량과 폐활량으로 시작하니,

처음 라이딩으로 2km 정도 가서 지쳐서 간신히 돌아온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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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밖에.

군대 시절에야 태릉 선수촌 수준의 운동루틴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회에 나온 이후로는 숨쉬기 운동과 숟가락 운동 말곤 해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야말로 ‘더티한 몸뚱이’ 상태로 용감무쌍하게 새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으니 세월은 흘렀어도 무모함은 줄어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타다 보니 확실히 접이식 자전거의 한계는 있었다.

일단 자전거가 바닥으로부터 받는 충격을 줄여주는 쇽업서버, 흔히 ‘쇼바’라고 부를 것이 없으니 자전거를 타면 온몸이 다 으슬으슬 아파지는 것이다.

엉덩이의 고통이 제일 컸었다.

아주 오랜만에, 그것도 낯설디 낯선 자전거를 처음 타면서 참으로 용감하게 ‘내가 선수도 아니고 어떻게 빕을 입나. 창피하게스리’ 라 스스로 다짐했었다.

빕 이란 패드가 붙은 자전거 전용 바지인데, 그건 한강에서 로드 사이클이나 타는 사람들이 입는 거라 생각했었기에 내가 입을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다.

고교시절에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웠을 때는 고물 평범한 자전거로도 엉덩이 통증 같은 건 몰랐다는 희미한 기억 때문에.


나중에 몸으로 겪고서야 깨달았다.

아... 그때는 그 정도로 오래 자전거를 탄 적이 없구나. 동네에서 이리저리 돌던 정도...

게다가 몸무게가 그 시절의 125%로 늘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네.

물리적으로 체중은 중력에 비례하여 작용하고, 그만큼 충격량이 늘어나니 당연히... 아프다.

그런 이유로 처음 입은 패드 속바지조차 착용법을 잘 몰라서 팬티 위에 속바지를 입고 겉바지를 또 입으니,

팬티와 패드 속바지가 어우러져? 더 심한 고통을 느끼고서야 자전거 카페 같은 곳에서 맨살에 패드 속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위대한? 진실을 깨달았으니 참...

그렇게 자전거 초보 라이딩과 자전거 샵을 오가다가 요상하게 생긴 자전거가 밖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샵 쥔장에게 물어봤다.


영국산 몰튼이라는 자전거이고, 아주 전통이 오래된 자전거인데 손님이 중고로 좀 팔아달라고 해서 내놓은 것이니 타봐도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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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나 하고 정말 낯설게 생긴 자전거를 타고 이태원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오오.....

바닥의 요철을 만나도 충격이 없이 물컹물컹 넘어가는 느낌에 순식간에 엉덩이가 반해 버렸다.

사람이 가진 감각체 중에서 엉덩이가 그리 예민하게 즉각 반응을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은, 학창 시절과 군대시절 단체로 엉덩이에 ‘빠따 세례’를 받은 이후로 처음이었다.

소위 ‘기변병’이 도진 것인데, 변덕이 많은 나 자신을 아는지라 ‘기변’이 아닌 ‘기추’ (자전거 추가 구매)를 택한 것이다.

그렇게 타게 된 몰튼은 정말 종일 타도 다음날 팔이나 몸의 근육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 쿠셔닝이 좋았다.

쿠셔닝이 좋으니 속도는 안 난다만, 내가 뭐 로드 사이클 타고 트루드 프랑스 대회 나갈 것도 아니고서야. 편하면 좋은 거지.


그러다 최근에 정말, 이건 마지막 끝판왕이다 싶은 ‘빕’을 샀다.

정말로 수치스럽지만, 그래도 다들 빕을 입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뒤늦은 인정? 같은 것이다.

속패드 바지를 입고 겉에 반바지를 입으면 감쪽같긴 하나,

아무래도 겹으로 옷을 입은 셈이니 땀도 많이 나고 옷끼리 겹치는 경우도 있어서....라고 이유를 달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이 빕을 입어야 ‘편하다’라는 말에 넘어간 거다.


그리고.

깨달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한 길은 쉬운 길이다.

그게 의심스러워 빙빙 도는 길을 선택해서 고생하는 건 그저 고집일 뿐이다.

잘 모르겠으면 많은 사람들이 권하고 스스로도 하는 방법들을,

프로세스 이해나 원리에 대해 잘 모르겠어도 그저 따라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진리를.

그걸 3년이 지나서야 깨닫다니.

무지한 몸뚱이의 엉덩이에게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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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래도...그래도.

빕 (반바지) 는 입어도 빕숏 (멜빵 타입)까진 아직은....정말 못입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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